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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 전 어머니에게 돈을 줬던 자매님.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출근 전 어머니에게 돈을 줬던 자매님.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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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전에 엄마한테 돈을 드리고 나와요. 천원짜리 100장, 5천 원·만 원 섞어서 스무 장씩. 거기에 500원, 100원, 10원짜리 동전을 섞어서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돈이 하나도 안 보여요. '엄마, 아침에 드리고 간 돈 다 셌어요?'라고 물어보면 '몰라!' 그래요. 장롱 문 열면 엄마 옷 여기저기에 돈이 들어 있어요. 조끼에도 있고, 바지 안 주머니에도 있고, 잠바 주머니에도 있고."

몸이 불편한 치매 어머니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셨던 자매가 있다. 교회에서 만나 알게 된 그 자매는 2년 전 내게 치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매의 어머니는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 분이었다고 한다. 자매는 그런 어머니가 돈을 세면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나갈 때마다 각종 화폐와 동전을 드렸다. 하지만 돈을 저축할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자매가 준 돈도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숨겨두셨는데, 치매 때문에 돈을 둔 곳을 기억해내지 못하신 것이다.

아들만 바라보며 살아온 그 어머니

자매의 어머니는 평생 시골에서 깻잎 농사를 지었다. 자매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었다. 맏이이자 유일한 아들인 오빠는 오십이 넘었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오빠에게는 약간의 장애가 있었다.

자매의 어머니는 돈이 생기면 쓸 줄 모르고 모으기만 했다. 그저 일구월심 아들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소망하면서 돈이 생기면 은행으로 달려갔다. 40대에 남편을 여의고 3남매를 키운 어머니. 어머니가 더 이상 기력이 없어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졌을 때, 자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가 갖고 계신 돈, 그 돈 때문에 내가 엄마를 모신다고 애먼 말들을 해요. 직장 다니기도 바쁘니 요양원에 모시면 될 텐데 굳이 엄마를 모셔간다고. 바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다고."

자매는 억울한 마음을 내비치며 속상해했다. 어머니를 집에 모시기까지의 전후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자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달리 도울 게 없었다.

"우리 아들이 엄마 휠체어를 끌고 더우나 추우나 그렇게 산책을 다녀도 (엄마는) 만 원 한 장을 안 줘요. 말씀은 하시더라고. '나 산책시켜줘서 애쓴다, 고맙다'라고요.

엄마 치아가 부실해서 잘 씹지 못하니 날마다 죽을 끓여요. 아무리 맛있어도 한 가지만 할 수 없잖아요. 소고기 갈아서 하고, 어느 때는 시금치에 된장 풀어서 하고요. 거기에 참기름 살짝 두르고 깨소금 곱게 빻은 거 뿌려드리고.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니네 집에 와서 호강한다'고요."


자매의 어머니는 한때 집에서 가까운 '주간보호센터'(어르신놀이방)에 다녔다. 어머니는 처음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영 마뜩잖아했다. 그래도 첫날 두 시간, 다음 날 세 시간씩 적응하는 시간을 거쳐 자매가 출퇴근한 시간에 조바심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자매의 어머니는 센터에서 이성친구(할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 일상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건 센터 담당자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를 마음에 둔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자매의 어머니가 그 할머니를 괜히 타박했단다. 자매는 그런 어머니가 아이처럼 새삼 귀여워 웃다가 눈물을 쏟았단다.

"엄마가 어찌나 가여운지. 그저 평생 오빠만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일만 했어요. 오빠 때문에 여태 돈만 모으고 버틴 것 같아요. 남들 눈에 오빤 그저 장애인이고 결혼도 못한 중늙은이지만, 엄마를 여태껏 버티게 한 '보약'이었어요."

외손자에게 만 원 한 장 건넬 수 없을 만큼 오로지 당신 아들을 위해 돈을 모으던 자매의 어머니. 돈만 생기면 숨겨두기 바빴던 어머니. 하지만 치매를 앓으면서 돈을 둔 곳을 자꾸만 까먹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모습이 치매 판정을 받은 우리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매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내가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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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보약
  
벌집벌꿀    엄마가 '보약'이라고 하는 벌집벌꿀.
▲ 벌집벌꿀  엄마가 "보약"이라고 하는 벌집벌꿀.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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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꿀, 엄마의 보약
  벌꿀, 엄마의 보약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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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직전에 벌꿀 선물이 들어왔다. 포장박스에는 '지리산 벌집벌꿀'이라는 글귀가 적혔다. 엄마는 "이 꿀이 지리산에서 왔구나~ 이게 보약이다 보약이야"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엄마의 아침식사가 마무리되면 벌집벌꿀 한 숟가락을 드렸다. 단맛에 빠진 엄마는 아이처럼 남는 밀랍을 껌같이 씹으며 재밌어 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열흘쯤 지나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였다. 남편이 엄마한테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아니, 이걸 왜 주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 환하게 웃는 엄마.

"내가 돈 만져본 지가 얼마나 됐는지 몰라. 고마워."

엄마가 하는 이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기 전, 자주는 아니어도 1년에 열 번 이상 엄마를 찾아뵐 때마다 적게나마 용돈을 드렸다. 직장에 다닐 땐 직장에서 '효도비' 명목으로 매월 나오는 5만 원을 꼬박 넣어드렸다. 엄마는 만 원짜리 두 장을 겹쳐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었다.

그날 밤, 엄마는 당신이 사용하는 3단 서랍장을 열고 닫기를 거듭했다.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내가 잘 둔다고 뒀는데 그게 참 안보이네.' 저녁에 드린 돈을 어딘가에 넣어두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한테 넌지시 뭘 찾느냐고 물었다.

"이 서방이 준 돈이 없어."
"어디서 나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엄마는 "그래, 어디서 나오겠지? 내가 잘 넣어두고 못 찾는 걸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다음날, 아침을 드시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엄마는 3단 서랍을 다시 열고 닫았다. 엄마 목소리가 밝고 경쾌해졌다.

"내가 글쎄 여기다 두고 그렇게 찾았네."

엄마가 찾은 만 원짜리 두 장은 반으로 두 번씩 접혀 '꽃무늬양말'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양말은 딸아이가 할머니 신으라고 사온 꽃무늬 양말이었다. 그 양말에 돈을 넣어 꼭꼭 접고, 한겨울 털목도리로 양말을 감싸듯 다시 둘둘 말았다. 따로 지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저기다 돈을 두셨을까.

흰봉투에 적힌 글귀, 진짜 보약

문득,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기 직전이었을 즈음의 일이 떠올랐다. 사위에게 고급 양주를 꼭 주고 싶어 다른 사람 모르게 갖고 있었다면서, 당신 침대 매트를 올려 보자기에 싼 양주병을 건네던 엄마. '뭘 그렇게까지 술병을 꽁꽁 숨겨놓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마치 누가 그걸 훔쳐가기라도 할 것처럼 '얼른 가방에 넣어!'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의 치매는 그때부터였을지 모르겠다.

보름 전, 저녁을 먹고 난 한갓진 시간. 남편이 흰 봉투에 글을 쓰더니 만 원짜리 석 장을 넣어 엄마한테 드렸다. 엄마는 봉투의 글을 소리 내어 띄엄띄엄 읽었다.

"어, 머니, 오래, 오, 래 행복, 하, 세요."

글을 읽는 엄마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난 자네 마음이 느껴지는 이 글이 돈보다 더 좋네."

엄마가 봉투의 돈을 꺼내 3만 원을 확인했다. 어느새 침대방에 가서 지난번에 드린 2만 원을 갖고 나왔다. 그 돈을 봉투에 넣고 흐뭇해한다. 봉투엔 5만 원이 들었다.

엄마는 대전에 오면서 반려견 '두부'를 떼놓고 온 게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내가 여기 온 지 꽤 됐는데 두부가 날 기다릴 거야'라면서 한번 보고 와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

동생이 쉬는 날에 맞춰 대전에 오기로 했다. 그 전날, 엄마는 당신 짐을 보자기에 싸면서 또 돈을 찾았다. 3단 서랍장은 물론 행거에 걸린 당신 옷 주머니까지 모두 뒤졌는데 없단다. 나는 지난번처럼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가 밖에 나간 적이 없으니 침대방 어디에서 꼭 나올 거라고.
 
"그렇지? 그게 어떤 돈인데. 슬비애비(사위)가 나한테 준 건데. 에그, 내 정신이 왜 그러나 몰라. 안 그랬는데..."


동생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엄마가 '보약'이라고 말한 벌집벌꿀을 작은 항아리에 담았다. 치매를 지연시키는 흰 알약도 챙겼다. 엄마가 동생 차를 타면서 싱글벙글했다. 서산에 가면 아들도 만나고 '두부'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컸던 걸까. 사위가 준 돈 봉투는 찾지 못했다.

이틀 후, 동생한테 연락이 왔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인데, 엄마가 누나네 집에 가서 당신 돈 5만 원이 침대방 3단 서랍장에 있으니 갖고 오라고 했단다. 남편이 흰 봉투에 다시 글을 쓰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넣어 동생에게 주었다. 이것 또한 엄마에게 확실한 '보약'이 될 것 같았다. 보약 기운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침대방 3단 서랍장엔 엄마가 남긴 옷가지 몇 개가 남았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버리고 서랍장을 뒤집어 먼지를 털었다. 가운데 서랍장을 빼고 신문지를 집어 드는데 한구석에서 흰 봉투가 나왔다. 엄마가 오시면 챙겨드려야겠다.
 
엄마의 확실한 '보약'     사위가 준 5만원이 들어있는 흰봉투, 신문지를 깐 3단 가운데 서랍장에서 나오다.
▲ 엄마의 확실한 "보약"  사위가 준 5만원이 들어있는 흰봉투, 신문지를 깐 3단 가운데 서랍장에서 나오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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