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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애기의 몸으로 태어나 아장아장 걷다가 말을 하게 되고 조금씩 사리판단이란 걸 할 수 있게 되면서 저는 결혼한 커플들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니, 제가 일부러 눈여겨 봤던 건 아닐 겁니다. 보였기에 봤고, 봤으니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것이죠.

저희 부모님에서부터 친척 어른들, 부모님 친구분들, 친구 부모님들, 옆집 아저씨 아줌마들이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고, 어떤 역경을 거쳤으며, 지금은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 같은 사랑을 하다 결혼한 커플들, 서로가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결혼한 커플들, 저희 부모님처럼 중매 후 단 몇 개월 만에 결혼한 커플들.

시작이 달랐기에 결과도 달라야 할 것 같지만, 어른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았어요. 아니, 오히려 덜 사랑했던 커플들이 조금은 더 만족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전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랑이란, 참 별 것 아닌 거로구나. 사랑한다 한들, 결국 이렇게 되는 거로구나.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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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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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이가 조금 더 들며 알게 된 건, 사랑이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이라는 게 참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거라는 거였어요. 우주만큼 컸던 사랑도 손톱만큼 작은 배우자의 사소한 습관 하나로 송두리째 부서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이제는 이런 글을 읽으면 별로 놀라지도 않습니다. 결혼이란 다 이런 거라는 걸 누가 모를까요. 김연수는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유부남이 되면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중력이 여섯 배나 강해진다는 사실에 멍멍해진다.

미혼녀에서 유부녀로 바뀌는 건, 뭐랄까 호두를 깨무는 일과 비슷하다. 애당초 허기진 배를 채우겠다고 깨문 게 아니다. 왜 먹지 않고 놔두느냐는 주위의 채근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먹을 게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볼썽사나운 껍데기뿐만 아니라 초라한 알갱이까지 갈부수고 난 뒤에야 차라리 그냥 막연하게 상상하던 때가 더 좋았다는 걸 알게 된다. - <사랑이라니, 선영아> 중에서

그런데 요즘엔 또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결혼 생활이 이렇게나 힘이 든 이유는 사람들이 사랑이 무언지도 잘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또 너무 맹목적으로 그 결실을 향해 달려가서인 게 아닌가 하구요. 저는 사랑을 하는 것만큼, 사랑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랑이 무언지, 내게 맞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사랑보다 더한 질투

사랑이 무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양한 '사랑론'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에요. 이 책 <사랑이라니, 선영아>도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닌 작가의 '사랑론'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사랑하면, 질투죠. 책에는 질투에 빠진 두 남자가 나옵니다. 하필이면 결혼식 날 질투를 시작한 광수와, 하필이면  오래전에 사귀었던 선영이가 광수의 아내가 된다는 말에 새삼 질투를 시작한 진우. 진우와 광수, 그리고 선영이는 대학교 동기입니다.

질투란 감정은 얼마나 근거 없이 시작될 수 있는 걸까요. 광수의 질투는 팔레노프시스에서 시작됩니다. 팔레노프시스는 꽃입니다. 선영이의 부케를 무심코 쳐다보던 광수는 팔레노프시스 꽃대 하나가 꺾인 모습을 봅니다. "천재지변보다 더한 비극"이 시작된 찰나이지요. 저 가냘픈 꽃대는 왜 꺾인 것일까. 혹, 아까 신부대기실에서 진우와 선영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책에선 질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 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 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 <사랑이라니, 선영아> 중에서

위의 말대로라면 사랑이 끝나지 않기 위해선 질투라는 후보선수는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데, 질투는 하지 않는다? 제게도 불가능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질투가 사랑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사랑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끝내는 사랑이 사라져버리게도 하는 질투. 질투라는 감정은 두 남자의 사랑도 변화시킵니다.

광수는 낭만적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남자입니다. 진우는 반대입니다. 광수가 말하는 낭만적 사랑이란, 그저 18세기 자본가들이 발명한 공산품뿐이라는 거죠. 낭만적 사랑에 빠진 남녀는 일부일처제를 신봉하며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습니다. 이래서 좋은 건, 자본가들뿐입니다.

이랬던 이들이 질투에 휩싸이자 그만 돌변하고 맙니다. 훌쩍거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선영이에게 광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그리고 쌀쌀맞은 태도로 돌아서 나가는 선영이를 붙들며 진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가끔은 교체 선수가 주전 선수보다 더 월등한 기량을 뽐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전 선수가 주전 선수인 이유 또한 분명히 있다는 것을. 사랑이 질투보다 더 큰 감정이라는 것을.

저는 연애 소설을 읽을 땐 마지막을 애타게 그리며 읽는 편입니다. 언제 맺어지나, 누가 맺어지나, 왜 안 맺어지나 등등 뭐 이런 걸 생각하며 마음을 졸인 채 읽어나가지요. 하지만 이런 류의 연애 소설을 읽은 땐 느긋해집니다.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한 책이랄까요. 그저 사랑에 대한 작가의 시각에 제 시각을 맞춰보며 저 나름의 사랑론을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책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말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고요. "어떤 사람을 향해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봤다는 뜻"이라고요. 또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구요.

위 문장들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사랑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건, 결국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라구요. 나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내게 어울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중요한 건 언제나 '나'네요. 사랑에서마저도.

덧붙이는 글 | <사랑이라니, 선영아>(김연수/문학동네/2015년 10월 03일)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2015)


태그:#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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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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