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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생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있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이 마지막으로 거주한 집이다. 기행단이 방문했을 때는 기념관으로 열기위해 막바지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 최재형 생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있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이 마지막으로 거주한 집이다. 기행단이 방문했을 때는 기념관으로 열기위해 막바지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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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교육청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 10일차. 드디어 2018 충남교육청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 평화통일단의 마지막 체험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 체험을 끝으로 내일 오전에 러시아를 출발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8월 5일 아침, 바다가 보이는 블라디보스톡 항구 언덕에서 하룻밤을 보낸 인문학 기행단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톡역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의 생활과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고려인의 눈물 신한촌 기념비와 라즈톨리예 기차역
  
신한촌 기념비  블라디보스톡 라게르산 언덕에 세워진 기념비는 직사각형 모양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자리하고 있다. 3개의 기둥은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각각 상징한다고 한다. 한때 1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북적이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외진 곳에 기념탑만 쓸쓸히 서있다.
▲ 신한촌 기념비  블라디보스톡 라게르산 언덕에 세워진 기념비는 직사각형 모양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자리하고 있다. 3개의 기둥은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각각 상징한다고 한다. 한때 1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북적이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외진 곳에 기념탑만 쓸쓸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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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촌 기념비 참배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기념비를 참배하고 헌화 하였다.
▲ 신한촌 기념비 참배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기념비를 참배하고 헌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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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행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두만강을 넘은 선조들은 우수리스크와 이곳 블라디보스톡에서 한인촌을 이루고 살았다. 블라디보스톡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한인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여 시내 중심지에 '카레이 스카야슬라보드카' 혹은 '개척리'라 부르던 한인촌을 형성하고 비교적 풍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1911년 러시아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이유로 개척리를 강제로 철거하고(사실은 목 좋은 땅을 빼앗고)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라게르산 비탈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 곳에서도 다시 피와 땀을 흘려가며 신개척리를 건설하였고, 새로운 한국을 부흥시킨다는 의미로 이곳을 '신한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신한촌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1999년 8월 한민족 연구소가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이곳에 '신한촌 기념비'를 세웠다. 이날 기행단은 이곳에 헌화하고 묵념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민수(북일고 1) 학생은 '블라디보스톡에 정착한 한인들의 삶'이란 주제로 발제를 하였다. 그는 "비록 지금은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변해 과거 흔적은 찾기가 어렵지만 이곳은 고려인들이 근면함으로 일궈낸 역사적 장소이며 일제 치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그 뜻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의 아픈 역사는 또다시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 중간에 있는 라즈톨리예역으로 이어진다. 구소련 스탈린 정부는 1937년 소련의 극동지방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 여명을 하루아침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어 강제로 보낸다.
 
라즈톨리예역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부의 야만적인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 약 17만 명이 이 역을 통해서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하게 된다.
▲ 라즈톨리예역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부의 야만적인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 약 17만 명이 이 역을 통해서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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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당하는 고려인  당시 선조들은 라즈톨리예 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30~40일을 이동하며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 등으로 갔다. 열차의 환경은 아주 열하였으며 기록에 따르면 이동 중에 550여명 이상이 사망 하였다. 사진은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회관에 전시된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삽화
▲ 강제이주 당하는 고려인  당시 선조들은 라즈톨리예 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30~40일을 이동하며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 등으로 갔다. 열차의 환경은 아주 열하였으며 기록에 따르면 이동 중에 550여명 이상이 사망 하였다. 사진은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회관에 전시된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삽화
ⓒ 고려인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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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톨리예역의 상인  과거의 슬픈역사는 묻히고 시골 간이역으로 변한 이곳에 러시안 상인이 간간히 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러시아 차와 과일을 팔고 있다.
▲ 라즈톨리예역의 상인  과거의 슬픈역사는 묻히고 시골 간이역으로 변한 이곳에 러시안 상인이 간간히 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러시아 차와 과일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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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인들은 향했던 곳은 소련 연방의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베크 공화국 등이었다. 그들이 끌려간 이유는 극동지역 일본인의 간첩활동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인과 고려인의 외모가 비슷하기 때문에 구별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기행단이 찾은 이 역은 당시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실려 가던 첫 번째 역이다.

지금은 변변한 역사 건물도 없이 한적한 시골 간이역으로 변해버린 역에 도착한 기행단 일행은 무심히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선조들이 겪었을 설움과 참상에 대하여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라즈돌리예 역 구소련 스탈린 정부는 1937년 소련의 극동지방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 여명을 하루아침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어 강제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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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푼강에 뿌려진 이상설의 못다 이룬 꿈, 기념관으로 되살아나는 최재형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더불어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던 중요한 곳이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으로 안중근이 이곳에서 하얼빈 의거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과 헤이그 특사 이자 대한광복군 대통령 이상설이 활동하다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이상설 유허비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를 방문하여 헌화하고 묵념을 올리고 있다. 유허비 바로 뒤에 보이는 강이 수이푼 강이다.
▲ 이상설 유허비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를 방문하여 헌화하고 묵념을 올리고 있다. 유허비 바로 뒤에 보이는 강이 수이푼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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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은 1907년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지만 뜻을 이루자 못하자 귀국하지 않고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지를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후 19010년 연해주로 이주하여 1914년 연해주 한인 이주 5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하고 무장 투쟁을 계획하다 1917년 4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이상설은 돌아가시기 전에 "조국 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孤魂)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조국광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상설의 유허비는 그의 유언대로 수이푼 강변에 마련되어 있다. 그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1870년 한국 충청북도 진천에서 탄생하여 1917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서거한 한국 독립운동의 지도자 이다. 1907년 7월에는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 회의에 이준, 이위종을 대동하고 사행하여 한국 독립을 주장하다. 이어 연해주에서 성명회와 권업회를 조직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헌산 중 순국하다. 그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이곳 수이푼 강물에 뿌리다.

이 자리에서 김금석(서산중앙고 1) 학생은 '이상설, 국권회복을 외치다'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였다. 그는 이상설의 일대기를 설명하고 "조국 광복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의 그 분의 뜻을 잊지 말자. 수이푼 강에 뿌려진 그의 유해가 강물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 조국을 지켰을 것"이라며 그분의 삶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최재형 생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남아 있는 최재형이 살던 집. 러시아인 소유였던 것을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사들여 기념관으로 개관하기 위하여 한창 리모델링 중에 있었다.
▲ 최재형 생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남아 있는 최재형이 살던 집. 러시아인 소유였던 것을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사들여 기념관으로 개관하기 위하여 한창 리모델링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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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단은 이어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생가를 방문하였다. 최재형은 그동안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기획하고 도와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다.
 
최재형 러시아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이상설이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최재형은 물질적 후원자이며 지주였다. 사진은 고려인문화센터에 전시된 최재형 평전
▲ 최재형 러시아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이상설이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최재형은 물질적 후원자이며 지주였다. 사진은 고려인문화센터에 전시된 최재형 평전
ⓒ 고려인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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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가는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있다. 이동하는 동안 최현서(대천고 1) 학생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였다.

최현서의 발제 내용에 따르면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은 9세 때 극심한 가뭄을 피해 할아버지, 부모와 함께 이곳 연해주로 이주하게 된다.

이후 최재형은 이곳에서 러시아 군인들을 상대로 사업에 성공하여 거부가 된 이후 학교를 짓고 신문을 발행하며 문화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항일단체를 조직하고 비밀리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특히, 안중근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배후에는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최재형이 있었다. 안중근 등이 결성한 구국운동단체 '동의회'를 지원하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사격 훈련을 한 장소도 바로 최재형의 집이었다고 한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 때는 빨치산에 가담하기도 했던 최재형은 1920년 일본이 빨치산 토벌을 빌미로 벌인 이른바 '4월 참변'에서 체포되어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최재형 생가 방문을 마친 기행단은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의 삶과 항일 독립운동사에 대하여 관람하였다. 고려인문화센터는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 건립된 것으로, 1860년대부터 이뤄진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를 비롯해서 독립운동사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고려인문화센터 관람을 마친 기행단 일행은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여 역사기행 최종 세미나를 진행하고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로써 학생들은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연해주의 한인들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 한인들의 사진
▲ 연해주의 한인들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 한인들의 사진
ⓒ 고려인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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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의 한인들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 한인들의 사진
▲ 연해주의 한인들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 한인들의 사진
ⓒ 고려인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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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하였다.
▲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2018년 8월 5일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이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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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