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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가 인터넷 언론 <여수넷통>에서 실시하는 4차 시시비비 강연에서 '여순사건 누가 왜 일으켰나?'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고 있다.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가 인터넷 언론 <여수넷통>에서 실시하는 4차 시시비비 강연에서 '여순사건 누가 왜 일으켰나?'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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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학살의 주범은 바로 이승만이다."

그는 단호했다. 국내에서 내노라는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의 말이다. 오는 19일은 여순사건 65주년을 맞는 날이다.

인터넷 언론 <여수넷통>에서 실시하는 4차 시시비비 강연이 지역사회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여순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10월 19일 아파트 베란다에 조기게양 운동도 눈길을 끈다. 지난 15일 '여순사건 누가 왜 일으켰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회는 전 지역사회 연구소장이었던 주철희 박사가 연사로 나섰다.

철저히 개무시 당하는 여순사건...진실은?

제주 4.3사건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는 국가폭력의 잘못을 국가가 인정한 셈이다. 또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순사건은 다르다. 여수시민 1만6천여명의 억울한 죽음은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하다못해 진실규명 조차 안된 채 베일 속에 묻혀있다.

지난 2008년 노무현 정부시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여순사건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진화위는 피해 신청을 받아 직권조사로 전부 피해조사를 하겠다 결정했지만 조사를 하지 못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용역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로 넘어서면서 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진화위의 역량부족과 지역사회에 자료가 없었던 점도 아쉽다. 이에 대해 주철희 박사는 이같이 말한다.

"여순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저지른 사건입니다. 그 사건으로 우리지역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당시 여수인구의 2%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는 지역사회는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고 그냥 우리일 아니라고 덮어온 세월이 어느새 65년이 흐른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10월 19일은 억울하게 죽어간 여수시민들의 한과 아픔 그리고 피 끊는 분노가 서린 날이다. 역사는 이날을 '여순반란사건'으로 기록했다. 손가락 총을 맞아 영문도 모르게 죽어간 그들에겐 여지껏 좌익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국군 제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정부 진압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민 등 수천 명이 숨진 사건을 말한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에서 벌어진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여수 제14연대를 제주로 급파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4연대 소속 김지회, 홍순석 등은 '동족상잔 결사반대'와 '미군의 즉시 철수'를 요구하며 제주도 투입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여순사건의 발발 동기는 바로 제주 4.3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일어났다. 이후 5월 5일 평화협상이 체결된다. 하지만 미군정이 수세에 몰리면서 오라리 방화사건이 터진다. 급기야 제주에서 미군을 비롯해 최고비밀회의가 붙여진다. 여기서 제주 9연대장 김익렬은 여수에 있는 14연대장으로 전보 발령된다. 그가 광복군이라는 이유였다. 이후 그 해 10월 11일 박진경의 피살과 함께 제주경비사령부에 5연대, 6연대, 14연대가 편성된다.

하지만 출병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반란'이 일어났다. 1948년 10월 19일 오후 8시경 봉기가 시작된 것. 반란군은 오후 10시경에는 14연대를 모두 장악했다. 20일 새벽 여수 경찰서와 시내 주요 기관을 모두 점령한다. 또한 곧바로 순천으로 진격 20일 오후 2시경 순천을 장악하며 반란은 여수를 시작으로 전남동부지역으로 확산됐다.

8일간의 봉기...끝없이 이어진 좌익·빨갱이 색출

하지만 27일 여수를 마지막으로 8일간의 봉기는 막을 내린다. 이승만 정부가 여수와 순천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진압군을 투입, 여수 시내를 탈환하지만 무차별 공격으로 여수는 잿더미가 되고 만다. 이후 진압군은 대대적인 협력자 색출에 나선다. 시내 주요 5곳(서초, 동초, 종산초, 진남관, 공설운동장)에 시민들을 집결시켜 놓고 좌익과 우익으로 분류하며 악명을 떨친 '손가락 총'사건은 여수사람들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의 도가니였다. 빨갱이 즉 좌익혐의가 의심돼 손가락 총에 맞으면 즉결심판에 처해 총살이 이뤄진 것.

7년간 여순사건을 연구해 논문을 발표한 주철희 박사에 따르면 당시 여수 전체 인구가 17명8000명인데 보도연맹으로 희생된 3800명 정도를 포함 여순사건의 희생자는 대략 1만3000~1만6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수 인구의 약 2%가 희생당한 격이다. 이후 65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커녕 억울한 죽음에 국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제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여순사건으로 몇 명이 죽었냐는 질문입니다. 숫자가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제주 4.3사건, 5.18 광주민중항쟁은 민중들의 봉기입니다. 하지만 여순반란 사건은 군인들이 일으켰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습니다."

역사는 절대적으로 객관화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주철희 박사. 현사대를 전공한 그가 한 분야에서 7년을 넘게 여순사건을 연구해온 것은 한 세대가 지면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가 7년간 여순사건을 파고들면서 지금까지 만난 사람만 5000명이 넘는다. 그는 요즘 많은 곳에서 강연이 들어오지만 외부강연을 일체 하지 않고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수사건을 다룬 책 <불량국민들>이후 2탄이 곧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아부지는 빨갱이가 아니다, 그냥 죽었다"

그는 "현대사는 정치이념과 사상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시국이 불안한 요즘 특히 제 스스로가 검열을 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현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전라남도와 여수시에도 가시 돋힌 말을 쏟았다. 제주도가 대통령까지 특별법을 제정해 사과한 이유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주철희 박사는 "4.3사건은 도가 나서 자체 조사에 착수해 희생자 숫자를 내놓으니 국가가 덤벼든 것이다"면서 "근데 여수와 전남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하는 얘기는 우리 아부지는 빨갱이가 아니다, 그냥 가서 죽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죄송하고 참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우리지역에서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났는데 여수시는 15일 시민체육대회 하느라 바쁩니다. 시장님은 독도강연 다니시느라 바쁘시고..."

주철희 박사는 역사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히 얘기하지만 여러분이 제 강의를 듣고 편향적이다 말할 수 있지만 전 모든 근거를 자료로 보여드리겠다"면서 "지금까지 역사는 여순사건을 비롯해 모든 국가폭력을 일반적인 국가우익에 의해서 편향되게 얘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 역시 이 정도는 까지는 편향되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 박사는 또 여순사건이 터지자 지역민 90%가 동의했다는 상식을 뒤엎는 발언도 했다. 그 이유는 민심을 잃은 정부의 부정부패로 봤다. 일례로 당시 쌀을 2300원에 수매해 1만1000원에 되팔아 양곡창고에 쌀이 남아 돌았으나 쌀을 배급 받지 못한 민중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단다. 그러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역사를 크게 좌우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역사의 핵심은 바로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여수시민 90%가 동의하고 지지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란군에 동의하고 지지했다고 그렇게 무참히 죽여야 합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3권이 분립된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이려면 재판을 해야 하는데 빨갱이로 몰린 이들이 손가락 총을 맞으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여순사건 평화공원 조성해야

 강연회에 참석한 여순사건 유족회 이정삼(72세)씨는 현재 여순사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가 절실하다"면서 "평화공원조성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연회에 참석한 여순사건 유족회 이정삼(72세)씨는 현재 여순사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가 절실하다"면서 "평화공원조성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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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박사는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 여순사건 관련 그 누구도 개인일기가 나온 적이 없다"면서 "최소한 누군가는 일기를 썼을 것이다, 피해조사를 빨리 해야 하는 이유로 밑바닥의 자료를 찾아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강의에 참석한 여수모아치과 오창주 원장은 "지방자치나 특별법이 시행된 지 오래되었는데 여순사건에 관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주 박사는 "이 사건이 전라남도 여수, 순천 뿐 아니라 목포 무안, 고창에 이어 경상도 하동과 진주까지 그 피해가 광범위하다"면서 "전라남도가 추진해서 피해조사를 밝히면 국가가 해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정부가 성명서 하나 발표하면 끝이 아니라 우리 지역부터 조사를 하는 실질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여수넷통> 한창진 대표가 "우리 여수시민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우리의 역사를 누가 지킬 것이냐 여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면서"10월 19일 아파트 베란다에 최소한 조기를 달아 오늘이 바로 억울한 희생을 당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리자"고 강조했다.
 <여수넷통> 한창진 대표가 "우리 여수시민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우리의 역사를 누가 지킬 것이냐 여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면서"10월 19일 아파트 베란다에 최소한 조기를 달아 오늘이 바로 억울한 희생을 당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리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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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유족회 이정삼(72)씨는 '현재 여순사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가 절실하다"면서 "지역 국회의원이 공약한 평화공원조성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당시 7살 먹은 내가 70세가 넘었는데 여순사건을 잘 아는 동네 분들이 거의 돌아가시고 없다"면서 "여수에서 움직임을 보여야지 중앙정부도 신경을 쓰지 않겠냐"라고 항변했다.

<여수넷통> 한창진 대표는 "여수넷통은 여순사건 연구기관이 아니다"면서 "그런데도 작년부터 강연회를 가진 것은 우리 여수시민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우리의 역사를 누가 지킬 것이냐 여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어 "지역의 아픈 역사를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 국가가 관심을 갖겠냐"면서 "10월 19일 아파트 베란다에 최소한 조기를 달아 오늘이 바로 억울한 희생을 당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리자"면서 "향후 여순사건 관련 문화제 행사를 개최해 여수시민들이 들썩여야 정부가 여순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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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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