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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시간이 넉넉지 않은 여행객에게는 가기 힘든 곳인가 보다. 여름휴가 때 보길도에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땅끝 선착장에 나가니 안개가 자욱하다. 내심 불길한 생각이 드는데 역시 출항을 못하였다.

땅끝 맴섬 형제바위 형제바위를 감돌고 있는 농무는 보길도로 가는 배를 잡고 있다
▲ 땅끝 맴섬 형제바위 형제바위를 감돌고 있는 농무는 보길도로 가는 배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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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나 안개가 걷힐세라 시간 보내기를 3시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천릿길을 달려온 정성을 안개는 외면해 버렸다. 또 하나의 땅끝 명물, 애꿎은 맴섬의 형제바위만 묵묵히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었다.

땅끝서 만나는 하늘 끝 도솔암

보길도 대신 찾은 건 도솔암. 반도 끝자락 달마산에 있다. 미황사에 갈 때마다 오르고 싶었던 암자다. 원래 미황사 쪽에서 올라가야 제 맛이지만 준비가 되지 않아 쉬운 길을 택하였다.

땅끝에서 미황사 쪽으로 가다가 대죽리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늘로 가는 외길인 듯 가는 길이 아찔하다. 몇 굽이 돌아가면 차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여기부터 도솔암까지는 800m, 20분 정도 소요된다. 산책하듯 쉬엄쉬엄 갈 수 있는 곳이다. 하늘 끝에 있어도 누구에게나 허락된 암자다.

달마산은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산마루는 뿔이 잔뜩 난 모양이다. 뾰족뾰족 바위가 산등성을 뚫고 튀어나와 절경이다. 애를 먹였던 안개는 여기까지 따라와 바위를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데 그 모양이 더 신비롭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바위 하나하나가 뿔난 도깨비 같기도 하고 부처님 같기도 하다. 금강산 만물상 대신 달마산 '만불상'이다.
 
달마산 바위 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부처님으로, 도깨비로 보여 금강산 만물상 대신 달마산 만불상이다
▲ 달마산 바위 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부처님으로, 도깨비로 보여 금강산 만물상 대신 달마산 만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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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안개바람이 볼에 보드랍게 감겨 시원하다. 그야말로 천연 '수분 미스트'다. 길섶에 핀 원추리는 객들에게 인사하듯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샛노란 꽃잎이 안개에 젖어 더 노랗게 보인다.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라 하였던가? 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지니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다.

 도솔암 가는 길  안개에 젖은 ‘도솔길’은 천상의 길이다.
▲ 도솔암 가는 길 안개에 젖은 ‘도솔길’은 천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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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길 낭떠러지 '뿔바위' 사이로 흐릿하게 마지막 지상세계, 마을과 바다가 보이고 이내 도솔천으로 들어가는 문, 도솔암 앞에 다다른다. 아스라이 벼랑바위 위, 한 뼘 공간에 새가 둥지를 틀듯 앉아 있는 도솔암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난다.

색시가 장옷을 뒤집어쓴 채 반쯤 얼굴을 내민 것 마냥 바위에 몸을 숨긴 채 색동 단청한 맞배지붕을 살짝 드러내 어서 달려가 껴안고 싶어진다. 도솔암에 걸친 돌계단은 천상으로 가는 구름다리 같다.

도솔암 정경 벼랑바위 위 한 뼘 공간에 새가 둥지 틀듯 걸터앉아 있다
▲ 도솔암 정경 벼랑바위 위 한 뼘 공간에 새가 둥지 틀듯 걸터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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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은 의상대사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 월정사 법조스님 등 몇 분과 연을 맺고 있으나 문화적 향기가 짙게 밴 곳은 아니다. 도솔암 앞에 연혁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으나 연혁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런 암자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이 우선인 듯싶다.

도솔암 벼랑 날개 없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지, 불심이 아니고서는 만들기 불가능한 위대한 예술품이다
▲ 도솔암 벼랑 날개 없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지, 불심이 아니고서는 만들기 불가능한 위대한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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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이 못내 아쉬워 코 아래 삼성각에 들렀다. 도솔암 뿌리가 보이는 곳이다. 새들이 부스러기를 날라 새집을 짓듯 거대한 자연 바위 사이를 돌로 쌓아 집 틀을 만들었다. 새들은 날개라도 있다. 도대체 날개 없는 인간의 능력으로 저게 가능한 것인가? 새들이 집 짓다가 놀랄 일이다 불심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위대한 종교작품 앞에 고개가 숙여지고 몸이 오그라든다.

미황사에 바다생물이 많은 까닭은?

미황사(美黃寺)는 달마산 아래에 있다. 땅끝기맥이 남으로 뻗치다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힘을 다하여 솟아난 곳이다. 안개는 아직도 달마산 중턱을 휘감고 있다. 미황사 를 병풍처럼 둘러싼 하얀 바위능선이 제일경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도솔암에서 그 속을 봤으니 다행이다.

미황사는 연이은 중창불사로 예전의 고즈넉한 맛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최악의 성형(成形)은 아니다. 일주문-돌계단-자하루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착근을 못해 겉도는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흐르면 좀 나아질 거다. 

자하루 기둥 아래를 통과하면 대웅전 안마당이다. 대웅전은 멀리 보면 삿갓을 쓰고 곧은 옷매무새를 한 점잖은 선비처럼 보이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면 고운 피부에 민낯을 한 고운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웅보전 단청을 잃은 지 오래, 이젠 민낯이 더 나아 보인다
▲ 대웅보전 단청을 잃은 지 오래, 이젠 민낯이 더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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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화장을 한 것보다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은 여인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미황사 대웅전이 그렇다. 애당초 단청을 했겠지만 바다에 인접한 미황사는 해풍에 그대로 노출되어 단청은 해풍에 씻겨 어느덧 민낯이 된 것이다. 피부가 좋지 않으면 민낯으로 나다닐 수 없다. 미황사 대웅전은 본래 때깔이 좋아 더 이상 단청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다.

미황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한 연대나 사적에 대한 기록은 없고 창건설화만 전해지고 있다. 설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척의 돌배(石船)가 땅끝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나 며칠을 두고 가지 않자 의조화상이 기도를 하니 그 배가 뭍에 닿았다. 배안에는 금인(金人)과 검은 바위, 불교경전과 탱화, 60나한이 들어 있는 금함이 있었다. 그날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기는 우전국(인도)의 국왕인데 금강산에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던 중 금강산과 비슷한 이곳을 보고 찾아왔다 하며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도록 하라 하여 소가 처음 멈춘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멈춘 곳에 지은 절이 미황사라는 것이다.

이 설화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이 창건설화가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설화는 인도에서 직접 불적이 전래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불교는 4세기 말에 중국을 통해 북쪽을 거쳐 들어왔다고 배웠다. 통설과 다르게 불교는 1세기경 가야국과 전라도 남해안 지방으로 직접 전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이 재평가를 받기 위해 양심 있는 역사가들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듯이 불교의 남방전래설도 전문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웅전 주춧돌에는 게나 거북, 물고기가 새겨져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파주 보광사나 여수 흥국사와 같이 대웅전이 큰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경우 바다생물을 새겨 넣는 경우도 있지만 미황사의 경우 창건설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미황사 부도에도 대웅전보다 더 많은 바다생물이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대웅보전 주춧돌 연꽃잎에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어 궁금해진다
▲ 대웅보전 주춧돌 연꽃잎에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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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의 매력은 감흥이 절 안에 머물지 않고 부도밭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부도밭은 걸어서 10여 분 걸린다. 가는 길은 동백과 소나무가 가득한 숲길이어서 그런 대로 걷기에 좋다. 부도밭은 설화에서 말한 옛 통교사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부도밭 정경 많은 부도는 미황사 사력을 말해주고 있다
▲ 부도밭 정경 많은 부도는 미황사 사력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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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는 모두 24기의 부도와 부도비가 서 있다. 부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대략 150년 전쯤의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둥글고 네모난 몸돌에 기왓골이 새겨진 지붕돌을 이고 있다. 지붕돌에는 용머리를 새겨 넣어 장식하였다. 벽하당, 송암당, 영월당, 송월당, 죽암당, 설봉당 등 주인 있는 부도도 있지만 주인 없는 부도가 대부분이다. 그 중 설봉당 부도에 생물이 가장 많아 눈길이 간다.

부도세부 오리가 한쪽 발을 들고 있다
▲ 부도세부 오리가 한쪽 발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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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밭에는 대웅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거북이와 게는 흔하고 한 쪽발을 든 오리, 장끼처럼 보이는 서조(瑞鳥), 도롱뇽 같은 것도 보인다. 그리고 물고기와 게가 키스하고 있는 것처럼 위아래 나란히 있기도 하고 학 혹은 꿩처럼 보이는 새도 있다. 특히 게와 거북, 물고기 같은 바다생물은 대웅전의 바다생물과 함께 창건설화를 상기시킨다.

부도세부 물고기와 게가 함께 새겨있다
▲ 부도세부 물고기와 게가 함께 새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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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도밭에 있는 노루와 방아 찧는 토끼는 또 놓치고 말았다. 미황사 창건설화의 미스터리와 함께 안개 자욱한 미황사는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차피 내 땅에 있는 우리 것인데 뭐가 급하고 서운하겠는가? 이번엔 아들과 함께했으니 다음에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땅끝 금강산, 달마산에 다시 오면 될 것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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