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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1.16 17:32 수정 2020.01.16 17:32

기자회견장 도착한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 일본에서 재판받는 도중 전용비행기를 타고 탈출해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연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 ⓒ 연합뉴스/AP


지난 1월 13일,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파업이 40일째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자신에게 지급되어야 할 퇴직금을 받지 못한 한 시민이 프랑스 노동법원에 르노사를 제소한 일이 알려졌다.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곤(65). 한때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자로 꼽혔으나, 지난 연말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탈주범으로 등극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쇼킹한 뉴스에 프랑스 사람들은 잠시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였다.

그는 일본 닛산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중 소득을 축소 신고해 사회보장 분담금을 적게 납부한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일본 검찰은 그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한 상태다. 그는 지난해 4월 보석 허가가 떨어져 보석금 약 100억 원을 내고 24시간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는 자택에 머물며 재판에 출석해 왔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2월 29일, 악기를 싣는 가방에 몸을 숨겨 전용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탈출했다.

2019년 12월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그는 "저는 불의와 정치적 박해에서 탈출했습니다"로 시작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자신의 탈출 사실을 알렸다. 곤은 닛산 간부들이 닛산과 르노자동차 사이에 경영통합이 추진될 것을 우려해 자신을 "쿠데타"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에게 진행된 재판은 유죄가 전제된 것이었기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일본 검찰로부터 일방적으로 자백을 강요 당했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 대해서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협박도 받았으며, 수감 기간 아내와의 접견이 한 번도 허용되지 않는 등 일본의 사법행정이 반인권적이라고 맹비난했다.

구속에 환호했던 프랑스, 지금은

수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며 무자비한 경영을 펼쳐온 대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연봉을 챙겨온 그가 구속됐을 때 프랑스에서는 일본 검찰에 대한 칭찬 일색의 반응이 터져나왔다. 상대가 누구든 성역 없이 단호하게 칼날을 휘두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강압 수사와 반인권적 수감생활, 유죄가 내정된 재판 정황 등이 폭로되면서 이러한 환경을 거부하고 탈출을 감행한 곤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프랑스 좌파정당 FIS의 대표 쟝 뤽 멜랑숑은 곤의 '권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인권과 그 인권을 지킬 권리는 계급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카를로스 곤 역시 한 사람의 프랑스 시민으로서, 마땅히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그가 사장이었던 누구였던"이라는 말을 남겼다. 곤에게도 반인권적인 재판을 거부하고 탈출할 권리, 르노사에게 받아야 할 퇴직금과 성과금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총노동동맹(CGT)의 위원장 필립 마르티네즈는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동재판소에 서서 자신의 유린된 권리를 호소해야 했던 곤에 의해 해고된 르노자동차의 해고노동자 수천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면서 분노를 표했다. 그는 "곤은 노동을 파괴하고 직장을 파괴한 사람"이라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았던 장본인이 어찌 노동재판소에 와서 자신의 권리를 청구할 수 있는가. 이는 저속한 행동"이라고 맹비난 했다.

당사자인 곤은 "난 법 위에 있기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 아래 있고자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사장이었단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로부터 외면 당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라며 르노차를 제소한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체포 당시 닛산과 르노의 경영자로 동시에 재직하고 있었으며, 체포 후 2개월 만에 르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퇴직시 자신에게 약속된 보상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브라질로 이민한 레바논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학업을 이어오면서 프랑스를 포함, 브라질, 레바논 등 3개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감히 무서운 게 없는 뻔뻔한 인간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자기 권리를 지키는 걸 탓할 수 없다는 인권에 대한 근본적 목소리도 팽팽하다. 한 언론인은 "우리에겐 늘 드레퓌스 사건의 옹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말로 곤이 던져놓은 질문에 반응하는 프랑스 사회를 묘사하기도 했다.

프랑스 노동법원의 선택은?

곤과 르노사 사이에 벌어진 노동재판은 2월 말에 열린다. 프랑스 노동재판은 일반 재판과 달리, 전문 법조인이 아니라 노사가 선임한 각자의 대표자들이 재판을 이끌어간다. 노사 동수로 운영되지만, 억울하게 사용주로부터 권리를 유린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므로 노동자에 유리한 판결이 더 자주 나오는 편이다.

곤이 사측 앞에선 월급 받는 '전문 경영인 노동자'였다면 그가 한 노동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프랑스 노동재판소는 이런 그를 노동자로 바라볼까? 2월 말 재판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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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