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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인문학 기행단  2018. 7. 27. ~ 8. 6. 인천-심양-단동-집안-백두산-연변-훈춘-블라디보스톡 등, 중국과 러시다 일대 민족의 발자취를 찾는 기행을 을 하고 돌아왔다.
▲ 2018 인문학 기행단  2018. 7. 27. ~ 8. 6. 인천-심양-단동-집안-백두산-연변-훈춘-블라디보스톡 등, 중국과 러시다 일대 민족의 발자취를 찾는 기행을 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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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를 끝으로 2018년 7월말 충남의 고등학생 110명이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골, 러시아 연해주 일대 항일 유적지와 민족 역사를 찾는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을 마감한다.

지난 여름 충남의 학생들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2천리, 북으로 1천리 따라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여정을 통해 통일 한국을 이끌어갈 미래 주역으로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6일 이날 통일역사기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학생들은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예술단인 듯, 노동자인 듯한 100여 명의 북한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만났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평양으로가는 고려항공의 출국수속을 밟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은 쭈뼛쭈뼛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만 볼 뿐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는 못했다. 언젠가 우리들도 자유롭게 왕래하고 서로의 벽을 허물 날이 오길 기대해 보는 귀국길이었다.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 평화통일단  기행단 일행이 2018년 8월 6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 평화통일단  기행단 일행이 2018년 8월 6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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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가는 사람들  2018년 8월 6일 인문학 기행단이 귀국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만난 북한 동포들. 이날 100여명의 북한 사람들이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에 탑승하기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 평양으로가는 사람들  2018년 8월 6일 인문학 기행단이 귀국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만난 북한 동포들. 이날 100여명의 북한 사람들이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에 탑승하기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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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정을 목천고등학교 장은경(1학년) 학생의 설정사진과 인솔교사로 참여했던 온양여자고등학교 선혜란 교사(역사)의 소감문을 소개하며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기행 평화통일단'의 역사기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독자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한 장의 사진에 담은 일정  천안 목천고등학교 장은경 학생이 설정 사진으로 인문학 기행단의 코스별 일정을 기록하였다. 이를 본인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요녕성박물관-단동의 단교-오녀산성-국내성-장군총-백두산서파천지-백산수공장-장백폭포-백두산북파천지-용정용드레우물-윤동주생가-명동학교-봉오동항일전적비-도문두만강국경-두만강훈춘-방천3국점-단지동맹비-시베리아횡단철도시발점-신한촌기념비-라즈톨리예역-최재형생가-블라디보스톡항만-혁명광장-러시아정교회사원-극동연방대학교
▲ 한 장의 사진에 담은 일정  천안 목천고등학교 장은경 학생이 설정 사진으로 인문학 기행단의 코스별 일정을 기록하였다. 이를 본인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요녕성박물관-단동의 단교-오녀산성-국내성-장군총-백두산서파천지-백산수공장-장백폭포-백두산북파천지-용정용드레우물-윤동주생가-명동학교-봉오동항일전적비-도문두만강국경-두만강훈춘-방천3국점-단지동맹비-시베리아횡단철도시발점-신한촌기념비-라즈톨리예역-최재형생가-블라디보스톡항만-혁명광장-러시아정교회사원-극동연방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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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기행 후기] 인문학, 삶에 질문을 던지다
 
선혜란  온양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 이번 인문학 기행단 인솔교사로 참여했다.
▲ 선혜란  온양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 이번 인문학 기행단 인솔교사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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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유례없는 더위로 들끓던 여름, 우리는 땅과 하늘이 맞붙은 만주 벌판으로 향했다.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캠프를 위해 떠난 길이었다. 역사교류, 독립운동, 평화통일을 내걸고 구성된 3개 단체 중 학생 31명, 지도교사 5명, 교육청 지원팀 2명, 가이드 1명, 현지 가이드 1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2단의 주제는 독립운동이었다.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상들의 넋이 서리고 삶이 배어있는 곳. 그 무대가 되었던 간도를 비롯한 만주, 연해주는 과거 부여를 비롯한 고구려·발해가 활동했던 곳이었으므로 캠프의 세부 내용은 자연스레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해외 이주민의 삶,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이 되었다.

비행기가 도착한 다롄[大連]의 뤼순[旅順]형무소를 지나 하얼빈[哈爾濱],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톡과 크라스키노[연추(煙秋)]를 잇는 여정은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역추적하는 길이었다. 아울러 그를 지원한 최재형의 흔적과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까지 머물렀던 터전, 이상설이나 김약연 등 수많은 조선인들이 독립투쟁의 밑바탕을 마련하고 윤동주와 송몽규가 민족교육의 세례를 받았던 현장, 조국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이들이 조상의 옛 땅이라며 의지했을 고구려·발해의 유적들이 우리의 행로에서 교차했다.

인간의 근원을 궁구한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인문학(人文學)이 캠프의 큰 테마였으니, 삶이 펼쳐진 땅을 살피고 그 위에 켜켜이 역사를 쌓아올린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 스스로 답사 지역의 지리·역사·사상·문학 등을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가이드 내용을 준비하면서 여러 책과 검색 자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인문학이 과연 책 속에만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열흘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낯선 환경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불만을 말하거나 고된 일정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만으로 배움이 깊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길 위에서 인문학을 찾았을까?

캠프 중 실시한 세미나에서 만약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 외교, 무장투쟁, 의열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다른 여러 학생들은 저항하고 싶지만 일제의 고문이나 불이익이 두려워 가족과 평범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권리를 누리는 평범한 삶은 일제강점기가 지속되면서 점점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말할 것 없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다수 조선인 농민과 노동자에게는 매우 어려웠다. 생존권을 위한 싸움은 곧 일제와 그를 등에 업은 세력에 맞서는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한 까닭이 바로 여러 학생이 말했던 평범한 행복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범함을 넘어 권력과 부가 보장되었던 이상설, 이회영, 최재형 등은 왜 자기 이익만 돌보지 않았을까?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은 무장한 군인들에게 저항한 이유가 자신을 강렬하게 압도하던 '양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도를 넘은 일제의 억압에 양심이 끓어오른 사람들이 독립투쟁에 나섰다.

윤동주가 되뇌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 입에 맴돈 말 뿐이 아니었고, 일제에 협력하면 권세와 부가 보장되던 사회 지도층의 지식이 머리에 고인 생각으로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생에서 인문학을 실천하고 몸으로 살아냈던 이들이 아닐까?

인문학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양심을 작동시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양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문학이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던 현장을 찾아 길 위를 오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셈이다.

빼앗긴 봄을 되찾기를 갈망하며 독립투쟁에 나섰던 선열의 행적을 좇은 열흘이 꿈 속 같다. 그들이 고구려·발해의 터전에 마음 기대며 푸른 웃음, 푸른 설움 속에서 다졌던 독립 의지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제 독립운동가들이 삶을 대했던 자세는 미래를 일구어 갈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삶에 질문을 던지는 힘, 인문학의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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