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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에펠탑과 바토무슈

파리의 대표 건축물인 에펠탑을 보려면 바로 밑보다는 도보로 20여분 떨어진 샤이요궁(Palais de Chaillot) 쪽이 좋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어 우리는 메트로를 타고 '트로카데로(Trocadéro)' 역으로 향했다.

샤이요궁은 원래 트로카데로궁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지어진 좌우대칭의 웅장한 건물로 한쪽 날개는 문화재박물관, 다른 한쪽 날개는 인류박물관과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고, 중앙광장 밑에는 샤이요국립극장이 있다. 이 극장에 아빠가 관심을 보이신 건 지난날 당신이 최승희에 관한 글을 쓰셨기 때문이다.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샤이요궁의 일부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샤이요궁의 일부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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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무용가 최승희는 1938년 6월 23일 이 극장에서 공연을 가졌다고 한다. 그날 유럽 최대극장인 객석 3천석의 이 극장은 최승희의 춤을 보러온 사람들로 꽉 찼는데 그 가운데는 화가 피카소, 앙리 마티스, 시인 장 콕토, 작가 로맹 롤랑, 배우 미셸 시몽 등 당대의 문화예술인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최승희는 그들 앞에서 새로 창작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능숙한 공연을 펼쳤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무용가 라 아르헨티나가 죽은 뒤로 구미에 이렇다 할 솔로 댄서가 없던 차에 최승희가 다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거라고 했다. 당시 신문은 그녀를 격찬했고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슨 춤이었어요?"
"조선 춤."


가장 인기를 끈 건 '초립동' 춤이었는데, 최승희가 공연을 마치고 난 뒤 일주일 만에 초립동 모자가 파리에 유행했다는 것이다. 이 설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2002년 KBS취재팀이 파리의 고몽필름센터를 방문해 찾아보았더니 사실로 밝혀졌다.

당시 프랑스 아나운서가 "여성용의 새로운 모자가 지금 막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셍시프라는 모자 디자이너가 초립동 모자를 처음 도입했는데 파리 여성들을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게 합니다"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담긴 모자 패션 필름을 확인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한류였네요."
"한류 제1호지. 재미있는 건 객석에서 관람하던 피카소가 최승희의 모습을 연필로 스케치했다는 사실이야."
"정말요?"

 
  관능미가 돋보였다는 최승희의 보살춤
  관능미가 돋보였다는 최승희의 보살춤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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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자 피카소는 최승희를 찾아와 스케치 그림을 선사하면서 "진정한 예술가는 시대의 꿈과 이상을 창조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당신이 바로 그런 예술가요"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피카소가 그린 이 연필화는 KBS가 최승희 탄생 9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내 모 거물급 정치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보도한 잡지가 있었다.

아빠의 설명을 들은 나는 샤이요궁을 새삼 뜻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극장 안에 들어가서 당시의 정경을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대리석이 깔린 샤이요궁 중앙광장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물결에 밀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샤이요궁 앞으로 에펠탑(Tour Eiffel)의 전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첨탑까지 324미터 높이의 에펠탑은 39년 전과 마찬가지 모습으로 서 있구나 하고 아빠가 술회하셨다. 너무나 유명한 탑이고 너무나 많은 사진을 보아왔기에 새로울 것도 없지만, 아빠로선 "파리에 다시 왔구나" 하는 감회만은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에펠탑을 찍기 위해 셀카봉을 든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개별 관광객도 많지만 동양의 단체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셀카봉을 사라고 외치는 아프리카계의 장사꾼들도 많다.

에펠탑은 프랑스대혁명 1백주년이 되는 1889년 제4회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골 건축물을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교량전문가 귀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이 구조물은 미관을 위해 화강암을 덧씌우던 당시 개념과 반대로 내부철골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식이었다.

이 때문에 파리 시민들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격렬히 반대했고, 그 반대세력의 중심에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있었다. 한편, 날마다 에펠탑의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소설가 모파상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꼴 보기 싫은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여기 와서 밥을 먹는 거요."

에펠탑 밑에선 에펠탑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 지식인들의 조롱과 달리 이 탑은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동안 2백 만 관람객이 찾아오는 대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연 7백만 명이 찾아오는 파리 제1의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나는 처음부터 사진 찍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장소는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가 1940년 에펠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자리였다. 독재자이니 얼마나 고르고 고른 자리에서 포즈를 취했겠는가.
  
 1940년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히틀러
 1940년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히틀러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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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에펠탑 승강기의 케이블이 끊어지는 바람에 히틀러가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프랑스인들은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했지만 에펠탑은 정복하지 못했다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여 독일군을 밀어내자 히틀러는 파리 군정장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에게 파리 철수시 도시의 주요건축물과 기념물을 모두 폭파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폰 콜티츠가 이 명을 어기는 바람에 에펠탑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폭파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도 살아남은 파리의 에펠탑
 폭파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도 살아남은 파리의 에펠탑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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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나서 에펠탑이 세워진 마르스공원(Champ de Mars) 쪽으로 내려갔다. 좌우대칭의 조형미를 중시하는 프랑스인의 건축양식에 따라 조성된 대형 분수대와 인공호수 옆의 길을 따라 에펠탑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에펠탑 밑에 도착하니 전망대로 오르는 입장료도 내야 하지만 그보다도 기다리는 줄 때문에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보시겠어요?"
"아니다. 시간을 아껴야지. 파리 전경은 지난번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보았으니 올라가본 걸로 하고 뭐 좀 먹으러 갈까?"
"그렇잖아도 런치를 예약한 곳이 있어요."


음식 평가에는 가성비를 무시할 수 없는데, 가격이 비싼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요리가 맛있다는 의견은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격이 비싸지 않은 대중식당을 겨냥했다.

파리는 연중 내내 관광객이 넘치는 도시라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은 예약 자체가 쉽지 않고, 런치와 디너의 영업시간이 뉴욕이나 서울에 비해 다소 짧기 때문에 식도락가는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우리는 테마여행의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추천하고 싶은 곳 중의 하나는 카페 콩스땅(Café Constant)이고, 다른 하나는 포토카(Pottoka) 레스토랑이다. 둘 다 에펠탑 근처에 있다.
 
 추천하고 싶은 파리 에펠탑 부근의 레스토랑 포토카
 추천하고 싶은 파리 에펠탑 부근의 레스토랑 포토카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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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는 보통 전채요리(Entrée)+메인요리(Plat)+후식(Dessert)에 와인을 곁들이는데, 오늘 점심은 내부가 아담한,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포토카(Pottoka) 레스토랑의 코스요리였다. 우선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 모양부터가 예뻤다.

전채요리로 나온 얇은 무와 상큼한 라즈베리가 버무려진 참치 타르타르, 그리고 계란 반숙과 병아리콩의 고소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토마토소스가 얹힌 대구요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이 아주 일품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메인디시였던 비프스테이크보다는 대구요리를 추천하고 싶다.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느낀 거지만 파리의 쇠고기는 좀 질긴 편이어서 만족감이 크지 않았다.

단맛이 거의 없는 드라이 와인은 식사 도중에 마시는 음료로 고기는 레드와인, 해산물은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마시는데, 와인의 종류나 원산지 그리고 맛의 기호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 취향에 따르든지 잘 모르겠거든 메뉴에 맞는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웨이터에게 부탁하면 된다. 몇 가지 와인을 조금씩 맛보고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후식으로 먹은 프렌치토스트와 견과류가 곁들어진 아이스크림은 모양과 맛 둘 다 훌륭했다. 다 합해 1인당 35유로가 나왔는데, 파리에서 이 정도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는 대중식사가 맛있어야 그 나라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중 느낀 것은 파리의 레스토랑은 가격대가 비슷한 급이라도 맛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후기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다소 특이한 메뉴가 많지만 비위가 상하지 않으려면 식재료가 생소한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정통 프랑스 고급 요리라 하더라도 한국인의 입맛엔 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식사를 마치신 아빠가 다음 행선지를 재촉하셨다.

"이번엔 파리를 측면에서 보도록 하자."
"측면에서요?"
"유람선을 타보자고."


우리는 그랑팔레 부근의 센강 강변에 있는 바토무슈(Bateaux Mouches) 선착장으로 갔다. 인근 메트로역은 알마 마르소(Alma Marceau)다. 마침 떠나려는 배가 있어 서둘러 승선했다.
 
  파리 센강을 오가는 유람선 바토무슈의 선착장에서
  파리 센강을 오가는 유람선 바토무슈의 선착장에서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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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무슈는 14유로인데, 미리 예매해둔 표가 있어 따로 살 필요는 없었다. 승객들 대부분은 갑판 위의 노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쾌적한 날씨였기 때문이다.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센강 동쪽으로 나아가다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로 탑승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였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때 미술관으로 지었다는 그랑팔레(Grand Palais)와 프티팔레(Petit Palais)가 보였다. 그리고 부르봉궁→오르세미술관→루브르박물관 등 강변에 지어진 건축물을 거쳐 시테섬을 지나면서는 퐁뇌프다리→노트르담사원 등을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돌아오는 코스에서는 승선한 지점보다 훨씬 먼 곳까지 가서 돌아오기 때문에 튈르리정원, 엥발리드를 비롯하여 에펠탑과 샤이요궁을 원경으로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

배를 타는 동안 승객들은 두 지점에서 환호성을 올렸다. 한 곳은 화려한 알렉상드르3세다리였고, 다른 한 곳은 노트르담사원이었다. 
 
 승객들이 보면서 환호성을 지른 화려한 알렉상드르3세다리
 승객들이 보면서 환호성을 지른 화려한 알렉상드르3세다리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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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측면에서 보니 어떤 생각이 드냐?"
"중요한 건축물들이 강변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건물 하나하나도 그렇지만 구도가 너무 좋아요. 역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그렇게 배치한 거겠죠?"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역사적으로 파리 건축행정의 주안점은 '미관(美觀)'에 있었다. 모든 건축물은 자율적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지역의 특성이나 다른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전체적인 미관에 적합해야만 건축허가를 내준다는 점이다. 이 경우 건축물들의 배치와 구도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파리의 아름다움이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배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것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철학자 칸트의 지적처럼 우리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인의 그 감정을 결정지은 요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화? 균형? 통일? 시험문제와 씨름하던 고3 때의 포즈를 취한 나에게 아빠가 어깨를 두드리셨다.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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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