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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3개의 노선을 1시간 동안 타는 20대 후반의 직장녀입니다. 지하철 출퇴근 시 특별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마주하니 지하철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기자 말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은 '점심 메뉴 고르기'라고 하는데, 그에 못지 않게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그나마 숨 좀 쉬면서 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는 3개 노선으로 갈아타기에 환승하기 가장 빠른 칸을 선호하지만, 이런 곳에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사람들이 더 붐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핸드폰도 음악도 책도 멀리하며 환승의 최적화 칸에서 넋 놓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출근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느려지면서 가까스로 지하철을 탔는데, 내가 탄 곳은 한 칸마다 지정되어 있는 장애인석이었다. 환승칸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난 또 다음 환승구간에서 얼마나 발에 땀 나도록 뛰어야 하나 하며 숨을 고르며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지하철 배려석 ⓒ 임지영
▲ ▲ 지하철 배려석 ⓒ 임지영
ⓒ 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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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탑승한 나이는 30대 초중반 정도 보이는 앳된 얼굴을 한 남자가 한쪽 다리와 손이 좀 불편해 보였다. 이 남자는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데 "죄송합니다.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입니다"라고 말하며 장애인석까지 들어갔다. 당연히 장애인석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을 텐데, 과연 이 남자가 앉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난 이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장애인석으로 가니 황해가 물을 가르듯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다. 사실 좀 놀랐다. 노인공경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금 이 배려석은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을 텐데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다니…. 배려석 사람들끼리의 따스한 마음이 오고 가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앉을 수 있는 칸에는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칸에 하나씩 있는 장애인석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 중 하나이다.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석으로, 내가 그 자리에 앉을 확률은 없으며 앉는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여 가시방석일 것이다.

배려석 중에도 서열이 낮다고 말한 수 있는(특히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 배려하세요. 라고 문구가 쓰여있음) 임산부의 경우 배가 많이 불러오지 않으면 임산부인지 모르기에 정부에서는 임산부 목걸이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어 당당히 배려석에 앉을 수 있다. 또한 일반칸 끝 두 자리는 임산부석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공중도덕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씁쓸한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이 남자 장애인을 보고 다른 장애인과 특별하다고 느낀 점은 내가 장애인인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자리에 대한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인지, 아니면 선천적 장애로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혜택받는 것이 아닌 정당한 나의 의사를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해 보여서 좋았다.

난 대학교 시절,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데 어떠한 점이 불편한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어느 지하철역의 경우, 휠체어 리프트를 타기 위해 인터폰을 누르면 공익근무요원이 오는데 언제 올지 몰랐다. 결국 아무 대답 없어서 장정 4명이 붙잡고 계단을 내려와 지하철을 탔었고,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틈이 넓어 휠체어 바퀴가 빠질 수 있는 역이 어디인지 조사도 했었다. 비록 몇 정거장 조사로 평균을 낼 수는 없지만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위와 연결하여 지하철, 버스 환승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는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장애인들에게도 환승제도는 반가운 소식일까?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비장애인은 5분이면 되는데 장애인은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광화문역은 다른 역사에 비해 승강장이 매우 깊어 장시간 리프트를 타야 하는 데 불편하고 느리며 부담스러운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광화문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조차 불투명하다고 밝히고 있는 서울시와 서울도시교통공사의 입장. 이러니 장애인들에게는 환승제도가 나의 경제적인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거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는 이야기할 것이다. 환승시간이 1시간이기에 장애인들도 충분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낮에는 환승시간이 1시간이기에 가능할지 몰라도 밤에는 30분으로 단축되면서 혜택을 못 받을 거며 시간만 확보되면 무엇하는가, 시설이 못 따라가고 있는데….

5호선으로 갈아타면서 5호선 라인에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어 장애인들을 많이 마주친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 남자 장애인은 아침 출근길에 거의 매일 만나니 안 보이면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이제는 좀 친숙하게 다가온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이 남자는 무가지 신문을 반으로 접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들고 항상 날씨 면을 보고 있다. '19에 25'라는 말을 반복한다. 최저 기온 19도 최고 기온 25도를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아마도 장애인복지관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오늘 날씨가 어떤지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난 이 남자장애인으로 인해 매일 아침 날씨를 듣는다.

그리고 비장애인석에 자리가 나도 앉지 않고 옆칸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행동을 반복하며 승객이 들어오면 빈자리를 안내해 준다. 장애인석이 아니니 내가 앉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 장애인석이 비면 슬며시 가서 앉았다. 사실 비장애인석도 사회적 약자가 오면 배려해줘야 하는 자리인데 장애인, 비장애인석을 나눠 놓으면서 오히려 우리 마음의 벽을 더 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7호선에서 만난 장애인도 5호선에서 만나는 장애인도 교통약자 배려석이 내 자리임을 알지만 비장애인석도 그들의 자리일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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