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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03 15:44 수정 2019.10.03 15:44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국장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자크 시라크가 죽었다.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8년간 파리 시장을 했고(1977~1995, 세 번 연임), 세 번에 걸쳐 장관을, 두 번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12년간(1995~2007, 2번 연임)대통령을 한 그가 지난 9월 26일 눈을 감았을 때 프랑스인들은 일제히 하나의 사건을 떠올렸다.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행동에 앞장섰던 일이었다. 그의 반대가 전쟁을 멈춘 것도, 이후 중동 지역에 이어진 분쟁에 프랑스가 무기판매를 중단한 것도 아니건만, 명분없는 침략 전쟁에 "노(NO)"라고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프랑스 국민에게 심어준 자존감은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청년 공산당, 드골주의자, 신자유주의자 

보수 정치인의 상징 같은 시라크에게도 피끓는 청년 시절이 있었고, 19살에는 심지어 청년 공산당원이었다. 주말이면 시장에 가서 동지들과 '위마니떼지(공산당 기관지)'를 팔고, 모든 당모임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2차대전 직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 공산당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으니, 그는 나름 대세를 좇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와 고위 공무원을 배출하는 엘리트의 요람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후, 그는 드골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후엔 드골주의에서도 서서히 멀어지고, 레이건 이후 세계질서를 장악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합류한다.

프랑스에서 드골주의는 복합적 상징으로 작동한다. 완고한 군인이자, 레지스탕스 우두머리, 해방 이후엔 나치 협력자들을 처단하고, 서둘러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한 임시정부 주석, 알제리 해방 선언과 함께 알제리전을 종료시킨 합리적 해결사, 강력한 대통령제가 도입된 5공화국에서 10년간 프랑스를 이끌다 68혁명을 끝으로 물러난 인물이 드골이다.

국가기구가 자본에 종속되는 걸 거부하는 국가주도 경제, 보편적 복지, 공화주의, 가부장적 엄숙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동시에 표상한다. 하여, 드골주의자를 자처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에겐 먼지 날리는 구세대의 표본이겠으나, 기성세대에겐 안정과 존엄, 전통과 질서를 보장하는 카드다.  
 
두 번 시민을 거리로 나서게 하다

시라크는 두 번,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먼저 2002년 5월 1일.

1999년 내가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대통령은 시라크였다. 1998년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압승하면서 좌우 동거정부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정치 비판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답게 도시 곳곳에 "시라크 구라쟁이"라는 글들이 갈겨져 있었다. 대통령을 향한 흉흉한 민심을 온몸으로 느끼며, 난 그의 재선이 불가능하리라 예단했다.(이후, 이 나라에서 당선되는 모든 대통령이 받는 대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통령 시라크보다는 총리 조스팽의 이름이 더 자주들리던 시기였으나, 조스팽이 주도한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신자유주의가 차곡차곡 실행되던 시절이었다.  

2002년 5월 대선에서 유력한 두 후보는 동거 정부를 꾸려가던 그 두 사람이었다. 현직 대통령 시라크와 총리 조스팽의 공약은 변별력이 전혀 없었다. 신자유주의로 하나가 된 우파와 좌파의 위장된 대립은, 엉뚱하게도 극우 후보 르펜을 결선 투표에 진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차 선거와 2차 선거 사이에는 메이데이(노동절)가 끼어있었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서자 언덕에서부터 물밀 듯이 내려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저마다 만든 피켓을 들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파리 시내 곳곳을 밀려다니며 외쳤다. 극우 반대를. 극우의 손이 밥상 위에 슬그머니 얹히는 섬뜩한 장면을 본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시라크, 사후피임약" (극우 후보가 결선 투표에 오르게 하는 사고는 쳤지만, 시라크라는 대체제로 최후의 사고만은 막아보자는 의미)

당시 시민들의 심리를 가장 적절히 대변한 문구였다. 공식적으로 신고된 집회 장소가 있었겠지만, 집회장과 아닌 곳 사이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극우 전선으로 하나된 시민들은 5월 5일, 시라크를 82.2%의 득표율로 압승 시킨다.

그리고 2003년 2월 15일. 전세계 600개의 도시에서 일제히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으나 햇살은 충만했던 그날, 파리의 모든 골목 골목엔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행렬로 채워졌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대량살상 무기를 찾아내겠다는 조작된 명분으로 이라크 침략에 나선 조지 부시를 우방국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분위기였다.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한 우리처럼) 각별히 평화의 옹호자로 인식되었던 적이 없던 시라크는 2003년, 감히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선언을 했다.

감히 반기를 든 사람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그가 들어올린 반미 반전의 깃발 뒤에 함께 서 주었던 유럽의 동지는 독일과 벨기에뿐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프랑스는 미국의 전쟁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고,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은 '배신자' 프랑스에 비난을 퍼붓었고, 항공기에서 제공하던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까지 없애버리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까지 빚어졌다.

드골주의의 영향이었을까? 독일에 맞선 연합군의 일원이었으나,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했고, 처칠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던 드골은 연합군의 조력 속에 프랑스가 자력으로 해방을 이루는 전설을 쓰게 해주었다. 이후에도 프랑스는 확대되는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정치적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넬슨 만델라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던 시라크가 만델라의 조언을 따랐던 결과라는 니콜라 윌로(환경운동가, 전 환경부장관)의 증언도 전해진다. 2002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시라크를 향해 만델라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라크 전쟁을 막는 데 당신이 나서달라 부탁했고, 그의 간절한 청은 시락의 마음을 움직여 '감히' 미국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시라크는 이후 "휴머니스트 대통령" 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된다.
 
비서구권을 향한 사랑

프랑스엔 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사회적 유산으로 남긴 대통령들이 종종 있어왔다. 퐁피두 센터를 남긴 퐁피두 대통령, 미테랑 국립박물관을 남긴 미테랑에 이어 깨브랑리 박물관을 남긴 시라크가 그 계보를 잇는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고교시절 수업을 '땡땡이' 칠 때면 파리의 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기메 박물관을 찾았다. 거기서 아시아 예술을 발견한 그는 문화적 충격에 이어서 평생 동안 사랑에 빠진다.

이누이트, 북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민속 예술들로 그의 열정은 번져갔고, 비서구권 민속 예술품에 대한 이해와 열정은 그에게 다원적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갖게 해주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열정은 결국 2006년 깨브랑리 박물관(2016년 자크 시라크 박물관으로 개명됨)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비서구권의 민속예술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민속 예술품들이 모여 폭발적인 문화다양성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이 아름다운 박물관은 루브르와 오를리에 이어 파리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박물관이다.  

단 한번의 용기
 

지난 9월 26일 사망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렬. ⓒ 연합뉴스/AP

 
30대에 정치라는 열차에 몸을 실은 이후, 단 한 번도 대세에서 멀어지지 않았던 그가 후세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그가 처음으로 대세를 이탈하였을 때 만들어졌다. 경제적 타격, 외교적 손실… 그가 대세를 거스름으로써 프랑스인들이 수 년간 지불해야 했던 비용을 명세서로 뽑아는다면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도 그를 기억하게 하고, 그의 죽음을 기꺼이 추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대세를 역행했던 단 한번의 용기다. 그가 떠난 후 자크 시라크를 주제로 한 역사 수업을 듣고 온 중학교 3학년 딸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이 시라크에 대해 뭐라고 하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사람이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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