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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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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코스는 이 로마시대 다리를 건너서 저기 궁전으로 넘어가면 좋을 것 같군. 그런 후에는 강변길을 걸으면서 트레킹을 마무리 해보는 거야.'

직업병인가? 필자는 스페인 도시여행을 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트레킹 코스를 짜고 있었다. 어느 코스로 가야 역사 유적을 연이어서 만날 수 있을까, 어떤 길이 사람들의 시선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까, 어느 바르(bar)에 가야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등등... 그러면서 실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중에 리딩 할 일 있으면 반값에 한 번 해봐야겠다. 해외여행이라고 비싸게 할 필요가 있나? 반값에도 충분하지.'

고도 톨레도(Toledo). 로마시대에는 자치 도시가 있었고, 서고트 왕국 시절에는 도읍지였던 곳. 이슬람 무어인들도 요새로 사용한 곳이다. 이렇듯 2000년도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톨레도를 탐방하다보니, 서울과 충남 공주에서 행한 역사트레킹이 생각났다.

동선을 잡기 위해 답사를 하면서 애를 먹던 일, 해당 유적지에서 무슨 설명을 해야 하나 하며 답답해했던 일. 그렇게 시작 전에는 전전긍긍했지만 트레킹이 종료됐을 때는 참가자들과 즐겁게 뒤풀이를 했던 일 등등... 그런 것들이 필자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고추장 비벼먹고 톨레도를 향해

세르반테스 톨레도 성 인근에 서 있는 세르반테스 동상. 톨레도는 세르반테스의 주 활동 무대였다.
▲ 세르반테스 톨레도 성 인근에 서 있는 세르반테스 동상. 톨레도는 세르반테스의 주 활동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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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여행 17일째

한인 민박집에서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안주인께서 특별식으로 닭백숙을 해놔서 고추장에 발라 먹었다. 닭백숙을 고추장에다 비벼서 밥과 함께 먹었더니, 속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든든했다. 빵이나 치즈, 커피 등을 좋아하지만 필자도 역시 별 수 없는 한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져 있다. 무정차 버스로 약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왕복 버스비도 약 10유로 정도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스페인에 오면 꼭 한 번은 들러야 할 도시로 여겨진다.

톨레도 톨레도는 예로부터 철제 산업이 발달했다. 그래서인지 중세시대 기사들이 쓰던 칼과 방패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이 많았다.
▲ 톨레도 톨레도는 예로부터 철제 산업이 발달했다. 그래서인지 중세시대 기사들이 쓰던 칼과 방패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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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차창 밖의 풍광에 매료되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벌써 종착지였다. 역시 톨레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터미널에서 내려 구도심 쪽을 바라보는데 예사롭지 않은 풍광이었다. 옛 건축물과 성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마치 중세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톨레도 여행의 시작은 언덕길을 올라가 비사그라 문을 통해 톨레도 구 시가지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 비사그라 문은 카를로스 1세가 1550년에 축조한 문으로 일명 '성스러운 문'이라고도 불린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인 카를로스 1세는 이 문의 정면에다 자신의 가문의 문장을 새겨놓았다.

독일 출신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

알칸타라 다리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알칸다라 다리. 다리 끝 부분에는 방어를 위해 성채가 올려져 있다.
▲ 알칸타라 다리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알칸다라 다리. 다리 끝 부분에는 방어를 위해 성채가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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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가 문장에도 보이듯 카를로스 1세는 당시 스페인 국왕이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독일 지방을 통치하는 황제가 스페인 국왕을 겸임할 수 있었던 건 결혼을 통해 왕실끼리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인데 '정복왕' 윌리엄 1세(1028~1087) 같은 경우도 프랑스 노르망디 공이면서 영국의 왕이었다. 그는 영국의 왕이면서도 주로 프랑스 지역에 거주했다. 영어도 못했다고 한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로스 5세로 불렸다. 그는 합스부르크 출신답게(?) 스페인보다는 독일 지역을 우선시 했는데 그로 인해 스페인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의 집권 초기에 발발한 코무네로스(Comuneros) 반란의 원인 중에는 외국 출신 왕에 대한 반감도 한 몫을 했을 정도였다. 코무네로스 반란과 관련된 이야기는 앞선 여행기(관련 기사 : "<백설공주>에 나오는 세고비아성, 직접 보니...")에 잠깐 언급이 되어 있다.

집권 40년 동안 스페인에 있었던 시기가 고작 16년 밖에 되지 않았던,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였지만 그는 스페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을 아들로 두었다. 그가 바로 스페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펠리페 2세였다.

스페인 내전의 상흔을 간직한 곳, 톨레도 성

톨레도 성 스페인 내전 당시 격전지였던 톨레도 성.
▲ 톨레도 성 스페인 내전 당시 격전지였던 톨레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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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그라 문을 지나 톨레도 성(Alcázar of Toledo)으로 향했다. 톨레도가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이곳에서 수많은 분쟁이 일어났다는 뜻일 게다. 그런 분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바로 톨레도 성이었다.

톨레도 성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데 멀리서보면 빈틈이 없는 단단한  하나의 성채처럼 보인다. 로마시대부터 궁성이 있었던 이곳은 수많은 세월을 거치는 동안 계속해서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현재 톨레도 성의 원형은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 때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의 톨레도 성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 본 성의 형상은 고풍스럽지만 실제 외관의 벽돌 하나하나는 비교적 때가 덜 묻어 있었다.  

이렇듯 톨레도 성은 스페인 내전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소개를 해보겠다.

1936년 7월 27일. 당시 톨레도 성은 프랑코 휘하의 호세 모스카르도(José Moscardó) 대령이 사관생도들과 함께 방어를 하고 있었다. 외곽에서는 인민전선이 진을 치고 성을 포위한 상태였다. 인민전선은 모스카르도 대령의 16살 아들을 인질로 잡고, 톨레도 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와 관련된 전화 통화 내용이다.

"나는 인민전선군 대장 바르델로 소령이오.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 아들을 죽일 것이오."
"항복은 없소."
"최후통첩이란 말이오."

(중략)

"아버지. 저 루이스에요."
"아들아, 스페인 국민으로, 기독교인으로 만세 두 번을 외쳐라. 한 번은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한 번은 스페인을 위해…."
"예, 아버지. 신이여 만세! 스페인 만세!"

탕탕

어린 소년의 죽음 때문인지 성 안에 있던 프랑코 군은 70일간 지속됐던 인민전선의 포위를 이겨냈다. 이런 일화 때문인지 톨레도 성은 복원과 함께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70일간 계속된 인민전선의 혹독한 포위를 견뎌내고, 성을 지키는 최고 사령관의 어린 아들의 장렬한 죽음까지... 이곳은 이후 '스페인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어버린다. 독재자 프랑코는 이를 놓치지 않고 톨레도 성을 선전장으로 활용하게 된다. 

비사그라 문 일명 '성스러운 문'이라고 불린다.
▲ 비사그라 문 일명 '성스러운 문'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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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에피소드와 관련하여 몇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먼저 대령의 아들이 전화 통화 중에 죽지 않고 한 달 후에 벌어진 인민전선에 대한 보복공습 때 총격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어린 아들의 죽음을 통해 인민전선의 잔악성을 고발함으로써 프랑코 측의 만행을 덮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당시 '가디아 시빌(Guardia Civil)'이란 공안조직이 다수의 남성 인질들을 죽였는데 그 만행을 덮기 위해 어린 아들의 죽음을 더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루이스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과거의 일로 돌리지 않고, 또한 서양 사람들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톨레도 성을 방문하는 우리들의 책무일 것이다.

정신 없었던 톨레도 성당

톨레도 성당 톨레도 성당
▲ 톨레도 성당 톨레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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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근현대사의 아픔까지도 품고 있는 성을 지나, 필자는 톨레도 성당을 향해갔다. 아주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갔다.

"예? 8유로요?"

멈칫했다. 무슨 성당 입장료가 그렇게 비싸단 말인가. 8유로면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래도 발걸음을 돌릴 수 없어 표를 끊었다. 속으로 욕에 욕을 해대며 말이다.

톨레도 대성당은 페르난도 3세 재위시절인 1226년에 짓기 시작했다.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완공 때까지 무려 187년이나 소요됐다.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이곳은 톨레도 여행의 필수코스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핵심 코스라서 그런지 성당 안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같은 규모의 세고비아 성당은 한산했지만 톨레도 성당은 자칫하면 줄서서 관람해야 할 정도로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8유로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톨레도 대성당은 훌륭했지만 인파에 떠밀리는 것이 싫어서 서둘러 다음 탐방지로 향했다.

천혜의 요새 톨레도

좁은 골목길 톨레도의 골목길은 무척 좁다. 그런데 저 좁은 곳으로도 자동차가 다녔다.
▲ 좁은 골목길 톨레도의 골목길은 무척 좁다. 그런데 저 좁은 곳으로도 자동차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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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방지는 톨레도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타호강과 알칸타라(Alcantara) 다리다. 톨레도가 오래전부터 전략적 요충지가 된 건 타호강 덕분이다. 톨레도의 구도심은 말발굽처럼 생겼는데 그 주위 3면을 타호강이 휘돌아 나간다. 그 3면은 협곡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톨레도는 천혜의 방어요충지가 되는 셈이다.

그런 타호강에 로마시대에 축조된 다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칸타라 다리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이다. 알칸타라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만큼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톨레도가 수많은 분쟁을 겪은 도시인만큼 알칸타라도 부침이 많았다. 또한 협곡에 위치해 있는 터라 홍수가 나서 교각이 떠내려가기도 했다. 톨레도만큼이나 알칸타라의 역사도 파란만장했던 셈이다.

톨레도를 탐방을 하니 중세시대로 되돌아 간 느낌이었다. 물론 스페인 내전 같은 현대사도 떠올리기도 했다. 덕분에 유익한 해외 역사트레킹을 행했던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톨레도에서 지인들과 함께 역사트레킹을 해보고 싶다. 대신 그때는 인원파악을 하느라 애를 좀 먹을 것 같다. 작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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