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교육공약에 고교학점제가 있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과목을 수강신청해서 들으면 과목선택의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원하지 않는 교과목 시간에 교실에 앉아있어야 하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교육선진국과 함께 간다는 점에서도 이 제도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첫째, 교사들의 수업평가권을 교사 개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 내용은 이기정 교사(서울, 미양고)가 2017.6.5일자 경향신문을 통해 잘 지적했다.
이 교사 주장의 의미는, 예컨대 문학창작 과목을 개설했는데 두 교사가 나눠 가르치되 중간-기말고사에서 기존과 같은 공동출제, 상대평가제를 실시하면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평균점을 인위적으로 맞추려 하기 때문에 공통의 시험출제 근거인 교과서를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두 교사가 긴밀히 협의하여 학생들의 창작품을 평가한다든가, 두 교사가 맡은 학급에 대해 동일한 논술주제를 쓰게 하거나 동일한 창작과제를 제시하고 채점기준에 합의를 봐서 채점할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수행평가를 두 세 명의 교사들이 나눠 가르칠 때 하는 방식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동일학년의 동일과목을 나눠 가르치는 교사들이 늘 합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가르친 학급은 나만이 시험을 출제한다'는 원칙이 가능해야 교사들이 소신껏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다. 학생들의 특성과 교사들의 소신에 바탕을 둔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교사 평가권의 완전한 독립'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학생들의 창의성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때 평가방식은 절대평가일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일례로 시(詩) 감상능력을 평가할 때 그 결과를 서열화해서 1등부터 50등까지 매긴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감상의 느낌과 정서는 학생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매기는 것은 노골적으로 석차를 매기는 것을 다소 가려줄 뿐 과도한 것은 매한가지다.

둘째, 한국의 고교교사들이 행정잡무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한국의 교사들은 수업, 수업준비를 위한 자료조사와 편집, 논술 및 서술평가에 집중할 수 없다. 그것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OECD 국가 중 한국의 교사들처럼 행정서류 잡무와 학급담임 업무에 과도하게 노출된 나라가 거의 없다. 그만큼 수업 외의 일에 교육력을 낭비하고 있다. 깊이있게 수업준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과서와 EBS교재에서 수능시험이 출제되는 획일화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수능시험은 수시입학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이 높다. 이것은 수능점수를 위주로 뽑는 정시모집 비율이 약 30%로서 여전히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수시모집에서도 수능 최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 내신의 논술-서술형 절대평가제를 방해하지 않도록 대학입시가 변해야 한다.
전국 및 지역단위 표준화 성취도 평가(모의고사)는 폐지되어야 하며 수능은 절대평가제로 하여 참고자료로 쓰면서도 추후에는 폐지 혹은 전면 논술로 전환해야 한다. 객관식으로 답을 골라내거나 찍어서 맞추는 이상한 형태의 기존 시험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포괄적 사고력의 성장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고 비인간적으로 줄세운다. 모의고사 및 수능점수를 토대로 한 입시결과를 다시 학교평가 및 교사평가로 연결짓는 관행이 지속되는 한 학생과 교사들이 점수에 집착하는 상황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과서 이외에 도서관, 책방, 인터넷 등의 다양한 자료를 접하며 다양한 사고와 표현을 교내시험 및 수행평가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은 대부분 진열용으로 전락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점제를 실시해도 학생들의 적성과 상상력을 제고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서열화 장치들이 있어 입시를 관리하기가 다소 쉬웠다. 하지만 고교간 실력차가 많아서 서열화 장치로서 9등급 상대평가제가 대학입시에서 크게 실효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학생부종합전형 등과 같은 수시모집의 비중이 약 70%를 넘고 있다는 것은 수능의존도를 조금씩 줄여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능은 수시모집의 최종당락을 결정하는 '수능 최저등급제'가 있어서 여전히 영향력이 크다.

그럼 외국 대학에서는 어떻게 학생들을 뽑고 있는가? 대다수가 평가는 절대평가제이며 대학입시가 한국처럼 과열되어 있지 않다. 수능시험은 주로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 없다. 미국에서도 수능시험의 의존도도 절대적이지 않다. 캐나다에서는 모두 내신성적 즉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학생을 선발하되, 필요한 경우에 대학에서 즉석에서 짤막한 에세이를 작성하게 하는 정도다.

교육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이 기능-기술만 익히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취업이 보다 잘되기 때문에 대학진학이 과열되지 않는다. 즉 기능인 우대라는 직업차별-학력차별을 극복한 것이 과열양상을 누구러뜨리는 1차적 제어장치다. 다음으로 대학에서 입학을 쉽게 하고 졸업을 어렵게 함으로써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대학가려고 욕망하지 않도록 했다. 이것이 2차적 제어장치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이 장치 모두가 부실하다.

수능이 절대평가제로 바뀌거나 폐지해도 대학입시는 얼마든지 치를 수 있다. 즉 기존의 수시모집에서 하는 것과 같이 학생들의 내신관리 및 탐구활동을 점수로 환산하면서 이를 확대하면 된다. 동시에 대학졸업자만이 사회적으로 우대받는 왜곡된 풍토 즉 동북아시아에서도 유독 심한 한국의 차별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수 1점에 얽매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교육과 수업의 실험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분배구조를 바로잡아가는 장기적인 노력과 함께,  교사들로 하여금 절대평가에 기반하여 평가권을 충분히 발휘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학생부를 다채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다음에 대학은 그 결과물 갖고 인재를 찾아가면 된다.

참고로 학교내신 절대평가제의 전형이 프랑스 고교의 성적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래의 표는 프랑스 인문계 고교 3학년 학생의 성적표를 재구성한 것이다.

프랑스 인문계 고교 3학년 성적표(1995년) 프랑스에서 20여년 생활하고 귀국하여 한겨레신문사에 몸담았던 홍세화씨의 아들 성적표를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재구성한 것.
▲ 프랑스 인문계 고교 3학년 성적표(1995년) 프랑스에서 20여년 생활하고 귀국하여 한겨레신문사에 몸담았던 홍세화씨의 아들 성적표를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재구성한 것.
ⓒ 신남호

관련사진보기


성적표를 보면, 고3 과정에서 수학, 철학, 역사-지리, 경제-사회, 체육, 제1외국어, 제2외국어로 7개 과목이다. 철학은 어려운 과목이어서 고3에서 개설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학생 개인의 성적에 대한 총점과 평균이 없고 과목평균이 있을 뿐이다. 소수점을 사용하여 좀더 상세하게 평가하되 절대평가제로 한다. 학생성적을 기록하고 그 과목의 최고점, 평균 그리고 최하점을 기록하고 있다. 교내 및 전국의 학생들을 서열화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학생이 말을 너무 안하니까 "제발 말 좀 하시오"라고 가감없이 써준다는 것이며, 학교장이 검토하고 싸인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학생들의 학업에 대해 학교전체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서산의 해미 초등학교 김광일 교사, 서울 혜성여고 김창식 교사와 논의를 거쳐 게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