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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읍내 커피집에서
 고성읍내 커피집에서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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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을 막 시작한 부산상고 출신 정해룡 작가
경남고 출신 이상부 형께 자문 받으며,
하시는 말  "세계는 넓고 배울 건 많다"

- 이상옥의 디카시 <만학도>

경남 고성읍내 커피집 '놀'에서 고향 선배 이상부 형님, 정해룡 작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고성군 소재지 고성읍에 요즘 부쩍 좋은 커피집이 많이 생겼다. 작은 읍내인데 생각보다 커피집이 많이 생겨 어떻게 영업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손님들이 많다.

고성 읍내에는 은사들이 많아

하기야 50대 후반인 나 같은 사람도 즐겨 찾으니, 고성 읍내 커피집이 잘 되지 않겠는가. 이문열 작가의 고향 경북 영양군 군청 앞에 있던 '문화 서점'이 30년 넘는 역사를 뒤로하고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는 기사가 지난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고성 읍내에는 영광서점, 교학사 등 제법 큰 서점이 세 군데나 있다. 아마, 고성 읍내에는 숨어 지내는 선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본 연재에서 이미 이상부 형님(나와는 같은 집안이다)과 정해룡 작가에 대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상부 형님은 고성 출신으로 경남고와 부산대 상대를 거쳐 직장에서 정년 퇴임하고, 자녀 교육도 잘 해 아들은 의사로, 딸은 교사로 키웠다. 퇴임 이후에는 고향 고성에 내려와 욕심 부리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 나는 상부 형님을 우리 시대의 은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의 작가 정해룡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의 작가 정해룡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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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룡 작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하게 아버지가 희생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지독한 어려움을 겪으며 자랐다. 어렵게 고학으로 부산 상고를 졸업했는데, 학창 시절에는 늘 문예 반장을 했다. 정해룡 작가는 한전을 정년 퇴임하고 지금 고성 문화원에 고성군지 상임집필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근자에 집필한 소설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당항포 해전을 승전으로 이끈 기생 월이의 일화를 다룬 것으로, 고성 지역에 구전돼 오던 것을 소설로 펴낸 것이다. 곧 영화화돼 다시 세상 알려질 것이다.

근자에 고향 고성에 살면서 틈만 나면 이상부 형님, 정해룡 작가 같은 고향 선배들과 고성 읍내 찻집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같이 사우나도 하고, 저녁을 먹는다. 내가 사는 곳은 고성 읍내가 아닌 마암면 장산리로, 승용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서로 시간이 맞으면 내가 고성 읍내로 달려가서 금방 만난다. 어린 시절 고성 읍내 한 번 나가려면 완행버스를 타고 낑낑대며 마치 서울이라도 가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는데, 격세지감이 어찌 느껴지지 않겠는가.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카톡도 시작

 정해룡 작가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으로 좌중을 휘어잡는다(지난 1월 9일 고성문화원과 디카시연구소 신년교례회. 우측 정해룡, 좌측 이상부)
 정해룡 작가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으로 좌중을 휘어잡는다(지난 1월 9일 고성문화원과 디카시연구소 신년교례회. 우측 정해룡, 좌측 이상부)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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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룡 작가는 글을 써도 만년필로 쓰고, 서적 구입도 인터넷으로 하지 않고 지역 서점을 살려야 한다면서 꼭 영광서점 등에 주문 한다. 디지털 문화에 너무 휩쓸리다보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스마트폰은 처다보지도 않더니, 최근에는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카톡도 막 시작했다.

새로운 지평으로 열린 디지털 문명에 이제 막 진입했으니, 공부할 게 많이 생겼다. 이상부 형님도 최근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나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좋아요'도 눌러 주고 댓글도 간간이 달아준다.

아직 서점이 살아 있는 문화의 도시(?) 고성 읍내에서 이상부 형님, 정해룡 작가 같은 만학도 인텔리들과 커피집에서 책 읽은 얘기,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담론으로 나누고, 틈틈이 SNS로도 소통하며, 저녁도 같이 하며 지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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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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