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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시종 높이 17.2, 15.4cm. 경주시 용강동 석실 무덤에서 나옴. 왼쪽은 주인이고 오른쪽은 시종이다. 둘 다 가슴이 네모지게 파인 표의(원피스)를 입었다. 그런데 주인은 표의 위에 오늘날 숄 같은 ‘표’를 걸쳤다. 옷소매 부리도 시종보다 넓다. 둘 다 머리 모양은 정수리 위로 쪽을 졌다.
▲ 주인과 시종 높이 17.2, 15.4cm. 경주시 용강동 석실 무덤에서 나옴. 왼쪽은 주인이고 오른쪽은 시종이다. 둘 다 가슴이 네모지게 파인 표의(원피스)를 입었다. 그런데 주인은 표의 위에 오늘날 숄 같은 ‘표’를 걸쳤다. 옷소매 부리도 시종보다 넓다. 둘 다 머리 모양은 정수리 위로 쪽을 졌다.
ⓒ 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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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순장(殉葬 따라죽을순·장사지낼장)이란 장례 풍습이 있었다. 말 그대로 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우리나라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설령 이런 풍습이 한때 있었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더구나 통일신라 옛 무덤에서는 산 사람 대신 함께 묻었던 흙인형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흙으로 사람 모양을 빚어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것을 토용(土俑 흙토·허수아비용)이라 한다. 왕이나 귀족 무덤을 쓸 때 살았을 적에 시중을 들었던 신하와 종, 평소 아끼고 잘 보살폈던 짐승을 그 모습 그대로 아주 작게 흙으로 빚어 시신과 함께 묻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토용은 순장을 대신했던 '흙인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산 사람을 같이 묻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사진1〉 술병을 든 신라 여인, 〈사진2〉 미인도, 〈사진3〉 밀로의 비너스 〈미인도(美人圖)〉(비단에 채색. 114.2×45.7cm. 간송미술관),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초 그리스 말기의 비너스 상. 대리석. 높이 204cm.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 〈사진1〉 술병을 든 신라 여인, 〈사진2〉 미인도, 〈사진3〉 밀로의 비너스 〈미인도(美人圖)〉(비단에 채색. 114.2×45.7cm. 간송미술관),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초 그리스 말기의 비너스 상. 대리석. 높이 204cm.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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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눈을 하고 히죽 웃고 있는 신라 여인상

위 사진에서 가장 왼쪽 〈사진1〉은 흔히 '신라 여인상'으로 알려진 흙인형이다. 이 여인상 또한 시신과 함께 묻은 껴묻거리다. 오른손에는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히죽 웃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겉에 입은 옷을 표의(表衣)라 하는데,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원피스 같은 옷이다. 통일신라 시대 여자들 옷은 소매가 길어 웬만해서는 손을 볼 수 없었다. 이 여인상의 표의도 마찬가지다. 이는 당시 여자들이 손끝을 내보이는 것을 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여자들은 바깥나들이를 할 때 반드시 한삼(汗衫)을 저고리 위에 걸쳐 손을 가렸다.


표의 아랫단을 보면 발끝이 살짝 보인다. 그런데 신코가 좀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여자들은 신코가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물상을 볼 때는 똑같은 자세로 서서 그 몸짓 그대로 해 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의 첫걸음이다. 두 발이 왼쪽으로 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 여인상은 왼쪽으로 70도 정도 서 있는 상태에서 몸통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앞을 보고 있는 것이다.

치맛단 아래로 내보이는 발이 없었다면

〈사진2〉는 조선 후기 혜원(蕙園) 신윤복(1758~?)이 그린 〈미인도〉이다. 조선 후기 화류계의 한 기생이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여인은 우선 치마끈 매듭을 풀어 답답한 배를 숨쉬기 편하게 한 다음 저고리를 벗으려고 옷고름을 풀고 있다. 눈을 아래로 해서 치마 밑단을 보면, 왼 버선발을 살짝 내놓았다. 만약 이 왼 버선발을 안 그렸다면 이 그림 아랫부분은 그야말로 펑퍼짐한 치마뿐이었을 것이다. 이 여인의 무게중심은 오른발이 분명하지만 그림에서는 이 왼 버선발이 여인네 몸의 중심을 딱 잡아 주고 있다.


 
세 여인의 발 치맛단 아래로 내보이는 발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답답하고 균형 없는, 그야말로 어정쩡한 느낌이 들 것이다.
▲ 세 여인의 발 치맛단 아래로 내보이는 발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답답하고 균형 없는, 그야말로 어정쩡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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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은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다. 멜로스섬(밀로스섬 또는 밀로섬이라고도 한다) 아프로디테 신전 가까이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한다. 척 보면 얼굴과 턱이 갸름하지 않고 허리도 잘록하지 않다. 그리스 말기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이 여인은 위아래가 하나로 된 휘장옷을 걸쳤는데, 웃통을 벗어 아래로 흘러내려 골반과 엉덩이에 걸쳤다. 이 여인상 또한 치맛단 아래를 보아야 한다. 비너스는 오른발을 살짝 내놓았는데, 보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다. 이 여인상의 무게중심인 것이다.


만약 위 세 여인 치맛단 아래로 내보이는 발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답답하고 균형 없는, 그야말로 어정쩡한 느낌이 들 것이다. 

 
술병을 들고 히죽 웃고 있는 신라 여인 통일신라. 경북 경주 황성동 석실 무덤에서 나옴. 높이 16.5cm.
▲ 술병을 들고 히죽 웃고 있는 신라 여인 통일신라. 경북 경주 황성동 석실 무덤에서 나옴. 높이 16.5cm.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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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머리와 허리띠 매는 자리까지도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신라 여인상을 앞, 옆, 뒤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머리 모양이다. 이 머리는 쪽머리다. 옛날 머리 모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중앙에 가르마를 하고 양옆으로 뒤로 넘겨 뒤통수에 쪽을 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머리에 무언가 쓴 것 같다. 더구나 옆모습을 보면 귀가 보이지 않는다. 또 머리 윗부분이 너무 크고 솟아 있다. 내 생각에는 천으로 짠 두건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야 머리 비율이 맞다. 이제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자. 여인은 원피스 위에 띠를 둘렀는데, 그 자리가 허리춤이 아니다. 가슴 바로 아래쯤에 띠를 둘렀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신라 여인들은 띠를 위로 올려 잡아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 한복 치마끈 매는 자리와 같다.


비록 16.5cm밖에 안 되는 작은 흙인형이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말해 주지 않는 1500년 전 신라 여인의 옷과 머리 모양을 아주 자세히 말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유튜브 동영상 같은 유물이 아닐까 싶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와 〈술병을 든 신라 여인〉의 머리 모양 밀로의 비너스 머리 모양은 뒤통수에 띠로 한번 둘러 묶었다. 그에 견주어 신라 여인은 뒤통수에 남자 상투처럼 단단히 묶었다. 그래서 아래로 쳐지지 않고 조금 꼿꼿하다.
▲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와 〈술병을 든 신라 여인〉의 머리 모양 밀로의 비너스 머리 모양은 뒤통수에 띠로 한번 둘러 묶었다. 그에 견주어 신라 여인은 뒤통수에 남자 상투처럼 단단히 묶었다. 그래서 아래로 쳐지지 않고 조금 꼿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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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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