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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책표지.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책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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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이하며 걸음마를 시작한다. 학교에 들어가고, 아빠가 잡아주지 않아도 두발 자전거를 타게 되고, 사랑에 눈 뜨고 첫 키스와 첫 경험을 한다. 운전면허를 따고, 졸업하고 어렵사리 취직하고,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중년을 맞이하고 은퇴하고 늙어가며 끝내 세상을 뜬다.

모두가 이런 순간들을 하나씩 거치며 자라고 사랑하며 늙어간다. 흔해 보여도 한 사람 한사람에게 각각 다른 기억으로 남는 순간들. 어떤 순간은 원치 않아도 겪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순간은 계속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겪고 나면 인생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이와 같은 통과의례들이 있다.

책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의 저자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는 살면서 거치게 되고 거처야 하는 20가지의 철학적인 순간들을 제시한다. 탯줄에서 사르트르가 인용한 '내던져짐'을 새롭게 해석하여, 태어남을 '스포츠카를 받았지만 바로 열쇠를 잃어버린 것'으로 풀이하며 생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임을 상기한다.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따라, 실수투성이인 신입사원이나 직업을 찾아 분투하는 취업준비생을 '아니말 라보란스(일하는 동물)'에서 '호모 파베르(물건을 만드는 인간)'으로 재평가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아직 열가지 통과의례 밖에 겪지 못하여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무대로, 그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스무번째 '내세' 까지 여러 가지 배역을 맡으며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위대한 철학자들도 늘 고심해 왔던 '내 인생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타기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을 때, 의심과 믿음의 갈림길에 선다.'

19세기 덴마크 철하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신앙의 도약' 개념을 빌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아주는 손을 놓는 그 순간을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도약하는 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가 잡아주던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상태까지 가려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연속적인 궤적을 그리며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두 가지 존재 질서 사이의 협곡을 뛰어 넘어야 한다. (즉, 종속에서 독립으로, 안전에서 자기 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에서 말하는 결정의 광기, 이성이 행위의 이름으로 불안에 처하게 되는 어지러운 분열의 순간을 끌어안아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하는 운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하게 되고 아이슈타인은 자전거 타기를 인생에 비유했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마침내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면 우리는 반대편에서 맛볼 수 있는 환희를 느낀다.

이 아드레날린의 분출과 더불어 색다르고 새롭고 모순적인 규칙이 우리에게 각인된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빠른 속도로 전진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바꿔 말하면 위험이 증대할수록 안전도 커지는 셈이다. 아버지가 뿌듯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뒤에 처지면 나는 이제 혼자 힘으로 나아가면서 장차 세월이 흘러 집을 떠나게 될 순간을 미리 경험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혼자서 자전거의 방향을 결정하고 거기에 수반되는 특유의 침묵을 견딘다는 의미이다. 주변에서 온갖 소음이 들리지만, 내가 앞으로 질주하면 그것들은 소리의 터널을 이루어 우리에게 길을 내준다. 자전거는 흔히 유년기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측면이 강한데 그저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한 게 아니다.

첫 키스

'키스는 침묵이며, 단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빌어 사소한 오락에 그칠 수 있는 키스가 더 불안한 결말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첫 키스는 죽음을 향한다는 것이다. 정의상, 통과의례에 해당하는 첫 키스는 태어남에서 더 멀어져 반대편을 향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키스의 괴이한 특성, 죽음의 조짐을 나타내기 위해 돌처럼 차가운 성자들의 조각상을 언급하고, 입을 무덤(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무덤)으로, 혀를 그 무덤 안에 가만히 누워 있거나 움직이는 기관으로 비유했다.

18세기 후반 독일 낭만주의의 태동기에 예술을 더 큰 이성의 구도에 맞추기 위해 애썼던 칸트는 예술이 '목적 없는 목적성', 수요 없는 공급을 만들어낸다고 결론지었다. 회화 작품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나름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실질적 용도가 없다. 그림은 요구되지는 않았어도 목적을 가진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키스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마치 중대한 의도가 담긴 것처럼 이루어지고 전해진다는 점에서 키스는 무언가 중요한 행위 같지만 크게 보면 잉여행위다. 키스 자체에서는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연인들에게 키스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나 일단 시작되면 강제적인 의무처럼 지속된다. 예술처럼 키스도 목적 없는 목적성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칸트가 말하는 숭고의 관념을 구현한다. 오늘날 숭고라는 말은 빼어난 아름다움이나 경이를 뜻하지만 원래는 모호함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숭고는 인간의 이성과 신과의 대립 사이에 놓인 일종의 황야 지대를 가리켰다. 논리적 계산이 힘을 잃는 곳, 불현듯 위를 올라다보고 하늘에 계신 신의 거대한 존재를 감지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숭고는 쾌락에 못지않게 공포도 자아냈다. 자칫하면 강력한 신성의 폭풍 속에 길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이렇게 방향감각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숭고는 키스와 비슷하다. 눈을 보이지 않고 몸은 다른 신체에 단단히 속박된다.

키스를 하면서 동시에 말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키스는 말을 완전히 대체한다. 키스는 침묵이 되고, 합리적 대화가 두절되고, 우리는 말 그대로 말문이 막힌다. 셰익스피어가 키스를 조각상에 비유한 것은 일리가 있다.

철학이란 결국 즐거웠던 순간에 깊이를 더해주고, 잊고 싶은 경험에서조차 의미를 찾아내며, 그 괴로움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잊고 싶었던 순간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철학이 된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 자전거 타기에서 첫 키스까지, 학교에서 이사까지 내 인생의 20가지 통과의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 남경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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