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몽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한국에 시집온 지 16년째입니다. 도서관과 인터넷으로 몽골을 검색해봤지만 이렇게 예쁜 화보와 글로 몽골을 소개한 책을 본적이 없어요."

신간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 책을 받아든 히시게의 얘기다. 그녀는 여수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근무한다. 책속에 자신의 사진과 이야기가 나온 델게르마는 "아이! 좋아라! 오늘 저녁에 책을 안고 자야지!"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몽골역사를 모르고 살았다가 기자님으로부터 몽골역사를 듣고 창피하기고 하고 몽골역사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말한 그녀는 한국 생활 17년차이다. 책속에는 델게르마가 태어난 울리아스타이시 사진이 실려 있다. 울리아스타이는 러시아와 청나라뿐만 아니라 칭기즈칸에게도 강하게 저항했던 훈족의 본산이다.

한국에 시집온 지 16년째인 바야르가 미니고비 사막 사진을 보다가 "여기도 갔었어요? 우리 고향인데"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몽골에서 여수로 시집 온 여성들에게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책을 선물했다.  왼쪽부터 히시게, 바야르, 델 게르마  . 이들 모두는 한국에 시집 온지 16년 이상이 돼 한국말이 유창하다.
 몽골에서 여수로 시집 온 여성들에게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책을 선물했다. 왼쪽부터 히시게, 바야르, 델 게르마 . 이들 모두는 한국에 시집 온지 16년 이상이 돼 한국말이 유창하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나는 6살 때부터 양과 염소를 몰고 미니고비 사막과 초원으로 나갔어요. 졸리면 바위틈에서 한숨자고 일어났죠. 시계가 없으니까 초원에 막대기를 세워 해그림자를 보며 집에 돌아갈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는 바구니에 아르갈(소똥)을 가득 주워가지고 돌아가 연료로 썼지요"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어떻게 탄생했나?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고조선유적답사회원들이 몽골지역 오지를 돌아보며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다. 사진전문가들이 동행해 촬영한 사진과 아름다운 글들을 실은 책으로 몽골화보집으로 손색이 없다.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고조선유적답사회원들이 몽골지역 오지를 돌아보며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다. 사진전문가들이 동행해 촬영한 사진과 아름다운 글들을 실은 책으로 몽골화보집으로 손색이 없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5월 필자의 지인인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가 "제 필생사업 중 하나가 민족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며 몽골여행에 동행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고조선답사단을 이끌고 세 차례나 몽골을 다녀왔다. 그가 답사단을 이끌고 몽골을 돌아본 거리는 9,000㎞에 달한다.

깃발만 보고 가이드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필자에게 안 대표는 "비포장길과 사막, 진창길을 헤매다 텐트를 치기도 하고 게르에서도 자는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몽골로 떠나기 전 필자가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은 '징기스칸'이 전부였다.

6월 17일 드디어 몽골로 떠나는 날이다. 몽골서부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인천공항에 모인 고조선유적답사단을 세어보니 28명이다. 비행기로 3시간을 날아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아는 상식을 바꿔야했다. '징기스칸'이 아니라 '칭기즈칸'이다. 다행인 것은 지긋지긋한 더위를 피했다는 것.

일행이 공항에 내려 공동짐을 분배하고 밤 12시가 넘어 6대의 4륜 구동차량에 분승해 도착한 곳은 미니고비다. 싸늘한 아침 공기 때문에 잠바를 걸친 일행들이 버너를 꺼내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인근 목장에서 낙타타기 체험을 마친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옛 몽골 수도였던 카라코룸이다.

카라코룸으로 가는 길 도로주변 나지막한 언덕에는 몽골인들의 이정표인 오보만 보인다. 보이는 것이라곤 소, 말, 양, 염소, 야크뿐이다. 가끔씩 말을 탄 목장주인과 게르도 보였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과 대초원에 가슴이 뻥 뚫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파란하늘과 끝없는 초원 모습에 감탄하던 일행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몽골 오지를 탐험한 기록물
 

잠을 깨운 건 울퉁불퉁한 노면 위를 달리는 차량이 온몸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길도 없는 초원에 흙먼지를 날리며 앞차가 달리면 뒤따르는 차는 앞이 안보이기 때문에 앞 차량의 바퀴자국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며 달렸다.

달리다 적석총과 판석묘가 보이면 차를 세워 자로 재고 돌에 새겨진 방위각을 측정해 기록했다.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길 가운데 수십만개의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 군락들. 칭기즈칸이 유럽정벌을 위해 떠난 초원길에서 혹시나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돌에 새겨진 무늬들을 찾아다녔다. 일행은 도굴 흔적과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무덤에 안타까워했다.

험한 초원길과 사막은 차량을 수시로 고장냈다. 차량이 10여 번 고장날 때마다 몽골 운전사들은 잘도 고쳤다. 차가 고장나 뒤따르던 차량이 올 때까지 도로변에서 대초원을 살피던 안동립 대장이 멀리 떨어진 적석총 앞에 서있는 돌비석을 발견해 찾아간 것은 사슴돌. 이번 답사단이 낳은 최고의 공적(?)이다.

필자가 몽골로 떠나기 전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의 안내를 받아 임실 소충사를 찾아갔을 때 28개 비석에 새겨진 별자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동양천문학이 이렇게 뛰어났던가? 그동안 서양문명의 우수성만 인정하고 동양문명은 얕보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몽골대초원 적석총 앞에 세워진 사슴돌로 28수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고조선유적답사단이 발견한 최대의 공적(?)으로 학계에서 연구 중이다.
 몽골대초원 적석총 앞에 세워진 사슴돌로 28수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고조선유적답사단이 발견한 최대의 공적(?)으로 학계에서 연구 중이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사슴돌에 새겨진 문양들로 몽골인들의 생활양식을 추측해볼 중요한 사료이다.  맨 윗부분에 28수 별자리가 보인다
 사슴돌에 새겨진 문양들로 몽골인들의 생활양식을 추측해볼 중요한 사료이다. 맨 윗부분에 28수 별자리가 보인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사슴돌 비석 상단에 반쯤 패인 구멍이 열 지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일행이 탁본을 떠보니 28수 별자리다. 임실 항일의병장들을 모신 소충사 사당에서 본 28개 별자리와 똑같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니! 몽골인들의 천문학에 대한 지식과 우리의 천문학 지식이 똑같단 말인가?

한국어는 우랄알타이 어족이라고 배웠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계획서를 살펴보니 알타이산에서 숙박하고 알타이산을 등정한다는 계획이 들어있었다. 알타이산 등정과 알타이지역 답사 계획은 필자를 유혹한 것 중 하나다.

알타이라는 뜻은 황금이라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경주 김(金)씨의 뿌리가 알타이란다. 험한 오지라 차가 미끄러지고 고장나기를 몇 번이나 하며 알타이 산 캠프에 도착하니 잘 곳이 없다. 일행은 백두산만큼 높은 곳에 텐트를 치고 잠잘 준비를 했다. 잠잘 곳이 없다는 담당자의 말에 화를 내기도 하고 사정을 해 간신히 얻어낸 골방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잤다.

밤 11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든 일행 중 몇 명이 새벽 4시에 알타이산 정상 등정을 가자며 깨운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침낭속에서 빼꼼하게 목을 빼들고 고민에 빠졌다. 저들을 따라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 가자! 잠은 이동 중인 차에서 자도 된다. 알타이는 내 인생에 다시는 못 올 곳이다. 떠나자!"고 결심하며 프래시를 들고 알타이산을 오르니 컴컴하던 세상이 밝아지고 6시쯤 해가 떠올랐다. 산정상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타이산에 해가 떠오르자 황금빛으로 빛났다. 알타이는 몽골어로 '황금'이라는 뜻이다. 경주 김씨의 성 '金'은 '황금'이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알타이산에 해가 떠오르자 황금빛으로 빛났다. 알타이는 몽골어로 "황금"이라는 뜻이다. 경주 김씨의 성 "金"은 "황금"이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바로 저거다! 황금산! 정말 경주 김(金)씨의 뿌리가 여기가 아닐까? 동행했던 경주 김씨들은 알타이 산에서 천제를 지냈다. 밤이 늦으면 소똥, 말똥, 염소똥, 양똥이 널린 초원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었다. 일행은 우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박물관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한반도는 고려 때 원나라로부터 100여 년간 지배받았던 역사가 있다. 당시 20만명의 처녀가 원나라로 끌려갔다. 몽골인들은 아직도 한국을 '어머니의 나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물론 수많은 몽골처녀들이 고려로 시집왔다. 그래서인지 내 엉덩이에는 파란색 몽고반점이 남아있다. 책은 이러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답사단이 방문했던 지역은 지도제작 전문가인 안동립 대표가 좌표까지 기록해 놨다.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몽골의 유명 관광지를 안내하는 관광책자가 아니다. 힘든 여정과 고행을 기록한 몽골 안내서이다. '솔롱고'는 몽골어로 무지개다. 몽골인들은 한반도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답사단속에는 사진촬영에 취미가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답사단 중 한 분인 신익재씨는 출판전문가다. 신익재씨는 그분들의 사진을 모아 아름다운 화보집처럼 책을 편집했다. 주옥같은 글들도 있다. 뒷장에는 몽골여행시 알아두어야 할 상식과 음식도 적혀있다. 책을 살펴본 히시게씨의 얘기다.

"몽골인들은 자연과 신을 존중합니다. 한국인들이 우리의 선조가 묻힌 적석총 앞에서 천제를 지내며 절하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러시아 지배를 받았던 1980년대까지 몽골인들은 러시아 역사만 배웠기 때문에 몽골역사를 잘 몰라요. 몽골 역사를 배운 건 1990년대 독립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우리 몽골인보다 몽골역사를 더 공부하고 몽골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글들이 기록된 책이 너무나 좋아요"
 

신간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은 몽골의 역사와 문화 관광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신간안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