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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돈이 문젭니다. 허나 좋게 쓰면 '소통'이 됩니다.
 돈, 돈이 문젭니다. 허나 좋게 쓰면 '소통'이 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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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돈 많이 드는 명절입니다. 아이들은 요 때가 대목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걱정입니다. 마음만은 풍성한 팔월 한가위 되시길 바라봅니다.

각설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죠? 역할 바꾸기. 이 역할 바꾸기는 무한 상상이 가능합니다. 대개 세 가지 범주입니다. 첫째, 성별 바꾸기입니다.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둘째, 돈의 유무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으로. 셋째, 권력입니다. 힘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으로,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던 '역할 바꾸기' 재밌게 접근하기로

생각만 했던, 역할 바꾸기 기회가 내게 올 줄이야! 엄마는 아빠가, 아빠는 엄마가 되는. 그렇지만 아빠가 엄마 역할까지 덤터기로 해야 하는 일방통행 역할 놀이였습니다. 원인은 아내의 입원 때문. 23일째 병원서 꼼짝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일방적 엄마 놀이를 하게 된 거죠. 짜증 날 것에 대비해 즐겁고 재밌게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게 좋으니까.

"만원만 주게."

전엔 '전권'을 쥔 아내에게 간혹 손 벌렸습니다. 대부분 목욕비, 택시비, 용돈주기용입니다. 나머지는 카드 지출이니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거의 돈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지인들, 지출할 땐 대부분 투명인간 취급하고, 알아서 하니깐. 하여튼, 때때로 아내는 아이 취급입니다. 아이들 용돈 줄 때 생긴 습관 때문인지 이렇게 묻습니다.

"어디에 쓰려고?"

쓰임새. 물론 중요합니다. 허나, 일·이십만 원도 아니고 일·이만 원인데, 그것도 어디 쓸 건지 뻔히 알면서, 남편에게 묻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하여, "내가 어디 허투루 쓰던가?"라고 넘기는 편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겸연쩍다는 듯, 혹은 미안하다는 듯, "맞다. 우리 남편 허투루 안 쓰지. 쓸데가 있어도 아껴 써 엄청 오래 가지"라고 맞장구 칩니다.

딸의 애교 메모, "아부지 딸램 용돈 주세요, 제발요!"

 아빠, 엄마로의 역할 바꾸기가 진행되니, 딸의 용돈 달란 메모가 등장했습니다.
 아빠, 엄마로의 역할 바꾸기가 진행되니, 딸의 용돈 달란 메모가 등장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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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아빠에겐 돈 달라는 말 거의 안 합니다. 완전 궁하면 그때야 "아빠 돈 있어?" 묻습니다. 이 때 간혹 있는 거 탈탈 털어 주지만 대부분 맹탕입니다. 그 공허함이란? 그래, 아내에게 "아이들 비상시에 용돈 주게 간혹 돈 좀 주지!" 합니다. 그러나 어디 여유가 있어야죠. 고 3, 고 2. 연년생 아이들 키우다 보니 늘 빠듯합니다. 삶이란? 그러려니 합니다.

아이들, 돈을 쥔 '가정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확하게 압니다. 돈을 가진 엄마와 개털인 아빠에 대한 대화와 접근 방식이 아주 딴판입니다. 아빠, 말 빨 안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힘껏 목청 높여보지만 그래 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뒤에서 묵묵히 가만히 지켜보는 게 최선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픈 아내가 전권을 넘긴 겁니다. 얼마 만에 느끼는 '가족 권력'에의 도취인가!

"아부지 딸램 용돈 주세요. 제발요!"

새벽 출근하려는데, 서랍 앞에 메모가 붙었습니다. 고 3이라 미술학원에서 늦게 들어오는 딸이, 빨리 자고 일찍 나가는 아빠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소통을 먼저 시도한 겁니다. 귀엽기도 해서 피식 웃었습니다. 용돈 달라는 거 미리미리 가족 대화방에서 얼마든지 가능한데 한 마디 없더니 메모를 이용한 겁니다. 무시하고 현관을 나서는 중. 아뿔싸! 현관문에 메모가 또 붙었습니다.

"밥값", "아부지 진짜 필요! 딸램"

빵 터졌습니다. 이중 장치를 하다니, 대단했습니다. 속으로 '요걸 보고 딸에게 용돈 안 줄 아빠 있음 나와 보라 그래!' 했지요. 딸 방에 들어가 여유 있게 용돈 두고 나왔습니다.

뒤에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애들은 좋겠다. 용돈 주라 하면 아빠가 잔소리 않고 주란 대로 주니"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알쏭달쏭한 말을 하데요. 이후, 아이들은 병문안 온 이모, 외할머니 등에게 용돈 받은지라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딸의 메모가 붙었습니다.

'<돈이란? 그런 거!> 아닌 <돈이란! 그런 거?>'

 아직까지 현관문에 붙어 있는 딸의 용돈 필요하단 메모입니다.
 아직까지 현관문에 붙어 있는 딸의 용돈 필요하단 메모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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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램 도와주셈!"
"아부지 딸램 용돈 필요*"

아이들에게 용돈 주는 재미, 꽤 솔찬했습니다. 아빠로써 뿌듯함도 생기고. 그러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억지로 아내와 역할 바꾸기를 해보니, 알겠대요. 이건 아이들에게 재미삼아 '옛다!' 하고 용돈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용돈 주기는 거의 매일 한 녀석에게 만원씩 나가는 '이만 원 일수 찍기'에 가까웠습니다. 이러려면 용돈 주는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했습니다. 일급을 주급 내지는 월로 전환함이 맞겠다 싶대요.

뿐만 아니라 용돈 사용처도 다양했습니다. 기본으로 들어가는 납부금과 급식비, 야외학습비, 차량비, 학원비 외에 밥값, 차비, 참고서, 원서료, 미술 자문료, 영화관람료, 간식비, 옷값, 독서실비, 친구 교류비 등 종류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돈쓰는 기계였습니다. 그런데도 왕창 주지 못하는 사정. 아내가 때때로 "딸과 아들에게 나가는 돈이 많아 적자가 쌓인다!" 하소연이더니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또한 아내가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쓰는지?" 이해 못했던 생활비 지출 근거를 분명하게 알겠더군요. 돈은 가계부에 꼼꼼히 기록하지 않으면 '어디에 썼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탓에, 흐지부지, 슬그머니,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웬수 같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니 3포, 5포를 들먹이며 2세를 위해 "결혼 안 함"에 방점 찍는 젊은 세대가 나타나는 거겠죠. 암튼, 돈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넣어 표현하면 이럴 겁니다.

'<돈이란? 그런 거!> 아닌 <돈이란! 그런 거?>'

모방한 메모치곤 밍밍한 아들, 창의성 시험하다!

딸만 자식이 아니더군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들도 살아 있었습니다. 야간자율학습 대신 혼자 공부하는 독서실을 택한 녀석은 부자지간에 저녁 먹을 때면 말로 직접 혹은 문자로 용돈을 요청했습니다.

"아빠 나 밥값 좀 주라!", "아빠 나 책 사야 돼!" 등등. 그러더니, 눈 팅으로 누나의 애교를 정확하게 확인한 아들도 살살 움직였습니다. 누나를 모방해 비슷한 메모를 똑같은 자리에 붙였습디다.

"아버지 '아들' 용돈 주시고 가셔요(점심, 저녁, 버스카드 충전)"

이건 또 뭐지, 했습니다. 모방한 메모치곤 완전 밍밍했습니다. 돈의 사용처를 분명히 밝혔지만 진일보한 창의성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메모 내용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왜 액수가 빠졌지? 대체 얼마를 줘야 하지? 주는 대로 받겠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메모에 반응하는 아빠의 대응방식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딸에게는 용돈을 방에 두었습니다만 아들에겐 방법을 달리 했습니다. 아들이 메모 붙였던, 서랍에 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문자했습니다. 액수는 밝히지 않고, 돈 넣어뒀다고. 그러면 필요한 만큼 가져가겠지 했습니다.

예상대로 알아서 가져갔습디다. 기특한 건, 문자로 가져간 액수를 밝혔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과 전혀 예상 못한 이런 소통, 행복이었습니다.

 아들이 남긴 용돈 달란 메모입니다. 아들만 강조했지 창의성이 부족하단 생각입니다. 그랬는데...
 아들이 남긴 용돈 달란 메모입니다. 아들만 강조했지 창의성이 부족하단 생각입니다. 그랬는데...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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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

아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어색했습니다. 슈퍼우먼 아내였으니까. 그런데 병간호가 필요한 환자일 뿐. 하여, 매일 새벽마다 오줌 수발을 위해 아내에게 들렀습니다.

또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수시로 들러야 했습니다.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라 해도 말이 없던 아내. 드디어 배 깔고 엎드려 겨우 젓가락질로 꾸역꾸역 먹던 병원 밥에 물렸는지 먹고 싶은 걸 주문합니다.

"김밥하고, 어묵, 떡볶이, 쫄면이 먹고 싶어요."

아내, 병원에 누워 먹을 걸 몹시 그렸나 봅니다. 요거, 아프지 않을 땐 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프면 여기에 튀김까지 더해 제일 먹고 싶은 음식들입니다.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길 꺼리던 아내에게 뭔들 못해주겠습니까. 두 말 필요 없습니다. 아플 때 잘해야지 안 그랬다간…. 아내는 미래 권력이지요.

"여보, 나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 해물찜이."

직접 주문해서 먹을 법 하건만 남편에게 부탁합니다. 아픈 사람이니만큼 있는 것이라곤 딸랑 만 원입니다. 누워 있어 돈 등이 필요 없으니까. 일부러 못 들은 척합니다. 남편의 무반응에 뒤틀렸을까. 서운한 표정 역력합니다만 더 이상 주문하지 않습니다.

병원을 나옵니다. 일을 봅니다. 해물찜 가게를 찾습니다. 병원에 갑니다. 아내, 얼굴이 환하게 바뀝니다. 이럴 때의 돈은 '소통'입니다. 아내, 해물찜 맛있게 먹고 하는 말.

"워매. 소원 풀었네. 매콤한 걸 먹으니까 가슴이 다 뻥 뚫리네. 여보, 고마워!"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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