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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그것을 읽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며 한 사회의 진로와 역사의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책의 위대함 때문인지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정기적으로 책 소개 및 서평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책이 독자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이 있다면, 도대체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충격과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낸 사람들을 만나, 책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다. 언젠가 책을 쓴 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꿈을 이룬 저자의 인터뷰가 미래의 저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 말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 아라키 히로히코의 <죠죠의 기묘한 모험>. 일본 문화에 약간의 관심만 있더라도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봤을,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기념비적 작품들이다.

 <아키라>
 김완씨가 번역한 작품 중 하나인 <아키라>.
ⓒ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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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작품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 외에도 특이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점이다. 번역자는 바로 '김완'이다. 이 기념비적 대작들이 오직 한 사람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김완의 트위터(@panzerwind) 바탕화면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 카츠라기 미사토. 여기까지는 필자가 보유한 '덕력(덕후(오타쿠)의 공력)'으로 파악이 가능했지만, 트위터 프로필 사진의 캐릭터 신원을 파악하기에는 필자의 덕력이 부족했다.

한 사람이 <은하영웅전설> <아키라>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다 번역출간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덕력을 보유해야 할까? 그 덕력의 깊이와 심오함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김완 씨를 만났다.

한 사람이 이 작품을 다... 이 남자의 '덕력'

 덕력이 무려 십갑자에 이르는 번역가 김완
 덕력이 무려 십갑자에 이르는 번역가 김완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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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번역가 중에서도 자신을 '죠죠러'로 자청하면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 번역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죠. 단지 그 분은 애니북스 출판사와 일을 안 하셨고 저는 애니북스 출판사와 일을 했다는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에요. 소위 '덕질'이라고 그러잖아요? 제 취미가 그런 분야인데요. '나는 이런 거 좋아해. 이런 거 늘 하고 싶었어.' 이런 식으로 제 취미에 대해 기탄없이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니는 스타일이라, 출판사 측에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 맡겨 주신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다 쓴 치약을 꾹 눌러 짜내는 듯한 억지스러움이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겸손함, 그것은 김완씨와 친분을 나누기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덕력을 측량하는 데는 답답한 장애물이다. 역시 고수는 함부로 덕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차면 넘치게 된다. 대화 중에도 덕력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일 처음 서브컬처(하위문화)에 빠졌던 것은 게임이었죠.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빠져들게 되면서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 제가 쓰던 컴퓨터 기종이 MSX였는데, 게임 중에 메탈기어라는 것이 있었죠.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지금도 여전히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스테디셀러인데요. 제가 했던 것은 코지마 히데오의 데뷔작이었죠.

메탈기어를 해보고 어린 마음이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게임들은 그저 단순히 적을 부수고 죽이는 내용이었는데, 이 게임은 적을 죽이면 안 되는 거예요. 몰래 잠입해서, 설사 적을 죽이더라도 몰래 뒤에서 소리 안 나게 죽여야 하거든요.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중간에 제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잡혀서 갇히는 이벤트였어요. 탈출을 했는데 경비견이 계속 쫓아오는 거예요. 경비견이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적 중 하나거든요.

얘들을 힘겹게 물리치면서 가다 보면 본부에서 연락이 와요. 계속 경비견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너한테 발신기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니까 짐을 조사해보라는 거예요. 아이템을 열어보니 정말 발신기가 있는 거예요. 발신기를 버리면 그때부터 경비견이 안 쫓아와요. 메탈기어는 1987년 게임인데 당시에는 이런 스타일의 게임을 본 적이 없으니 너무 센세이셔널했죠."

'아리가토'는 '고맙습니다'? 그게 아닌데

좋은 음악을 계속 듣다보면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고, 멋진 글을 자주 읽다보면 나도 한번 멋진 글을 써보고 싶어지듯, 메탈기어는 김완씨에게 좋은 게임을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워줬다.

게임에 이어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중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일본 만화잡지 <뉴타입>의 애독자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중국대사관 주변의 외서 서점을 누비고 다녔다. 당시 자금력이 달려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나 LD를 취급하던 회현상가 쪽으로는 진출하지 못했다며 웃는다.

게임의 스토리를 만들겠다는 뜻을 가진 소년에게 지름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국어국문학과를 가야 할지 아니면 컴퓨터 계통을 전공해야 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1996년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나름 전공에 흥미를 느껴 동아리에서 미로 찾는 마이크로마우스를 제작하는 데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꿈꾸는 게임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이듬해인 1997년에 게임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을 떠나게 된다.

"드로이얀이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였어요. 당시 저는 게임잡지의 필자였는데 드로이얀에 관한 분석 및 공략 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게임이 정식 출간되기 전이라 잡지사에서 받은 시디로 게임을 하려는데 실행이 안 되는 거예요. 마침 게임 회사가 가까워서 직접 시디를 들고 찾아갔죠. 그 일이 인연이 돼서 차기작인 드로이얀 넥스트 제작에 참여하게 됐어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기획에도 참여해서 캐릭터들의 동작 같은 것도 좀 건드려봤는데요. 그 과정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만든다는 것이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게임을 통해 뭔가를 체험할 수 있어서 즐기는 것이지 게임 스토리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거든요. 유저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게임요소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으면, 그 게임요소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스토리와 세계관을 만들 수 없더라고요. 전에는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생각에 게임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우선적으로 고민했거든요.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됐죠.

게임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적 요소를 잘 기획한 후에,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스토리와 세계관을 나중에 설정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게임 개발론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시는 게임에서 퀘스트, 시나리오 같은 것이 강조되던 시기였고, 소설 등의 원작을 받아서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흔했어요. 그런 이유로 회사에서도 게임성보다 시나리오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강했지요. 이렇게 게임제작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결국 게임 개발하는 일을 그만두게 됐죠."

당시 만화 스토리 작가집단 '혼'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같이 활동하는 동생의 추천으로 처음 번역 일을 하게 됐다. 다년간 쌓은 덕력으로 일본어에는 꽤 자신이 있었고, 번역 의뢰를 받은 만화 <호에로펜>의 주인공이 만화가였기 때문에, 만화 스토리작가인 자신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번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아니 솔직히 어려웠다.

"일본어만이 아니라 국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국어사전, 일본어사전, 일일사전, 유의어사전을 뒤져가며 작업을 했어요. 저는 번역이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작가의 문체나 말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제가 해석해서 한국말로 바꿔야 하잖아요. 그런데 해석 과정에서 아무래도 자꾸 제 생각이 들어가게 되더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가급적 제 목소리는 낮추고 작가의 목소리는 높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 과정을 잘하기 위해서는 역시 국어 실력이 필요하더군요. 적절한 우리말을 찾아야 하니까요. 일본어 번역이란 것은 일본의 문화를 우리나라의 문화에 맞게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문화와 역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아시다시피 일본의 문화와 역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결국 문화와 역사의 차이 때문에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 틈을 메우는 것도 번역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자는 일본의 문화도 잘 알고 우리나라의 문화도 잘 알아야 하죠. 번역하면서 늘 배우고 있습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 일본학과에 다니는 이유도 일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완씨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사실상 '직역'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리가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맙습니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아리가토는 한자로 '有難う'라고 쓰는데 문자 그대로 '어려움이 있다'라는 의미다. 어려움이 있는 게 고마운 것이랑 무슨 상관인가? 누군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나는 그것을 꼭 갚아야 하니까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서도 일본인 정신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안합니다'라고 알고 있는 '스미마셍'도 풀어보면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의미란다. 내가 당신에게 잘못했으니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게다. 이런 식으로 언어의 뿌리를 파고들다 보면 결국 '직역'이란 것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아리가토를 '어려움이 있다'로 번역하지 않고 '고맙습니다'로 번역하는 자체가 직역이 아닌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완은 일본어의 본뜻을 잘 살릴 수 있는 우리말을 찾는 데에 온 힘을 쏟는다. 그가 번역가로서 직역보다 의역을 선호하는 이유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애니메이션판 주인공 양 웬리. 얼빵한 모습에 숨어 있는 제갈량 뺨치는 전략전술로 우주를 뒤흔든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애니메이션판 주인공 양 웬리. 얼빵한 모습에 숨어 있는 제갈량 뺨치는 전략전술로 우주를 뒤흔든다.
ⓒ 키티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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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어를 할 줄 아니까 번역 한 번 해보자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외국어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앞서 강조했다시피 양국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하고 언어에 대한 고민과 이해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많이 번역하는 라이트 노벨(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태어난 소설의 일종) 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번역보다 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라이트 노벨만의 코드가 있고 패러디가 있고, 그 장르 내에서 소비되는 문화가 따로 있는데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일반적인 일본 단행본 번역하는 분이라 하더라도 '츤데레가 뭐야?'하면서 당황하게 되는 거죠."

"일본 무시하기만... 그러다 당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소싯적부터 쌓은 덕력이 십갑자(十甲子)에 이르는 김완씨는 어느덧 일본인이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을 테다. 이 내재적 시선은 분명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가지는 세계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역시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이해하게 되면서 가지는 양가적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아닌가.

"복잡한 기분이 있죠. 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당시 국제법으로 나라를 문명국, 야만국, 미개국으로 분류해서 문명국이 야만국과 미개국을 다 점령해도 국제법상 합법이었어요. 지금 보면 말이 안 되죠. 미쳐 돌아가는 세계였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그때 준문명국으로 분류되었어요. 당시 세계 7위 수준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청나라, 바로 그 다음이란 얘기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일으켜서 승리를 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고, 그러면서 점점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거예요.

1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군 측에 속해서 승전국이 됐지만, 이후 폭주하면서 중국에 들어가 학살을 벌이고, 일본 국민들에게 그런 나라의 정책을 강요했습니다. 국민들의 정서에는 천황이 명령하면 따른다는 것이 있으니까, 일억일심(一億一心)으로 옥쇄(玉碎)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거죠. 그러다가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고 국민들 사이에는 전쟁에 신물을 느끼는 분위기가 생겼죠. 그런데 전범으로 투옥된 정치인들이 전승국인 미국의 대소련반공정책에 협조하면서 풀려나와 조금씩 옛 모습을 되찾아 가더니 현재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겁니다. 최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물의를 일으킨 아베 총리도 당시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거든요."

김완씨는 양가적 감정 속에서도 일본을 바라보는 확고한 시각을 정립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흔들림 없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뿌리가 약한 풀은 바람이 거세게 불면 이리저리 흩날리지만 뿌리가 깊이 박힌 풀은 태풍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잘 알고, 일본을 내재적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김완씨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아키라>의 애니메이션판 주인공인 카네다 쇼타로. <아키라>는 당시 1988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퀄리티를 보여줬다.
 <아키라>의 애니메이션판 주인공인 카네다 쇼타로. <아키라>는 당시 1988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퀄리티를 보여줬다.
ⓒ 아키라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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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련 전시회가 있었어요. 임진왜란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요. 전시물 설명에 '일본군이 쳐들어왔다'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초등학생이 전시물과 관련해서, 어째서 '왜구'라는 표현을 안 쓰고 '일본군'이라고 썼냐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 다들 대단히 응원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왜구는 우리나라, 중국,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 내에서도 피해를 준 일종의 해적이거든요. 일본군과는 엄연히 다른 집단이죠.

만약 왜구라는 표현을 쓴다면 우리는 일개 해적집단 따위에게 수도까지 점령을 당한 치욕의 역사를 쓰는 셈이 되죠. 일본을 비하하기 위해 왜구라는 표현을 쓴다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격입니다. 사실관계도 틀린 거고요. 제가 그 사실을 지적하는 글을 남겼는데 당연히(?) 저한테 화살이 돌아오더라고요. 일본군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거고, 백번 양보해도 왜군이라고 해야 하는 거다, 이순신 장군이 한낱 해적 따위한테 이긴 거냐? 그건 아니잖아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게 되는 거죠. 그런데도 우리가 일본 비위를 맞춰주려고 왜구라는 표현도 못 쓰느냐는 반응이 오더군요."

부지불식간에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김완씨는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문화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고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단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당시 시대의 상황을 보게 되지만 그런 관점으로만 시대와 역사를 보면 편협해지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쟤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고 무시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기만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그래서 좋을 건 없거든요. 알고 들어가야 하는데 알려는 시도조차 안하면서 무시하기만 하는 것은 안 좋은 거예요. 제가 모르고 목소리 높였다가 가장 크게 당했던 게 뭐냐면, 박정희 정부 때 맺은 한일협정이었어요. 그때 '이로써 한·일간의 과거는 청산된 것으로 한다'는 서명을 해버렸잖아요. 우리나라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본한테 법적으로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일본 애들이랑 '배틀'이 벌어졌어요. 한일협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너희들 왜 과거 청산도 안 하고 그러냐고 항의했는데, 일본 쪽에서 한일협정으로 청산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대응하면 그 순간 당황해서 패배해 버리는 거죠. 그런데 한일협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예컨대 그 협정의 부당함이나 결함 등에 대해서 준비해서 논리를 갖추면 차분하게 대응해서 설득할 여지가 있거든요. 너무 흔해 빠진 얘기긴 하지만, 이기려면 알아야 해요. 꼭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알아서 나쁠 건 없잖아요."

직선코스가 아닌, 구불구불한 인생길을 거쳐 번역이라는 1차 목적지에 다다랐기 때문인지 그는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대한 고민이 많았다. 번역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서, 후배들은 본인이 범했던 시행착오를 좀 덜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단다. 여전히 스토리 작가의 길에도 미련이 남아 있어서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을 쓰겠다고, 낮지만 확신을 가진 톤으로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위해 한마디를 부탁했다

"번역을 처음에는 기술의 영역에서만 봤어요. 외국어 스킬, 국어 스킬, 문장력 같은 손끝에서 나오는 감각 말이죠. 그런데 점점 알면 알아갈수록 기술만으로는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넓어지더라고요. 문화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아야 하고, 언어의 뿌리를 캐야 하고, 결국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필자 역시 이래저래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번역일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팍팍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김완씨가 저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일을 얘기하고 기대에 차서 미래를 설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 김완씨가 번역하는 모습이 MSX 컴퓨터로 메탈기어를 하고 있는 장면과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자를 당해낼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김완씨가 보유한 십갑자 덕력의 비밀이다.


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세미콜론(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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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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