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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휘가 쓴 <아내와 걸었다> 겉 표지
ⓒ 샨티
그냥 어느 날 시작했다고 한다. 답답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와 걸었다'고 한다. 그는 이 여행에 '바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닷길을 따라가면서 바다를 바라보며 걸어서 '바바', 육지 바깥에서 바깥으로만 걸으니 '바바', 발바닥의 한 바닥부터 다른 바닥까지 옮겨야 한 걸음이니 '바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걸어서 바다까지를 '걸바'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냥 걷기 시작한 여행이지만 훌쩍 떠났다가 돌아온 짧은 여행은 아니었다. 속초해수욕장에서 출발한 동해안 걷기 21일, 남해안 걷고 배타고 버스타기 25일, 서해안 걷기와 자전거타기 19일 모두 65일이 걸린 '바바여행'이었다.

한반도 남쪽 해안선을 온전히 걷기 위하여 동해안 북쪽 끝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하지 않았고, 서해안 안산에서 여행을 끝내버렸으며, 굳이 걷기만을 고집하지 않고 배도 타고, 버스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다녀온 여행이다. 답답해서 그냥 시작했다는 지은이의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여행이었다. 바다를 건너려면 배를 타지 않을 수는 없을 테지만, 아마 버스와 자전거는 그냥 탔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순전히 그냥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책 제목이 <아내와 걸었다>인 것처럼 지은이가 밝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내와 약속 때문이라고 한다. "살면서 서로 헛된 기대 하지 말자고, 대신 한두 번은 제법 길게 온전히 같이 있기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부터 그냥 걷기로 했다고 하지만, 그의 걷기여행을 부추긴 사람들은 여럿 있다. 그는 "황안나의 탄력, 홍은택의 몸매, 김남희의 기운, 김훈의 눈길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울러 그의 걷기는, 명상과 염원의 걷기로 유명한 간디와 그의 제자였던 사티쉬 쿠마르, 혹은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와 같은 생명평화의 염원이 담긴 걷기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지은이는 "그들처럼 걸을 자신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지은이의 걷기에 영감을 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냥 어느 날부터 답답해서 시작한 65일간 걷기 여행에서 돌아와 쓴 책이 바로 김종휘가 쓴 <아내와 걸었다>이다. 나는 이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서 처음 읽었다. 기사 끄트머리에 나중에 도서출판 '샨티'에서 책으로 나올 거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봄에 김종휘가 쓴 <일하며 논다, 배운다>를 읽는 동안 참 많은 밑줄을 그었기 때문에 '그가 쓴 책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목록에 담아두었던 책이다.

돌아가는 여행 길, 엇길로 빠지는 책 읽기

가볍지 않게 시작한 여행이지만, <아내와 걸었다>는 그렇다고 심각하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읽었다. 텍스트를 따라가다가 자주 엇길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김종휘의 여행길이 자주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밑줄도 긋지 않고 그냥 읽으며 자주 엇길로 빠져나와 그의 여행에 내 삶을 비추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김종휘가 쓴 <아내와 걸었다>는 앞머리와 뒷머리 글을 빼고 모두 6개의 주제로 묶여 있다. 바다와 길, 사람, 개, 여행, 그리고 집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와 함께 걷다가 지은이의 삶이 묻어나오는 각각의 주제를 만날 때마다 그의 삶에 빠져들지 않고 나의 기억 속으로 자꾸 끌려 들어가곤 하였다.

나에게 바다는? 길은? 사람은? 개는? 여행은? 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 지은이가 바다와 길과 사람과 개와 여행과 집으로 나누어 글을 쓰는 동안 늘 각각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던 '아내는?' 나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관계인가?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이 엇길도 빠져드는 동안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평을 쓰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밑줄을 치며 책을 넘겨야 했다.

지금 나는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아파트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고 조금만 걸으면 싱싱한 해산물이 펄펄 뛰는 시장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내게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바다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버지와 여섯 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갔었던 포항 바닷가 해수욕장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였다.

대학시절 군 입대를 앞두고 섬 전체를 뒤덮은 푸른 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소경도'가 있는 여수 앞바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한라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던 제주 바다, 남들이 모두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한 달 휴가를 내고, 발리 섬 북쪽 끝에 있는 아쉬람(폐교)에서 지내는 동안 만났던 그 '파란' 바다….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내게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많은 바다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에는 아버지와 동생과 아내와 아이들과 친구와 선배와 후배들이 있었다.

집에 대한 기억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사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대충 떠올려도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스무 번 가까운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단체 사무실도 이사도 여러 번 하였다. 지금도 이 도시에서 택시를 타고 내가 일하는 단체에 가자고 하면 다른 곳에 데려다 놓기 일쑤다. 워낙 여러 곳으로 이사 다닌 탓에.

그래서 나는 이사하는 것이 너무 싫다. 결혼하고 한 번 이사를 한 후에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다. 이사는 고사하고 도배도 한 번 하지 않았다.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조차도 싫었다.

딱 두 번 이사를 하였는데, 처음 이사는 일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낮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처형 집 근처로 옮겼고, 두 번째 이사는 10년 넘게 살던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할 수 없이 옮겼다. 아내와 나는 지금 사는 집에서 가급적 오랫동안 살 계획이다.

이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내게도 각각의 집에 대한 기억, 집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기억, 골목길에 대한 추억이 수없이 많았다. 수많은 기억들이 있음에도 늘 잊고 살았었는데, 김종휘가 쓴 <아내와 걸었다>는 나에게 여러 편의 잊혔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었다.

"집을 떠나는 것, 하던 일을 멈추는 것, 일상의 속도를 벗어나는 것. 그렇게 문득 시작된 바바 여행은 잃어버린 뒤에도 잃어버린 줄 몰랐던 나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너무 많은 내가 있어서 혹은 너무 확고한 나만 있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나 같은 이에게 여행은 기적을 일으켜주었다. 나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었다." - 본문 중에서

'회상'에 젖어드는 마법에 걸리다

책을 읽다 보면, 두 가지 마법에 걸리는 느낌이 든다. 하나는 자꾸만 과거의 기억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마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꾸만 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집을 떠나는 것, 하던 일을 멈추는 것, 일상의 속도를 벗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남들이 놀랄 만큼,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의 속도를 벗어나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 자신은 늘 아쉽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아마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벗어남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 여기저기 나오는 그의 아내가 들려주는 격려의 메시지는 '성찰'적이다.

"돈 벌려고 하루를 축내지는 마, 밥 먹고 살 만큼 돈 벌면 돼, 알았지?"

부자가 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돈 벌려고 하루를 축내지 않겠다는 생각은 나도 했지만, 어떤 날은 돈조차 벌지 않으면서 하루를 축내는 날도 많은 것 같아서 화가 날 때도 많다.

그의 아내는 이런 말도 했다.

"일을 위해 살지 말고, 너를 위해 일하라고."

남의 아내가 하는 말이 내게도 비수처럼 꽂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아니 사실은 나와 같이 일을 위해 살고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는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 살았었다.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종휘가 쓴 <아내와 걸었다>를 읽는 내내, 수 없이 많이 흥얼거린 노래 가사가 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다음 가사는 모른다. 그냥 이 첫 구절을 수없이 반복하며 읽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산울림이 불렀던 노래 '회상'의 첫 구절이란다.

책은 바다와 길과 사람과 개와 여행과 집에 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에게 이 책의 키워드는 '아내'와 '걷기'와 '회상'이다.

김종휘가 권하는 걷기 여행 십계명

1. 최대한 한눈팔고 걸을 것. 앞만 보고 걷다가는 어느 순간 땅만 보게 되니 조심할 것.
2. 보행 자세를 수시로 바꿀 것. 지그재그 걷고 옆으로 걷고 뒤로 걷고 다양하게 걸을 것.
3. 30분 이상 직선 코스를 걸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아무 데로든 당장 길 옆으로 샐 것.
4. 목적지 정하지 않은 채로 걸을 것. 지루해지면 행선지를 바꾸거나 딴 길로 빠질 것.
5. 걷는 도중엔 지도 보지 말 것. 지도는 하루를 마감할 때 한 번 살펴 볼 것.
6. 따분해지면 숨찰 때까지 뛰어 볼 것. 그리고 헐레벌떡 숨 많이 쉬고 다시 걸을 것.
7. 동행인과 마음 안 맞을 땐 나란히 걷지 말 것. 적당히 거리 두고 심심할 때 같이 걸을 것.
8. 동행인과 말다툼했다면 입 다물 것. 배고픈 사람이 밥 먹자고 말 걸대까지 침묵할 것.
9. 길 가다 사람 만나면 웃을 것. 눈 마주칠 때 기다렸다가 꾸벅 고개 숙여 먼저 인사할 것.
10. 바위나 나무에 이름 같은 것 남기지 말 것. 정 하고 싶으면 바닷가 모래 위에 쓸 것. / 김종휘

덧붙이는 글 | <아내와 걸었다> 김종휘 글, 사진 - 샨티/ 247쪽, 1만3000원


아내와 걸었다 - 2007년 10월 고도원의 아침편지 추천도서

김종휘 지음, 샨티(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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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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