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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0.29 13:48 수정 2019.10.29 15:10
지역 명주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4년 전부터 나는 충남문화산업진흥원 팀에서 진행하는 충남 명주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충남에서 가장 큰 축제가 백제문화제다. 충남은 백제의 영화로웠던 시절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땅이다. 그래서 충남 명주의 이름을 '백제 명주'라 이름 짓게 되었다.

사실 이때의 술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바는 없다. 백제 제2대 다루왕 11년(기원후 38년) 가을에 곡식이 잘 익지 않아 백성이 사사로이 술 빚는 것을 금했다는 것과 636년 백제 무왕이 백마강 변에서 북을 치며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베풀어 '대왕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의자왕은 술에 빠져 폐망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역사가들이 기록하고 있지만 그때 어떤 술을 마셨는지는 전하는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백제 명주'라고는 했지만, 백제 때부터 전승되는 술을 찾아서 명주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었고, 백제의 정신과 이미지를 술에 담아보기로 했다.
 

강남 전통주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백제 명주 세트. ⓒ 막걸리학교

 
다만 백제 술을 좀 더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이다. 굽 달린 술잔, 몸통에 구멍이 뚫린 단지, 천안 용원리에서 출토된 닭의 머리가 달린 주전자,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동받침 은잔 등에서 화려했던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3세기경에는 백제인 수수보리가 일본에 건너가 술 빚는 법을 전해줬다는 이야기가 일본 <고사기>에 전해 온다. 중국과 교역하면서 술병이나 술단지들이 들어왔고, 일본과 교역하면서 술 빚는 법을 전해줬던 백제인데, 그 시절의 술 이름 하나가 전해오지 않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백제 명주'는 백제에서가 아니라, 백제였던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백제 명주' 선발은 충남 양조장에서 생산하되 우리 농산물로 빚은 술을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공개 모집을 하고 전문가 심사를 거쳐서 2017년에 3종, 2019년에는 소비자 심사까지 더하여 1종을 추가로 선발하여 모두 4종 한 세트가 만들어졌다.

선택된 술은 예산 사과 와이너리, 공주 계룡백일주, 녹천 한산 소곡주, 논산 내국양조에서 만든 증류주들이었다. 백제의 이미지를 술에 부여하기 위하여, 백제와 연관된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그러면 술을 마실 때마다 백제의 이미지가 환기될 것이다.

전문가 심사를 거쳐 선정한 '백제 명주'

충남 예산 사과 와이너리에서 만든 오크통에 1년 숙성시킨 사과증류주 40도가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좋은 평점을 받았고, '소서노의 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소서노는 백제를 건국한 온조의 어머니이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내다. 소서노의 아들이 세운 나라가 678년간 한반도의 중남부에서 존속했으니, 소서노의 꿈이 백제 땅에서 이뤄진 셈이다.

15년 숙성된 공주 계룡백일주 40도는 '웅진의 별'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웅진은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의 옛 이름이다. '웅진의 별'은 멥쌀, 찹쌀, 솔잎, 진달래, 국화, 오미자로 빚은 발효주를 증류한 소주로, 영화로웠던 백제의 문화에 화답할 수 있을 만큼 긴 숙성 기간을 거쳤다.

뒷얘기이긴 하지만, 술이 선정되고 스토리텔링을 하려는데 곤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공주 계룡백일주는 명문가인 연안 이씨 집안에서 전해오는 술로, 약주는 충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집안의 내력을 살펴보니, 인조반정을 도모하여 큰 공을 세운 이귀가 있고, 시조는 백제 시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시조인 이무는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서 소정방과 함께 온 당나라 장수였다.

그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을 식읍으로 받았고, 연안 이씨 가문을 열었다. 아뿔싸, 백제를 멸망시킨 장수의 집안 술이 백제 명주라니! "비록 1359년이 흐른 옛 일이지만…"이라고 고심하다가 차츰 "그래 1359년이 흐른 일인데, 지금 와서…"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계룡백일주가 충남 무형문화재가 되어 명성을 얻어가고 있고, 이를 통해서 충남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으니, 더불어 백제를 소환하는 일에 동참하여 백제의 혼을 달래주는 역할을 기대하기로 했다.

서천군 한산면은 소곡주의 동네로 양조장이 70개에 달하는데, 그중의 하나 녹천 한산 소곡주 제조장에서 만든 2년 숙성된 소곡화주가 '사비의 꽃'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사비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여섯 왕이 다스렸던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의 옛 이름이다.

사비를 감돌아 흐르는 백마강이 백여 리를 더 가서 서해와 만나는데, 백마강을 배웅하는 땅이 한산이다. 한산은 백제의 부흥운동을 했다고 비정되는 곳이기도 하여 한산 사람들은 소곡주가 백제 때부터 유래했다고 믿고 있다.

논산 내국양조에서 빚은 2년 숙성된 25도 홍삼 증류주는 2019년에 새롭게 합류하여, '서동의 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동은 백제 무왕의 어렸을 적 이름이고, 신라에 가서 서동요를 퍼트려 선화공주를 얻었고, 익산 미륵사지를 조성하였다.

내국은 조선시대 궁중의 의약을 맡은 내의원의 별칭이다. 내국 양조는 술을 약으로 활용하려는 문화를 담고자 붙인 양조장 이름이다. '서동의 별'은 선정된 4종류의 술 중에서는 도수가 제일 낮아 순하고, 홍삼 향과 맛이 돌아 건강 기능성을 높인 제품이다.

지역 명주로 성장하려면 갖춰야 할 것들

선발된 술들의 공통점은 숙성 증류주라는 점이다. 증류주는 숙성 기간이나 방법이 품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웅진의 별'은 15년 숙성시킨 것이라 알코올 도수에 비해 무척 부드럽고, '소서노의 꿈'은 오크통에서 1년 숙성시켜 오크향이 은은하여 외국인들에게도 평가가 좋고, '사비의 꽃'과 '서동의 달'은 2년 숙성시켜 사납지 않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술들은 정확히 숙성의 기간을 밝히고 있다. 우리 증류주 시장은 주정에 물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의 점유율이 높아서 단번에 증류해 낸 증류식 소주의 존재가 미미하다. 증류식 소주의 종류도 단조로운 편이라, 백제 명주를 통해서 증류주의 새로움을 더하고자 했다.

선발된 술들의 이름을 짓고 나서, 술병 선택을 고민했다.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족,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들을 위해서 술병의 크기를 250㎖로 작게 만들었다. 전통주들을 보면 도자기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술의 내용물과 색깔을 보여주고 소비자의 선택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유리병을 택했다. 밑바닥이 깊게 패인 술병을 선택하여, 술병을 탑처럼 쌓을 수 있는 재미 요소도 담았다.
 

백제명주 4종 세트, 병을 첩첩 쌓을 수 있고, 종이 상자에 담아 선물할 수도 있다. ⓒ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전통술 이름에 한자어가 많은데, 한자를 버리고 꿈, 별, 꽃, 달이라는 이름을 단 것도 뿌듯했다. 포장 디자인은 환경을 생각하여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종이 재질로 만들었다. 한 병, 두 병, 세 병짜리 종이통을 만들고, 이를 다시 손잡이 끈이 있는 종이 상자에 담았다. 포장 박스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실용신안 특허를 내려고 했으나, 비슷한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굳이 특허를 내지 않았다.

지역 명주라고 한다면, 그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술이라야 할 것이다. 나라 안에서 지역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두루 술 빚는 법이나 술 문화를 공유하면서, 지역의 명주로 자리매김된 술은 한산 소곡주와 진도 홍주 정도다. 국가지정 무형 문화재와 지방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술이 있지만 문화재는 가문을 기반으로 사유화된 자산으로 승계되는 경우가 많다. 농림부가 지정한 명인의 술이 있지만, 명인은 개인에 한정된 명예라서 그들이 지역 명주로 확장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병의 술이긴 하지만, 지역 명주로 성장하려면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긴 세월 속에서 일관된 맛을 지녀야 한다. 이때의 긴 세월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바깥에서부터 시작된 세월이라야 한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해야 마땅하고, 물이든 곰팡이든 지역의 특성들로 강하게 뭉쳐 있어야 한다. 원재료에서 출발한 발효와 숙성된 향과 맛을 지녀야지 감미료를 넣어서 재구성된 맛은 명주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려면,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많아야 한다. 이야기가 많아야, 명주가 될 수 있다. 충남의 술 4종을 선발하여 애써 백제 명주라고 한 것은 이야기를 많이 담아나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역 문화 산업을 키우는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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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