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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아트벙커 B39는 카페, 공연장, 강연장 등 다양한 시설들을 갖춘 복합 문화시설이다. 부천 한복판에 지어진 세련된 문화시설이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신축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B39는 동네와 함께 나이를 먹어 온 쓰레기 소각장이 재탄생한 문화공간으로, 옛 소각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시설의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최근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6월 10일 제31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인권기념관' 조성 방침을 밝혔던 곳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유명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고문을 자행했던 장소였다. 1979년 일가족 12명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던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1985년 김근태 고문 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이곳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긴 여정을 앞두고 지난 9월 20일 아트벙커 B39를 설계한 김광수 건축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모두가 피하던 쓰레기 소각장이었는데...
   
 B39에는 오래된 기둥과 리모델링한 면이 공존한다.
 B39에는 오래된 기둥과 리모델링한 면이 공존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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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벙커 B39는 본래 오랫동안 방치된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1995년 가동을 시작했던 삼정동 소각장은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다이옥신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결국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가동을 중단한 채로 몇 년간 흉물처럼 남아있었다.

방치된 소각장을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한 건 부천문화재단의 기획이었다. 부천문화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프로젝트'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삼정동 소각장에서 꾸준히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아트벙커 B39는 2018년 정식 개관했지만, 문화 프로그램을 2014년부터 개최했다. 

설계 공모를 하기도 전부터 부천문화재단에서는 삼정동 소각장 건물을 사용하여 앞으로 만들어질 문화공간의 상을 그리는 '융복합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5년에는 소각장의 시설과 장비들을 활용하여 전시회를 기획하고, 라이브아트쇼‧공공미술제작 워크숍 등을 개최했다. 2016년에는 소각장에 3D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다양한 디지털 장비를 구비하여 청년들이 자유롭게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창작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일단 공간을 조성한 이후 프로그램을 채우는 종래의 방식을 역전시켜 프로그램을 먼저 진행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부천문화재단은 문화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실제 수요를 확인하고, 소각장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구체화했다.

B39에 들어서면 옛 쓰레기 소각장의 모습이 유리창을 통해 바로 보인다. 기둥도 새 기둥이 아니라 오랜 흔적을 간직한 옛 소각장의 기둥 그대로다. 하얗고 매끈하게 칠해진 카페 테이블과 녹슨 소각장 장비가 마주 보고 있는 B39 카페테리아의 전경은 이질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김광수 건축가는 카페에 앉아 소각장을 관람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각장으로 들어가 소각장에서 카페를 바라보는 경험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옛 소각장 장비가 있는 쪽에서 카페테리아를 바라본 모습
 옛 소각장 장비가 있는 쪽에서 카페테리아를 바라본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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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인간이 잉여물이 되는 현대사회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이 공간은 쓰레기 소각장이기도 했지만, 비단 인간이 만드는 쓰레기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만드는 잉여 인간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간과 귀신이 공존하는 영화 <디아더스>처럼, 인간과 쓰레기도, 또한 인간 안에서도 그런 면모들이 공존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죠."

카페테리아를 지나 작은 아치를 통과하면, 어마어마한 높이로 뚫린 거대한 공터가 나타난다. 벽 중앙에 철문이 세 개 달려 있는데, 이 철문을 통하여 쓰레기가 반입되던 쓰레기 저장고라고 했다. 이곳의 높이는 39m, 이 건물의 이름 B39에는 이곳 저장고의 높이도 상징적으로 쓰였다. B39의 동선은 쓰레기 소각 동선과 동일하게 설계되어 있다. 트럭을 통해 쓰레기가 유입되고, 대규모로 넘겨져 불에 태워지고, 남은 유해가스가 처리되는 쓰레기 처리 과정을 따라 갈 수 있다.

"공간을 재사용한다고 해서 소각로의 모습들을 다 그대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존치할 부분과 철거할 부분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쓰레기 저장고로 들어가는 통로도 사실 본래 없는 길입니다. 쓰레기 소각의 과정을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설계 과정에서 추가된 거죠."
 
아치 쓰레기 저장고의 어마어마한 층고를 완충시켜주는 인간적인 규모의 아치
▲ 아치 쓰레기 저장고의 어마어마한 층고를 완충시켜주는 인간적인 규모의 아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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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저장고의 층고는 어마어마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저장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아치는 이 경험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아치는 둥글게 생겨 사람들 편안하게 하기도 하고, 또 사람 키에 맞추어 설계되어 있어 쓰레기 저장고에 비해 '인간적인 스케일'로 방문객을 안심하게 한다. 

아치가 쓰레기 저장고의 위압을 감당하게 해주는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김광수 건축가는 건물에도 완충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집 밖을 나서면 바로 차가 쌩하니 달려나가고, 건물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다른 건물이 놓여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김 건축가는 이를 건물들이 제각기 벽을 마주대고 공동의 공간 없이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완충지대 하나 없이 모두 제각기의 건물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갈등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이 때문에 김 건축가는 이전의 건축 작업에서도 늘 '완충지대'를 세심하게 설계해왔다. B39에서도 마찬가지다.

B39에는 본관에 진입하기 전에 정문에서 본관 사이에 완충지대가 있다. 이는 본래 쓰레기 소각장 건물을 관리하는 관리동 건물로, 김광수 건축가는 관리동 건물과 본관 건물 사이에 기둥을 나란히 세워 건물로 진입하는 길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들어서자마자 바로 다른 건물로 진입하는 피로감을 줄이고, 주변의 조경을 감상하며 잠시나마 산책하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관리동 건물과 본관을 연결하고 있는 기둥들을 통해 완충과 산책의 경험을 제공한다. (김광수 건축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임직원의 모습)
 관리동 건물과 본관을 연결하고 있는 기둥들을 통해 완충과 산책의 경험을 제공한다. (김광수 건축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임직원의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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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충지대'는 건물의 설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을 준공하는 방식도 '완충'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트벙커 B39는 기존 설계안이 전부 구현된 모습이 아니다. 초기 설계안의 절반에 못 미치는 40퍼센트 정도만 시공되어 있다. 그래서 1~3층은 공개되어 있지만, 4․5층은 시공되지 않았으며 도슨트와 동행에 따라서만 입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벙커 B39가 오픈된 건, 김광수 건축가의 '단계별 설계/준공' 전략 때문이다. 큰 공간을 한 번에 리모델링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오픈할 수 있는 부분만 먼저 시공하고 오픈 뒤에 다시 계획을 세워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수년에 걸쳐 설계와 시공이 진행되다 보니, 하나의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담당 공무원도, 심지어는 설계 주체도 변경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건물이 완공될 때에는 초기 기획안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또한 건물의 운영 주체 역시 중요하다. 아트벙커 B39는 2014년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부터 건물이 오픈한 지금까지 동일한 단체(노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김광수 건축가는 의도를 살려 건축을 해도, 의도에 맞게 쓰이지 않으면 건물은 추후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면받던 공간을 희망의 공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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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과 삼정동 소각장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닮아있다. 지금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에서 경찰 인권센터로 용도 변경하여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들이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그나마 4층에 위치한 박종철 열사 기념관 덕택에 구 남영동 대공분실의 참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제 국가폭력 청산의 맥락에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외면당했던 공간을 희망의 공간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사회적 과업이기도 하다. 이제 이 거대한 폭력의 공간은 그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건축물의 변모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현장이 민주인권의 장으로 거듭나는 사회의 혁신적인 재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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