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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산업기능요원이 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졌다. 회사는 대대적인 감원에 들어갔다. 감원 대상은 관리직 전체의 30%, 기능직 전체의 70%가 감원된다고 한다. 감원대상에는 산업기능요원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대체 복무를 하는 사원들은 1년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회사를 이직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 사정으로 감원 대상이 될 경우는 예외로 적용한다. 전직을 하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3개월이다. 3개월은 직장을 구하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 3개월은 복무기간에 포함된다. 만약 3개월 안에 들어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최대 3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한데 이 기간만큼은 산업기능요원 복무연장이 된다.

시간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들은 돈보다 자유로운 시간을 더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직시 복무기간에 포함되는 3개월을 꽉꽉 채우고 나서야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한다.
▲ 시간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들은 돈보다 자유로운 시간을 더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직시 복무기간에 포함되는 3개월을 꽉꽉 채우고 나서야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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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 시간을 보내는데 더 중점을 둔다. 그렇기에 전직을 할 수 있는 기간 3개월은 직장을 다니지 않고도 복무기간에 포함되니 웬만하면 3개월을 꽉꽉 채우고 전직을 한다.

하지만 그건 집에서 따뜻한 집밥 먹으면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친구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월 18만 원짜리 셋방에 살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게다가 어렵게 구해서 들어간 병역 특례 회사가 집에서 멀어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운행했기 때문에 교통비로 나가는 돈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은 법정 최저임금을 받기 때문에 한달 벌어 한달 겨우 먹고 살기도 빠듯한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최대한 빨리 이직할 직장을 구해야 했다. 회사의 관리자분들께서 인맥을 통해 여러 회사를 추천 해주셨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회사가 없었다. 그렇게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고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 친구녀석들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들은 징병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그들 역시도 산업기능요원이 되기 위해 직장을 구할 거라고 했다. 나는 현역으로 이미 1년 가까이 복무를 했는데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그 친구들과 비슷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들과 나는 이왕이면 같은 회사에 취직해서 함께 근무하자고 마음을 맞췄고 구미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함께 취직하게 되었다.

품질관리 경력자에게 납품사원 시키는 회사

트럭 납품사원의 하루는 종일 트럭과 함께 한다
▲ 트럭 납품사원의 하루는 종일 트럭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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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이직한 회사는 구미2공단에 위치하고 있는 모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였다. 프린트 생산라인과 브라운관TV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임가공 업체다. 2개의 제품 모두 한 대기업의 제품이었는데 그 대기업 내에서도 2개의 제품은 서로 사업부가 달랐기 때문에 우리 회사내부에서도 2개의 생산팀은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부산에서 산업기능요원이 되기 위해 올라온 내 친구들은 프린트 생산라인에 배치가 되었고 회사 기숙사에 입주를 했다. 회사 기숙사는 식당 건물 2층 전체와 1층 일부였다. 하지만 1층에는 주로 외국인 사원들이 함께 모여 거주를 했기 때문에 한국인 사원들은 2층을 주로 사용했다.

나는 면접을 볼때 이전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했던 경력을 살려서 간접부서로 배치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당연히 품질관리 부서에 배치가 될 줄 알았는데 자재과에 배치가 되었다. 게다가 1톤 탑차를 몰고 대기업 프린트 사업부에 들락날락 거리는 납품사원 업무가 주어졌다. 납품사원이라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업무를 하면 직무수당으로 기본 급여외에 10만 원이 더 나온다고 하기에 그냥 해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좋지 않은 국도로 1시간을 넘게 달려야 겨우 도착하던 이전 직장과 달리 이번에 이직한 회사는 집에서 5km가 채 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 덕에 아침 시간이 한결 여유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그 생활 패턴에 적응이 되고 나니 아침이 정신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납품사원의 하루는 출근 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1톤 탑차에 올라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는 대기업 프린트 사업부 SMD(Surface Mount Device-표면실장기술) 라인에 가서 밤새 생산해둔 보드를 탑차에 싣고 회사로 돌아와 우리 회사에 투입해주면 오전 업무가 끝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업무 역시도 똑같은 업무의 반복이다. 그렇게 하루에 2, 3차례 대기업에 들락거리는 일이 주 업무였다.

운 좋게 이전 직장에서 고등학교 14년 선배인 멘토 신 과장님을 만나 내 역량을 차곡 차곡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직장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일들을 계속 하면서 내 역량을 더 키워보고 싶었는데... 어이없게도 나는 납품사원이 되어 하루종일 탑차에 짐 싣고 배달하는 일만 하고 있다.

참 인생이란게 어렵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이제 겨우 태어나 처음으로 '일'에 대한 보람과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는데... 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겨운 일상 속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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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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