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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 - 마거릿 캐번디시

엄마는 나이 60이 넘어 새로 건물 청소 일을 나가게 되었을 때 눈물을 보이며 신세 한탄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30이 다 되도록 제 밥벌이도 못 하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는 아들들과 택시를 몰고 이리저리 떠돌다 사납금도 못 채우고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엄마도 커리어우먼이야. 자부심을 가져"라는 말로 그녀의 분노와 실망, 자기 연민의 쓰디쓴 눈물을 막았다. 난 그녀의 넋두리가 듣기 싫어 배운 티를 내는 번지르르한 말로 그녀의 아픔을 호도했다. 커리어우먼은 아닐지 몰라도 일을 빼놓고 엄마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언젠가 엄마는 자신이 일 중독자인 것 같다고 했다. 슬퍼도 힘들어도 일을 하며 살아왔다고.

엄마에게 인터뷰를 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울컥 눈물을 보인다.

"내가 너 공부시키면서 혼자 그런 생각 했다. 나중에 너한테 내 책을 쓰라고 해야지……."

순간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들고 입을 앙다문 채 거리를 누비는 젊은 날의 그녀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자기 얘기를 할 인터뷰 제안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도리어 그 이후로는 내가 숙제를 안은 것처럼 묵지근한 부담이 따라 다녔다.

인터뷰는 설날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76세의 연세에도 아직 현역에서 물러나지 못하시고 손수 모든 것을 챙기는 엄마는 설날 아침 차례상까지 다 차리고 아들 손자 며느리 아침까지 다 챙겨 먹이고, 아들 내외를 사돈댁에 보내고서야 인터뷰할 짬을 낼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신세한탄이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를 내가 청해서 듣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다 잊어버려서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엄마는 눈을 빛내고, 때로 눈물을 흘리고, 때로 울먹이는 아이가 된 듯 서러움을 토로하며 장장 4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내 편 들어줬다면 그 세월 참지 않고 살았을 텐데"

1961년의 무숙씨 꼭 다문 입술,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삐져 나올세라 쫑쫑 땋아내린 머리는 
그녀가 얼마나 강단있고 정직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 1961년의 무숙씨 꼭 다문 입술,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삐져 나올세라 쫑쫑 땋아내린 머리는 그녀가 얼마나 강단있고 정직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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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생 올해 76세가 되시는 우리 엄마 강무숙씨. 무숙씨의 삶은 무숙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운명이 정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숙씨가 태어나기 전,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린 이모를 데리고 몇 년 만에 친정 나들이를 나섰다. 정류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버스에 놀란 어린 이모가 '니나 타라 내는 안 탄다' 며 머리를 쥐어뜯고 울며 난리를 치는 통에 결국은 발을 돌려 되돌아왔다.

그때 27세의 외할아버지는 '이 개명한 세상에 도시로 나가서 애들 교육도 시키며 살아야지 이 촌구석에서 이렇게 키우다간 멍텅구리가 되겠다' 하더니 얼마 후 만주로 돈 벌러 갔다. 외할아버지가 떠나던 때 무숙씨는 태중 3개월이었는데 첫돌을 맞이하기도 전에 만주에서 외할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졌다. 향년 29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립다면서 엄마는 울었다. 죽어서 아버지를 만나도 못 알아볼까 봐 겁이 난다고……. 절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아버지를 불러 직접 바느질해 두루마기에 바지저고리까지 다 지어드리고 큰절도 드려봤다면서 운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은 무숙씨는 조부모와 작은아버지 가족, 31세에 청상과부가 된 엄마, 그리고 날 때부터 공주였던 6살 위 언니와 함께 살았다. 무숙씨보다 6개월 빠른 작은아버지 아들이 양자가 되어 엄마 품을 차지했다. 무숙씨는 바닥에 놓아두고 양자 아들을 안고 밥을 먹였다. 무숙씨는 울거나 떼를 쓰기만 해도 '저년이 저러니 애비를 잡아먹었지'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자기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자 어린 무숙은 점점 입을 다물었다. 구석구석 할 일을 찾아서 알아서 하는 야무지고 바지런한 무숙씨가 되어갔다.

"누구 하나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억척스럽게 애를 썼구나. 누가 날 편 들어주고, 누가 날 귀히 여겨주었으면 지금까지 그런 세월을 참고 살지도 않았을 텐데……."

엄마는 서러운 줄도 모르고, 귀히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았던 그 세월이 나이가 들수록 새삼 서럽다고 했다.

10살도 되기 전부터 나물이며 소풀을 뜯으러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조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평화롭고 행복했다. 13살 때 조부모가 돌아가시고부터 집안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사사건건 집안일에 시비를 걸며 밥상을 엎고, 문짝을 부수었다. 핑계야 많았겠지만 본질은 재산싸움이었다. 형님이 없는 집안에 형수와 조카딸들은 싸움의 상대가 안되었다. 결국 땅을 나눠주고 살림을 내 주고 나서야 긴 싸움이 끝이 났다.

언니마저 시집을 가자 집에는 무숙씨와 엄마 둘 뿐이었다. 엄마는 놉(일꾼)을 얻으러 다니고 바깥일을 보고 무숙씨는 살림을 하고, 참을 내가고, 소죽을 끓이고 두엄을 내고, 명주를 짜는 그 모든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보리를 해도 소가 있어 뭐가 있어. 그거를 다 여 날랐지. 한단한단 다 여 날라서 마당에 쭉 세워두면 여름철에 비가 자주 오니까 또 비 안맞게 또 안으로 들여다 놔야 해. 보리 껍데기가 깔끄럽긴 또 얼마나 깔끄러운지 살이 다 쓸리고, 혼자 그걸 다 퍼다 내 널었다가 들였다가 해야 되지. 몇 날 며칠을 하는데 아주 신물이 나드라.

한 날은 보리 베고 다음 날 모 심으려고 스무 명을 놉을 해놨어. 그리고 보리를 또 마당에 말릴라고 세워놨는데 날이 꾸무리하니 비가 오게 생긴 거야. 또 다 들여다 재 놔야 돼. 엄마는 놉얻으러 가고 없고... 에라 안 되겠다. 이걸 또 들여놨다 또 내널었다 하느니 오늘 저녁에 이걸 다 털어치우던지 안 되겠다 싶더라구. 내가 다부지긴 되게 다부졌던 가봐. 그걸 나무 등걸을 하나 갖다 놓고 둘러메쳐서 다 털었어. 땀이 비오듯이 나고 옷은 다 젖고, 온몸에 까끄래기를 다 뒤집어써가며... 지나가던 사람이 다 들어와서 보는 거야. 제가 왜 저래 저게 죽을라나..." 

17살의 처녀가 장정 2~3이 붙어서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밭 6~7마지기(600~700평)에서 추수한 보리를 혼자 다 털어냈다는 것이다.

"약이 오를 대로 올랐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면서도 약이 올랐지 결국은 다 내가 해야 할 일이까. 날이 훤하게 세도록 그걸 다 털었어. 그래놓고 또 모내기 날이니까 그때부터 아침 새참할 국수를 미는 거야. 사람이 스물 댓 명 되잖아. 이만한 반죽덩어리를 4~5덩어리 해가지고 전부 다 밀어서 칼국수를 삶아내 줘야 하니까."

집에 털어놓은 보리를 정리할 사람을 셋이나 샀는데 일하러 온 사람들이 다 혀를 차며 기함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걸 여자 혼자 떨었냐며. 그걸 다 해서 담으니 15가마니가 나왔다고 한다. 밤을 새고 보리 15가마니를 혼자 다 털어낸 무숙씨는 눈 한번 못부치고 스물댓명의 칼국수를 밀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부고가 와서 엄마는 가고 무숙씨는 또 그날밤이 새도록 모든 뒷설거지를 했다. 보리타작 뒷설거지, 모내기 뒷설거지, 소, 돼지 뒤치다꺼리까지..

"내가 워낙 일이 힘들고. 언제해도 내가 할 일이니까... 그것만 하나 소 마구간에 마구쳐서 소 덤을 꺼냈다가 말려서 다시 들여놔주고 썩혔다가 다시 내서 말렸다가 그래야지 거름이 되지 안 그러면 죽이 돼서 안 되거든... 소마구간, 돼지마구간 다 내가 해야지. 험한 일 엄마 안 시키려고..."

기어코, 끈질기게 살아낸 무숙씨

무숙씨는 이렇게 살았다. 눈앞에 일에 도망치지 않고 이를 앙다물고 기어코 뛰어넘으며.

"지금 생각하면 허망하지 그렇게 억척스레 안 했어도 됐을 텐데 그렇다고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내 산 인생이 허망해. 최선을 다했으니 그래도 잘 살았다 그뿐이지 허망해."

다시 살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편하게 공주처럼, 남자라면 가정 잘 다스리고 식구 잘 지키는 대우받는 남편이 되고싶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의지해서 살고 싶진 않아. 내 할 일 하면서 진실되게 살고 싶지.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독립적으로... 난 그렇게 생각해."

앞뒤짱구로 동그란 머리통이 영민해보이는 우리 무숙씨는 그 모진 고생 끝에도 이렇게 말했다.

마거릿 캐번디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무숙씨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여자 일, 남자 일을 다 했으니 박쥐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녀가 하는 일의 가치를 정정당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면에서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같은 삶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그녀는 짐승처럼 일하지 않았다. 자기 앞에 던져진 운명에 대한 응답으로 일을 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한 사람으로 자족하며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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