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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출판사가 꾸준하게 늘어납니다. 한두 사람이 일하면서 책을 짓는 출판사가 차츰 늘어납니다.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선인세로 치르고 온갖 곳에 광고를 수없이 하면서 책을 수십만 권씩 파는 커다란 출판사도 있지만, '책을 판 만큼'만 글쓴이한테 글삯을 치르고 광고 한 번 안 하면서 책손을 찾는 작은 출판사도 있습니다.

<중쇄를 찍자>라는 만화책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만화책은 일본에서 연속극으로도 나왔다고 해요. 어느 '대형 만화책 출판사'에 들어간 새내기 편집자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만화책(중쇄를 찍자)은 '책마을 속내'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출판사 이야기와 편집자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준다고 합니다. 다만 <중쇄를 찍자>는 '커다란 출판사가 판을 키워서 돌아가는 흐름'이 고갱이입니다. 커다란 출판사나 잡지사 얼거리를 그 만화책이 아기자기하게 다룬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작게 책을 짓는 사람들 이야기하고는 사뭇 동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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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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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작은 출판사에서 작게 책을 짓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그맣게 만화책 한 권으로 나옵니다. 바로 <중쇄미정>(그리조아,2016)입니다.

"너, 무슨 생각 하면서 이 책을 편집했어?""오로지 일정에 맞추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럼 OK. 보내." (20∼21쪽)

"회사에서 잘까? 이 책 다 끝나면 목욕하러 가야지." 야근을 하든 회사에서 잠을 자든 야근수당은 보통 안 나온다. 마감 직전에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은 편집자에겐 흔한 일상이다. (23쪽)

만화책 <중쇄미정>을 그린 일본사람 가와사키 쇼헤이 님은 작은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이이는 <중쇄를 찍자>라는 만화책을 좋아하며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는데, 이 만화책에 못 담은 작은 출판사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중쇄미정>을 그렸다고 해요. 그래서 책이름도 '중쇄미정'입니다.

2쇄나 3쇄나 4쇄를 찍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는 '중쇄미정'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책을 꾸준히 엮어서 펴내려 합니다. 이름나거나 손꼽히는 글쓴이를 만나서 잘 팔리는 책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만지고 종이를 고르며 책 한 권 묶습니다.

"오자 없는 책은 없어. 오자는 책의 꽃이야. 그러니 마음에 담지 마." (29쪽)

"유능한 편집자란 게 뭔데?" "중쇄를 팍팍 찍는 책을 편집하는……." "술 한잔 하러 가자. …… 중쇄를 못 찍는 책은 나쁜 책일까?" "한 잔 더 주세요." "중쇄를 찍고 돈을 벌면, 그게 뭐지? 만 명을 위한 책을 편집하면 천 명을 버리게 돼. 그럼, 그 천 명은 대체 어떻게 책을 즐겨야 할까? 만 명 안에 들어가야 할까? 만 명과 같은 취향을 가지라고?" (38∼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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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출판사라고 해서 큰 출판사처럼 책을 잔뜩 파는 일을 못 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출판사라고 해서 책을 못 팔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큰 출판사하고 작은 출판사에서는 무엇보다 한 가지가 달라요. 큰 출판사는 '일하는 사람'이 많고 '매출액'이 큽니다. 큰 출판사에서는 한 해 동안 1쇄를 판다든지, 여러 해에 걸쳐 1쇄를 파는 일은 어림도 없습니다. 큰 출판사에서는 이런 책은 쳐다보지 않아요.

작은 출판사에서는 한 해에 1쇄를 찍을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습니다. 작은 출판사라고 해서 팔림새를 안 살피지는 않으나, '아주 많지 않은 독자'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으로 책을 펴내요. 한 해에 1쇄씩 열 해 동안 팔면 열 해에 걸쳐 10쇄를 찍으면서 '독자를 꾸준히 늘려' 주는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어요.

큰 출판사에서는 '매출이 떨어지는 책'은 이내 절판이나 품절이 됩니다. 다른 책을 얼른 찍어서 불티나게 팔려는 얼거리예요. 큰 출판사는 도서목록만 해도 두툼한 책입니다. 큰 출판사 편집자는 '편집자 스스로 엮은 책'이 아닌 '같은 출판사 다른 편집자가 엮은 책'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큰 출판사에서 그동안 펴낸 책'을 읽을 틈조차 없어요. 게다가 너무 많아요. 이러다 보니 큰 출판사에서는 '그동안 큰 출판사에서 펴낸 모든 책을 독자한테 알리면서 팔 수 있는 얼거리'가 없습니다.

"이 책에 독자는 있어?" "있습니다. 제가 독자입니다. 팔리든 말든 알 바 아니에요. 제가 읽고 싶습니다." "좋아, 하자." (55∼56쪽)

"간이 부었구나.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해 주마." "해 보시지. 전부 직거래로 돌리거나 아마존에서 팔 거야." "그럼, 돗토리 현의 별모래 북스에 너희 책 배본 안 해도 되는 거지?" "거래처 바꾸라고 할 거야."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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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출판사에서 도서목록을 꾸린다면 작은 종이 한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쉰 가지나 백 가지 책을 냈어도 종이 몇 장이면 넉넉합니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이곳에서 내는 모든 책을 품습니다. 어느 만큼 팔아 보다가 안 팔린다 싶으면 절판이나 품절로 돌리지 않아요. 머잖아 '독자가 이 책에 깃든 값어치와 이야기'를 알아보리라 하는 믿음으로 고이 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은 출판사는 '책 한 권을 고이 품으려는 손길'로 책을 지어요. 이른바 '밀어내기' 책을 내지 않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매출 크기를 늘릴 생각으로는 책을 내지 않는 작은 출판사예요. 모든 책을 우리 아이로 여기면서 알뜰살뜰 여미는 작은 출판사이지요.

그렇다고 큰 출판사가 '모든 책을 밀어내기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큰 출판사는 너무 많은 책을 너무 자주 내놓아야 하는 얼거리이다 보니, 큰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골고루 알려지기 어려워요. 큰 출판사에서는 '대표 도서'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낸 책도 새로 낼 책도 너무 많거든요. 이와 달리 작은 출판사는 '대표 도서'를 두지 않고 '모든 책이 저마다 사랑스럽다'고 하는 이야기를 독자한테 들려주려고 합니다.

"저기 말야, 믿고 기다리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믿는 데는 애정이 필요해. 애정이 없으면 상대방은 네 믿음을 받아주지 않아." (90쪽)

"뭐, 쓰긴 하겠다만, 자네는 정말 내 원고를 읽고 싶은가?""네? 읽는 건 독자입니다. 선생님은 독자를 위해 쓰시는 거예요." (111쪽)

"소제목을 멋지게 단다고 별점 하나 더 주지 않아. 무엇보다 소제목이란 건 독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일 뿐이야. 비위 맞춰서 키운 독해력은 결국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해. 편집자가 그런 걸로 애써 봤자 독자는 미아가 될 뿐이야."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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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중쇄미정>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영업자와 관리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책을 지으려 하는가를 익살을 살짝 보태어 들려주려 합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들뜨지 않게,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또 너무 어둡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앞날을 알 길이 없지만, 3쇄나 4쇄는커녕 2쇄를 찍을 수 있는지조차 까마득하다고 할 수 있는 '중쇄미정'이지만, 책을 아끼고 싶은 숨결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큰 출판사는 '공장'이에요. 같은 물건(책)을 더 많이 찍어내어 더 많이 팔아서 회사(커다란 몸집)를 버티어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작은 출판사는 '수공예'예요. 같은 물건(책)을 더 많거나 빠르게 찍어낼 수 없는 얼거리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좋아할 책을 다 다른 손길로 빚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는 살림입니다.

사회 한쪽에 커다란 공장이 있으면, 마을 한쪽에 작은 지음방(공방)이 있을 만합니다. 꼭 높다란 아파트만 올라서야 하지 않아요. 마당이 있고 텃밭을 두는 자그마한 골목집을 지을 수 있어요. 만화책 <중쇄미정>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마을마다 다 다르'고, '마을에 사는 사람도 다 다르'다고 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비록 팔림새가 대단하지 않고, 언론에서 눈여겨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 이쁜 책이로구나' 하고 사람들이 느낄 만한 이야기가 흐른다면, 이러한 책을 짓는 작은 출판사가 도시와 시골 곳곳에 상냥하게 깃들 수 있으면 우리 삶자리는 한결 너르고 넉넉하며 아름다울 만하지 싶습니다.

만화책 <중쇄미정>이 2쇄를 찍고 3쇄를 찍으면서 이 작은 이야기에 서린 사랑이 곱게 씨앗을 퍼뜨릴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중쇄미정>(가와사키 쇼헤이 글·그림 / 김연한 옮김 / 그리조아 펴냄 / 2016.12.12. / 9900원)



중쇄 미정 - 말단 편집자의 하루하루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김연한 옮김, 그리조아(GRIJOA)(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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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