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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에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오산리 선사 유적지에 세웠고, 거기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쏠비치호텔&리조트'가 보인다. 원래 이곳에는 호수 '쌍호'가 있었다. 호수가 나란히 두 개 있어 쌍호(雙湖)라 한 것이다. 1977년 이 호수를 메워 논으로 벌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호숫가 모래언덕 흙을 퍼 날라 호수를 메꾸는데, 거기서 석기와 그릇 조각이 나와 공사는 바로 중단되고 그 뒤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한다. 흙층은 일곱 층이었다. 거기서 나온 숯 일곱 개를 분석해 보니 기원전 6000년에서 5000년 전 신석기 집터로 밝혀졌다. 신석기인이 이곳에서 1000년 남짓 살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이곳만큼 살기 편한 곳도 찾기 힘들 거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200미터만 가면 바다가 있고, 또 바로 앞에는 큰 호수가 있어 먹을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 흙인형 신석기 시대. 가로 4.3cm. 높이 5.1cm. 이 흙인형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있었는데, 지난 2011년 10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 사람 얼굴 흙인형 신석기 시대. 가로 4.3cm. 높이 5.1cm. 이 흙인형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있었는데, 지난 2011년 10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 서울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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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흙인형은 어린이가 빚었다!

위 사진은 오산리 선사 유적지에서 나온 '흙으로 빚은 사람 얼굴'이다. 이 흙인형은 역사책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이 '신석기 시대에 흙으로 빚은 사람 얼굴'이라 써 놓을 때가 많다. 또 한자로 '토제인면상(土製人面像)'이라 써 놓기도 한다.


타원형 흙 반죽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꾹꾹 눌러 빚은 얼굴상이다. 먼저 두 눈을 양쪽 엄지로 누른 뒤, 다시 양쪽 엄지로 콧날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엄지를 써서 입을 표현했다. (어떻게 오른쪽 엄지인지 아느냐 물을 수 있는데, 위 사진과 다른 사진에서 입 모양을 보면 오른쪽 엄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흙인형을 '어린이'가 빚었다고 본다. 강원도 속초 상평초등학교 탁동철 선생님에게 이 흙인형 사진을 보여 줬더니, 그도 "일곱 살 아래 아이가 빚은 것"이라 했다. 나도 그미의 의견에 동의한다. 무엇보다도 어른 손가락으로는 이렇게 작은 크기에, 저렇게 깊게 또 옆으로 살짝 길게 눈과 입을 표현할 수 없다.

 
쏠비치호텔&리조트에서 바라본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옛날에는 박물관 앞뒤로 호수였다. 지금은 박물관 오른쪽 앞에 물웅덩이만 조금 남았다.
▲ 쏠비치호텔&리조트에서 바라본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옛날에는 박물관 앞뒤로 호수였다. 지금은 박물관 오른쪽 앞에 물웅덩이만 조금 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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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연 신의 형상일까?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흙인형 설명글을 찾아봤다.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 얼굴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와 세로의 폭이 각각 4.3cm와 5cm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神像)의 하나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홈페이지 제1전시실
 
 
원래 이 흙인형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있었는데 2011년 10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으로 아주 가지고 왔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2007년부터 전시한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식을 연합뉴스에서 전했는데, 이때 박물관 측 학예사가 이런 말을 한다.
 
이번에 전시를 시작한 토제인면상은 생산과 풍요, 재액으로부터 보호 등을 기원하고 축원하는 의미를 가진 씨족 수호의 신상(神像)으로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발견되고 출토되고 있다.
-연합뉴스, '양양 오산리 토제인면상 30년 만에 귀향', 2011. 10. 7.
 
 
참으로 어려운 해설이다. 이 흙인형이 "생산과 풍요, 재액으로부터 보호"를 기원하는 "씨족 수호의 신상(神像)"이라 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동북아시아에서 나오는 인형이라 한다. 아래 흙인형과 치레거리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사람 얼굴 흙인형' 전시 공간에 들어가기 전 들머리 벽에 있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이러한 흙인형과 치레거리를 근거로 들며 사람 얼굴 흙인형을 '신상(神像)' 또는 '씨족수호신상'으로 본다.
 
 ?농포동 여인상(함경북도 농포동) 높이 5.6cm. ?사람 얼굴 치레거리(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사람 얼굴(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여인상(함경북도 서포항) 높이 7.7cm. ?신암리 여인상(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높이 3.6cm. ?일본 조몬 흙인형. ?조가비 치레거리(부산 동삼동). ?중국 우하량 여인상(대릉하 우하량) 높이 22.5cm.
 ?농포동 여인상(함경북도 농포동) 높이 5.6cm. ?사람 얼굴 치레거리(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사람 얼굴(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여인상(함경북도 서포항) 높이 7.7cm. ?신암리 여인상(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높이 3.6cm. ?일본 조몬 흙인형. ?조가비 치레거리(부산 동삼동). ?중국 우하량 여인상(대릉하 우하량) 높이 22.5cm.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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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 벽에 써 있는 설명글을 보면, 신암리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지모신(地母神)"이고, 서포항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이고, 조가비 치레거리는 '신상'이다. 하지만 저번 글('신암리 비너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에서도 말했듯이 신암리 여인상은 신석기 아이가 빚은 여인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고, 조가비는 조가비 입에 목걸이 줄을 건 치레거리이고, 서포항 여인상 또한 구멍에 줄을 꿰어 몸에 찬 치레거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다.

  
 
 사람 얼굴 흙인형 전시 공간 들머리 벽 설명글
 사람 얼굴 흙인형 전시 공간 들머리 벽 설명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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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근거가 적합한지는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 흙인형을 '신상(神像)'으로 보는 것, 이것은 너무 과한 억지 해석이 아닌가 싶다. 신상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숭경(崇敬)의 대상이 되는 신의 화상, 초상, 또는 조각상"이라 나와 있다. 이 설명 또한 어렵기는 매한가지만 쉽게 풀어 쓰면 '높이 우러러 모시는 신의 얼굴'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 흙인형에서 신상의 느낌이 전혀 전해오지 않는다. 더구나 높이가 5.1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흙인형이다.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이어 놓았을 때 높이다. 이렇게 작은 얼굴에서 어떻게 신상의 느낌이 들 수 있겠는가.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사람 얼굴 흙인형의 실제 크기 흙인형 높이는 5.1cm다. 오백 원짜리 동전 지름이 2.6cm이니까 동전 두 개를 이어 놓은 크기다.
▲ 사람 얼굴 흙인형의 실제 크기 흙인형 높이는 5.1cm다. 오백 원짜리 동전 지름이 2.6cm이니까 동전 두 개를 이어 놓은 크기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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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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