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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 독립운동가 전문 변호사, 애국자, 사법부 독립의 수호자, 청렴의 표상 등 여러 위대한 수식어가 앞서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그의 서세 50주기를 맞은 13일 추념식에선 생전 그의 이런 저런 일화들이 '모든 법조인의 사표'로 소개됐다.

그런데,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김병로 선생의 덕목에 차이가 있었다. 사법부의 수장, 행정부 장관, 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장이 김병로 선생의 수많은 일화 중에서 각각 고른 일화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가인 김병로'가 반영돼 있다. 

대법원장 "'늘 언동을 삼가라' 하셨다"...법무부장관 "국산품 애용하신 분"

'가인 김병로 선생을 추모하며'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가인 김병로 서세 50주기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황찬현 감사원장,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 '가인 김병로 선생을 추모하며'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가인 김병로 서세 50주기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황찬현 감사원장,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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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의 주최자라 할 수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김병로 선생의 업적을 골고루 언급하면서도 추념사 후반부에 "무엇보다도 선생께서 사법부 구성원의 인격수양과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몸소 법관으로서 청렴하고 강직한 삶이 어떤 것인가 보여주신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교훈"이라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이 강조한 김병로 선생의 일화는, "선생은 평생을 '계구신독(戒懼愼獨)' 즉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홀로 있을 때에도 사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동을 삼간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양 대법원장은 "선생은 '법관은 양심과 이성을 생명처럼 알아야 한다. 법관으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땐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라'라는 서릿발 같은 말씀으로 법관의 막중한 사명감을 일깨우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청렴과 강직의 표상으로서 선생께서 보여준 수많은 일화는 아직도 법관들이 옷깃을 여미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귀감이 되고 있다"며 "선생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법부의 존립과 권위의 기반이 국민의 신뢰에 있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고 강조했다.

'신뢰받는 사법부'는 양 대법원장이 지난해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으로, 예로 든 김병로 선생의 사례는 법관은 튀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지난해 12월 6일 양 대법원장이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말한 것과 같이 '법관은 사회적 논란이나 시류에 휩쓸림이 없이 오로지 법의 정신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판단한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지론을 김병로 선생의 사례를 빌려 또 한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든 김병로 선생의 일화는 "잉크가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날에도 '나랏돈을 아껴야 한다'며 사무실 난방을 하지 않으셨던 일, 외제품 사용하자는 직원에게 '국녹을 먹는 우리가 아니면 누가 우리 산업을 키우겠느냐'고 호통 치며 국산품 사용을 고집하신 일, 이렇게 항상 국민을 생각하며 청렴과 애국을 실천하셨던 모습"이었다.

황 장관은 "가인의 높은 뜻과 달리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항상 국민을 바라보셨던 가인의 뜻을 이어받아 국민이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누구든지 공평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가야 한다. 이것이 가인이 평생 염원하신 법치주의"라고 말했다. 이는 김병로 선생의 정신을 애국·애민으로 정리한 것.

'민족 인권변호사' 강조한 야당 법사위원장 "독재에 맞설 길은 사법부 독립뿐"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공직자 가인 김병로'를 추념하는 일화를 들었다면, 민주당 소속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항일투사와 인권변호사'로서의 김병로 선생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박 위원장은 추념사에서 "105인 사건, 대동단 사건, 단천 농민 조합 사건, 여운형·안창호 등이 연루된 치안유지법 위반사건, 흥사단 사건, 6·10 만세운동, 간도 참변, 정의부 사건, 대한광복단 사건 등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가인께서 변호한 사건은 무려 백여 건이 넘는다"면서 김병로 선생을 "민족 인권변호사"로 정의했다.

박 위원장은"조선총독부에 의해서 변호사자격이 정지되자 선생은 귀향하여 농사를 지으시면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셨다. 창씨개명도 거부하셨고, 일제의 배급도 받지 않으셨다"고 김병로 선생의 지조를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든 '가인 선생의 일화'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권의 기반을 굳히기 위해 '발췌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킨 정치파동이 있은 후 가인 선생은 법관들에게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한 것처럼 형식을 갖춰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라고 강조하셨다"는 것.

이어서 박 위원장은 "추모행사를 준비하신 양승태 대법원장님 이하 우리나라의 모든 법관들께서도 부디 가인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혼탁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는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가 돼선 안된다'는 야당의 입장이 강조된 추념사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이들 말고도 황찬현 감사원장, 김진태 검찰총장, 국회 법사위원들, 전직 대법원장들, 김병로 선생 유족 등이 참석했다. 김병로 선생 친손자인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나라가 잘 되려면 세가지 직종이 정의롭고 진실을 추구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며 "학문하는 사람,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법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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