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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이제나 새로운 책은 나날이 꾸준히 나옵니다. 그런데 예전하고 요즈음은 사뭇 다릅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책을 쓰기 어려웠다면 요즈음은 누구나 책을 쓰기 쉽습니다. 예전에는 대단하구나 싶은 사람들만 책을 썼다고 한다면, 요즈음에는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스스로 뜻한 바에 따라서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학·작품·예술·학문·인문 같은 이름을 붙여서 책이 나왔다면, 오늘날에는 즐거움과 기쁨과 보람과 재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책이 나온다고 할 만해요.

힘이 미래를 향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세계의 문은 활짝 열린다. 그렇게 되면 분명 생각도 느긋해진다. 굳이 다르게 말하자면 겁이 없어진다. (14쪽)

회사의 대표는 엑셀을 쓸 수 없고, 사원은 영수증 쓰는 법을 모른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사업계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쫓아와서 뭐라 할 정도로 영업자의 얼굴 표정은 우울하다. (33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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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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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이 붙는 책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1만 부도 1천 부도 아닌, 때로는 백 부나 쉰 부만 찍는 책이 나옵니다. 때로는 열 부나 오직 한 부만 빚는 책이 나옵니다. 한 부만 빚어도 책일까요? 네, 한 부여도 책이지요. 오직 한 곳에 두고 오직 한 사람이 읽도록 빚어도 책입니다. 오직 한 부를 빚었어도 어느 책방이나 도서관에 고이 두고서 누구나 찾아와서 느긋하게 즐길 책이 될 수 있어요.

오늘날은 책이 덜 읽히거나 안 읽힌다고 하지만, 오늘날은 책이 아니어도 즐길거리가 넘친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예전하고는 사뭇 다르게 책을 여러 갈래로 바라보면서 더 재미나고 넓고 깊이 마주하는 흐름이 태어난다고 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새로운 출판사도 태어나지요. 1인 출판사도 있고, 작은 출판사도 있습니다. 집을 일터로 삼는 출판사도 있으며, 따로 일터를 두지 않고 즐겁게 책을 짓는 출판사도 있어요.

도매상도 계속 새로운 출판사와 거래를 해서 새로운 감성에 의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 말하든 무조건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래도 도매상은 신규 거래를 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84쪽)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갈라파고스 펴냄)는 일본에서 새롭게 책마을을 가꾸고픈 꿈을 키운다고 하는 미시마 쿠니히로라는 분이 스스로 작은 출판사를 열고 나서 어떤 구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엑셀을 쓸 줄 모르는 글쓴이는 어엿하게 사장(대표) 노릇을 합니다. 영수증을 쓸 줄 모르는 이는 글쓴이하고 같은 출판사에서 일할 뿐 아니라 영업자로 책방을 다닌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통장에 돈이 바닥나려고 할 즈음 새로운 일꾼을 뽑자고 생각했대요. 비록 돈은 한 푼도 없으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일을 짊어지지 못하겠다고 여겼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미시마샤'라는 출판사를 연 글쓴이는 터무니없지도 않고 우스꽝스럽지도 않다고 할 수 있어요. 통장에 돈이 바닥날 즈음에야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네' 하고 깨달았고, 비록 돈이 없더라도 일꾼을 들여서 함께 출판사를 가꾸어야겠다는 꿈을 품었거든요.

일삯을 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더라도, 일삯을 꼭 주면서 함께 일할 벗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니, 함께 일할 분도 처음에는 일삯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틀림없이 일삯을 제대로 받으리라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일할 수 있을 테고요.

여기에 미시마샤의 책이 있는 것은 이 서점에 틀림없이 사람이 있어서야. 귀찮은 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을 이해한 다음 그것을 판매대에 진열하기로 결심한 서점 직원이라는 한 사람이 거기에 있어. 그 한 사람의 존재가 미시마샤와 독자를 연결해 주는 거야. (100쪽)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까지면서 한 걸음씩내딛은 작은 출판사는 이제 '아주 작은' 곳은 아닌 출판사 자리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제법 늘었다고 해요. 그런데 함께 일하는 사람 누구나 글쓴이처럼 이리 부딪히고 저리 헤매는 몸짓이라고 합니다. 다들 '잘 닦인 길'로는 안 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새로 나아갈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한테 더 많은 책을 팔아서 읽히려는 출판사가 아닌, 바로 한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책을 지어서 선보이려는 출판사 걸음을 걷는다고 해요. 누가 우리 출판사 책을 사서 읽어 줄는지 모르지만 '읽는이 한 사람'을 헤아리며 책을 지었고, '한 사람을 헤아린 책'은 뜻밖에 한 사람만 사서 읽지 않고 꽤 많은 분들이 즐겁게 사서 읽어 준다고 합니다.

 속그림. 출판사를 차린 분이, 출판사를 차린 날 처음 쓴 일기
 속그림. 출판사를 차린 분이, 출판사를 차린 날 처음 쓴 일기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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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샤는 대상 독자를 설정하지 않는다. 마케팅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그쪽으로 기우는 현 상황에서 잃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은 세대나 성별이나 시대를 초월한다. (185쪽)

책은 사람이 짓습니다. 책에 담을 글은 사람이 씁니다. 책은 사람이 장만합니다. 책은 사람이 두 손에 쥐어 읽습니다. 책이 될 나무는 숲을 이루며 사람한테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책이 되어 준 나무는 종이꾸러미인 모습이더라도 사람한테 마음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 노릇을 합니다. 숲을 이룬 나무일 적에는 사람한테 몸을 살찌우는 푸른 바람을 준다면, 종이꾸러미로 거듭난 나무일 적에는 사람한테 마음을 살찌우는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고 할까요.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라는 책은 사람을 읽고 나무를 읽으며 이 땅을 함께 읽으려는 걸음을 차근차근 내딛는 이야기가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즐겁게 책길을 걷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로 엮었다고 할 만합니다. 잘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책 한 권을 지을 적에 즐거운 마음이 되자는 뜻을 이웃한테 곱게 보여주려는 몸짓으로 이런 이야기를 내놓았다고 할 만해요.

손님은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인간미가 있는 것에 반응한다. 그것은 내가 편집에서 항상 주의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미 있는 책 만들기를 하자. 한 권에 혼을 담자. (75쪽)

마음을 책에 담습니다. 마음을 책에서 읽습니다. 푸른 숲내음을 책에 담습니다. 푸른 숲내음을 책에서 읽습니다. 즐거운 땀방울을 책에 담습니다. 즐거운 땀방울을 책에서 읽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책에 담으면서 책마을 일꾼은 환하게 웃을까요?

여기에 또 무엇을 우리가 책으로 읽으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맛볼까요? 크거나 작은 출판사도, 크거나 작은 책방도, 또 크거나 작은 사람도 서로서로 따사로이 아끼면서 손을 맞잡을 적에 책 한 권이 빛이 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미시마 쿠니히로 글 / 윤희연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 / 2016.8.25. / 15000원)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 작지만 강한 출판사 미시마샤의 5년간의 성장기

미시마 쿠니히로 지음, 윤희연 옮김, 갈라파고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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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