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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연의 연속인지 아니면 예정된 필연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했던 실패와 좌절을 숱하게 경험했기에 인생에서 사람이나 사물과 여러 만남은 개인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나의 예지로 원인을 밝힐 수 없고, 이성적 감성적 판단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만나는 경우, 절대적인 존재에게 답을 들을 수 없는 경우를 '운명'이라고 둘러댔는데, 불리한 현실을 합리화하거나 어쩔 수 없는 체념과 포기의 수순 과정에서도 운명이라는 단어로 마감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썼던 운명이라는 의미는 꼭 체념과 포기만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나 좌절을 당했을 때 그 지점에서 털고 일어나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시도하는 명분으로 새긴 적도 많았다고 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암과 만남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생존을 위해 내 몸의 장기를 제거하고 몸에 상처를 남기는 수술을 결정한 사실도 운명이었다. 

몸에 크고 작은 상처 없을 것이다. 낫에 베인 상처 놀다가 넘어져 무릎에 남긴 상처 등 나에게도 아팠던 기억과 그 기억의 흔적들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인위적인 수술에 의한 상처는 없이 살았다. 그런데 2015년은 세 번이나 전신 마취 수술을 했던 해였다.

첫 번째 수술은 직장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2015년 4월 6일, 비가 내리는 날, 긴 시간 기다림 끝에 대장 항문과 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의 관장 후 의사가 직접 항문에 손을 넣어 진찰하는 수지 검사를 하고 상태를 이야기했다.

"암의 크기는 손톱만큼으로 줄었다."
"항문은 살릴 수 있다."
"MRI 촬영으로 종양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고 CT촬영을 통해 폐와 대장의 상태를 살피겠다."

왜 그래야 하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일단 암의 크기가 줄었고 일단 항문을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아내와 나는 "불행 중 다행"이라며 씁쓸하게 눈을 맞추었을 뿐이다.  

4월 7일, 직장 주변의 단층 촬영을 통해 암의 전이를 살핀다는MRI(자기 공명 촬영). 그 결과는 일주일 후에 알게 되리라고 했다.

4월 13일 월요일 흐린 날, 대장항문과 김 교수는 MRI촬영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종양의 크기는 1.6cm로 줄었으며 다행히 다른 부위 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암의 뿌리가 남아 있어 그걸 직장을 제거하는 수술은 불가피하며 수술 후 3개월간은 임시 장루를 달 것이라고 했다.

5월 6일로 수술 날짜를 잡고, 체혈, 심전도검사, 엑스레이 촬영, 폐 기능 검사를 마치고 수술에 필요한 주의 사항을 듣고 보니 5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부지런히 농사 준비도 했다. 어느 날에는 옥수수 100주, 완숙토마토 7주, 방울토마토3주, 꽈리고추 3주, 가지 5주를 사다 심었다. 또 고추도 150여 주를 심었다. 

아내가 심고 나는 미리 박아놓은 지주에 고추를 묶는 작업을 했는데 글로 써놓으면  쉽게 여겨지지만 실제 3시간가량 걸리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고추를 심은 뜻은 주인이 아프다고 땅을 놀릴 수 없었고, 심어놓으면 내가 다시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텃밭 농사에서 식물을 다루는 일은 심적인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고 병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농사에 뜻을 둔 환우 여러분들께 적극 권하고 싶다.

5월 4일 오후 4시 21분, 대장항문과 외래에 들려 입원 신고, 수납 후 입원수속, 병실 확인 후 키와 몸무게를 재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은 후 입실로 이어졌다.

2112호실. 굳이 1인실을 선택한 이유는 서울로 다녔다고 가정했을 경우에 예상되는 경비와 비교한 결과였고 그보다는 좀 조용히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5월 5일, 수술을 위해 장을 비우기 위한 조치로 8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코리트산이라는 약을 한포씩 물에 타서 마셨더니 신통하게도 즉각 물변이 거의 폭포 수준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체중은 정상시보다 거의 10kg이나 빠진 재보니 63.3kg이었다. 11시 20분부터 젊은 의사로부터 수술과 관련된 사항의 주의를 들었다. 수술은 6일 오후쯤 예정되어 있는데 사정에 따라 오전으로 달라질 수 있으며 수술방식은 복강경 수술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을 받았다.

5월 6일, 당초 오후로 예정되었던 수술이 11시 30분으로 앞당겨 졌다. 수술실로 가는 침대에서 다시금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이 실감했다. 침대를 붙잡고 따라 오는 아내와 둘째 아들을 보니 아무리 담담해지려해도 조금은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눈물 짓는 아내의 손을 다시 잡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그 말만 남겼다. 서둘러 나를 끌고 가는 수술 의료진들이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없다. 수술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니 핏자국이 배인 비닐에 덮인 수술침대가 보였다.

순간이었지만 '저곳에 내가 눕는다?' 하면서 의식을 잃었다. 아내의 이야기에 의하면 오후 14시 35분 수술 끝나고 회복실로 이동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병실로 돌아온 것은 15시 40분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 아내는 마취에서 덜 깨었기 때문에 잠을 재워서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면서 끝말잇기, 노래 부르기 대화를 시도하면서 필사적으로 4시간 이상 나의 잠을 막았다고 했다. 나에는 그런 사실조차 어렴풋한 기억일 뿐이었다.

5월 7일, 전날 나의 수술 후 아내가 김 교수를 만났다. 잘라낸 직장을 보여주면서 암 덩이는 완전히 관해 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암 덩이가 있던 자리는 흔적이 없고 의사가 가는 주름만 남은 곳을 가리키는데 너무 깨끗하여 수술을 괜히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기 한 달 전까지도 손톱만큼 남았다던 암 덩이는 도대체 어떻게 관해된 것일까? 관해란 방사선과 함암치료에 의해 암 덩이가 괴사 되어 섬유질화 되는 현상이라는데 그렇다면 사전 방사선과 항암치료가 효과가 있었다는 말인지?

항암 치료 후 암 덩이가 괴사 되었다면 과연 이미 죽은 암 덩이를 제거하는 수술은 꼭 필요했던 것인지? 황당했으나 이미 잘라낸 직장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5월 10일, 그리고 간호사는 수요일 퇴원을 예고하면서, 조직검사의 결과 암 덩이는 이미 관해 되어 섬유질화 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다른 곳에 있을 암의 종자를 제거하기 위해 향후 치료법은 의사가 설명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듣고 있던 아내는 수술 날 아쉬워했던 마음을 다시 드러냈다.

나 역시 수술 며칠 전에 관해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 수술을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으로 다른 병원에도 한 번 가볼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나중에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나와 같은 경험을 쓴 글을 찾았기에 조금 이해는 했지만, 지금도 수술밖에 방법이 없었던 것인지 하는 아쉬움이 크다.

물조차 먹을 수 없었던 갈증의 시간, 수술한 부위의 통증, 나를 씁쓸하게 했던 오른쪽 배에 달린 생소한 '장루', 갑자기 불어난 체중에 이뇨제 투입….

5월 10일까지의 일기는 나중에 아내의 구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5월 13일. 오전 11시 퇴원하였는데 열흘간의 병원에서 경험과 떠올랐던 상념들을 세세히 정리하면 중편 소설 분량은 넘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열흘간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풀들은 마음껏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동안 그 풀들도 기분 좋게 보고 있었다. 비록 몸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내 운명의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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