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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20 09:20 수정 2018.12.20 10:42
특유의 격정적 언어와 날카로운 통찰로 사랑받아온 목수정 작가의 연재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은 매월 첫째, 셋째 주 목요일 <오마이뉴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월 13일 유럽 이사회 후 기자회견하는 마크롱 대통령 모습. 2018.12.16 ⓒ AFP/연합뉴스

  
"이 모든 분노는 적어도 40년간 축적되어 온 심각한 구조적 문제의 분출이다."

지난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노란조끼'의 요구에 답하며 국민 앞에서 한 이 말은 단지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만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사회적 투쟁의 절정에서 이뤄진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 집권(1981년)은, 프랑스의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고 공기업 민영화와 사회적 평등을 후퇴시키는 시발점이기도 했다(한국의 신자유주의가 김대중 당선 직후(1998년) 시작되어, 노무현(2003년) 집권기에 본격 가동되었다는 뼈아픈 현실과 비슷하다). 

집권 세력이 사회당이란 사실은 시민들의 의심을 누그러뜨렸고, 우파인 야당도 사회당의 우경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으니,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마침내 사회당의 간판을 단 신자유주의자들이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공공서비스를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시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회당과 우파정당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쌍생아가 되어 있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그러하듯, 그들은 모두 자본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을 노예화하여 자신들이 포함된 지배계급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둘 모두 이름만 다른 기득권 정당일 뿐이었다.

이러한 사회당의 쓰라린 배반이 낳은 직접적 결과는 바로 극우세력의 급성장이었다. 권력을 탈취한 정치세력이 더 이상 좌파일 수 없으며, 그들이 피지배 계급의 이해를 도모할 리 없다는 혹독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했던 극단적 선택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자각시킨 선거가 2002년 대선이었다. 사회당 후보를 제치고 극우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우파 후보와 나란히 올랐던 초유의 선거였다. 프랑스 사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 사건 이후, 2017년 또 다시 극우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 오르기까지 사회당은 한치도 반성하지 않았다. 올랑드는 사르코지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사회당은 마지막 기회를 잃고 몰락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을 뽑은 사람들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고 말할 수 없다. '페스트'를 피하기 위해 '콜레라'를 택했을 뿐. 콜레라에 걸릴 날만 기다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전체 유권자의 18%만이 마크롱에게 1차투표에서 기대를 걸었다. 그들은 마크롱에게 1년 6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에서 노조도, 정당도, 그 어떤 상징적 지도자도 없이 들고 일어났다.

마크롱은 아직도 모른다
 

마리안느 복장을 하고 '노란 조끼' 5차 집회에 참가한 프랑스 여성들. ⓒ 연합뉴스/EPA

1, 2차 노란조끼 집회에서 나타난 과격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분노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장일치란 존재하지 않는 프랑스 사회에서, 84%에 육박한 이 대중적 투쟁을 향한 지지는, 프랑스 사회가 이 분노에 부여하는 절대적 정당성을 의미했다. (관련기사: "루이 16세보다 더 심한 마크롱" 폭력 시위에도 '노란조끼' 택한 프랑스인)

그 분노가 뿌리 깊은 것임을 알았다면,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최저임금 100유로(한화 약 13만 원) 인상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도 마크롱은 알았어야 했다. 거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마크롱의 타협안들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그 앙상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월부터 바로 실시한다던 최저임금 100유로 인상은 6개월 뒤로 미뤄졌다. 2천유로 이하의 연금수혜자들에게 사회보장분담금 인상을 취소하겠다는 약속 또한 2019년 7월로 연기됐다. 연말 보너스 지급은 예상대로 절반도 안 되는 기업에서만 실천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시 신뢰하기 힘든 기다림의 시간만이 주어졌다. 그러나 노란조끼들의 봉기 1개월은, 고통을 감내하고만 있던 사람들에게, 망가진 민주주의 시스템을 모두의 머리 위로 끌어올렸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권력을 향한 전방위 공격을 촉발시키는 중이다.

지자체장도 들고 일어서다

지난 토요일(15일), 이민자들이 유난히 많이 거주하는 파리 북동부 외곽의 5개 도시 시장들이 마크롱 정부를 법원에 제소했다. 헌법이 규정하는 프랑스 공화국의 평등 원칙을 위배한 혐의다. 40년에 걸친 공공서비스 축소 과정에서 그들은 각별한 차별을 겪어 왔으며, 마크롱 정부 들어서 차별의 수위는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이들 도시에서는 경찰과 교원, 의료시설, 심지어 판사 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공공서비스 수준이 파리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파리에서 2개월이면 끝나는 1심 재판이 이 지역에선 1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받을 수 있다. 범죄율은 그 어느 도시보다 높지만 인구당 경찰 수는 파리의 50% 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분리할 수 없는, 민주적이며 사회적인 세속 공화국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출신과 인종과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을 보장한다."

프랑스 헌법 제1조를 보기 좋게 짓밟고 있는 현실을 그들은 법의 이름으로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이 고소장을 제출한 지난 토요일, 인근 3개 도시 시장들도 지지를 표명했으며 합류를 검토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를 향한 지자체장들의 사법적 반격을 알리는 기사에는 시민들의 환호와 응원이 이어졌다.

노동재판소도 제동

그런가 하면 17일에는 트루아 노동재판소가 마크롱이 지난해 대통령령으로 개정한 노동법이 프랑스가 오래 준수해온 국제노동협약을 위배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마크롱은 취임 직후 기업의 쉬운 해고를 골자로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을 의회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령을 통해 실시한 바 있다. 그 개정안은 기업이 심각하고 위급한 사유 없이 임의로 노동자를 해고해도 그 보상금이 월급의 20배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법원은 이 규정이 ILO의 국제노동법 158조를 위배하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프랑스의 노동재판소(Prud'homme)는 일반적인 법관 대신, 노측과 사측이 함께 운영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졌다. 노측이 뽑은 노동자 출신의 명예 판사와 사측이 뽑은 사용자측 명예판사가 나와 노사 문제를 심의하고 판결한다. 결과적으로 노동재판소는 노사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마크롱이 대통령령으로 개정한 법령이 법원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최초의 사례다.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해온 독불장군 마크롱에게 사회가 내린 엄준한 판결이기도 하다. 언론들은 마크롱의 뼈아픈 패배라고 평가한다. 

마크롱 정부와 같은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ILO노동협약 비준을 공약한 바 있지만, 취임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의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재촉해 온 유럽연합은 한국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며 마침내, 지난 17일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세계 절대다수의 국가들이 비준한 바 있는 ILO 노동협약 비준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게 된다면 우리의 노동법 또한 국제 노동기준의 문턱에 걸려, 효력을 잃을 조항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18일에는 기후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그린피스, 옥스팜 등 4개의 국제적인 환경단체들이 프랑스 정부를 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 재생에너지 개발, 에너지 혁신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이었다. 

환경단체들은 지난 주말 있었던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에서 프랑스 정부가 지금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법원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말만으론 충분치 않다. 행동으로 입증해야 할 때다." 이 말은 프랑스 전역에서 구호처럼 울려 퍼진다.

이제 직접 민주주의로
 

프랑스 유류세 인상 반대 '노란조끼' 시위 현장. ⓒ 연합뉴스/EPA

 
오는 주말이면 노란조끼 운동도 6주째를 맞는다. 이제는 시민발의에 의한 국민투표 정례화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대거 도입을 하자는 논의로 향하고 있다. 일명 '스위스 모델'의 도입이다. 

이는 더 이상 지금의 정치 시스템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대중적 자각이 일깨운 결론이다. 백만 명이 쏟아져 나와 행하는 거리 투쟁의 쳇바퀴를 지속할 수 없으며, 5년마다 하는 선거와 기득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 반복되는 시스템 속에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엄중한 결론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르렀다.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귀 막고 있는 권력을 법의 이름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강자들의 힘을 제어하지 않는 "국가는 자본가의 착취를 도와주고 보장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다시 한 번 옳았다. 국가의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지 않는 한, 국가는 언제나 똑같이 작동할 것이다. 강자들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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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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