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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2년 앞둔 노동자입니다.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장에서는 늙은 노동자로 통합니다. 요즘 사회적 화두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가 꼰대가 인지도 모릅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우리 세대 모두 그랬던 것처럼 최루탄, 지랄탄이 춤추던 거리에서 군사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제가 입사한 1984년 서울지하철공사는 회사가 아니라 병영 그 자체였습니다. 군대식 상명하복, 상급자들의 무차별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사장은 쌀밥, 보리밥이란 표현으로 본사 근무자와 현장 근무자를 차별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조합원 박정규
▲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조합원 박정규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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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노조 설립, 30년을 되돌아보다

1987년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현장 근무자들은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차별철폐, 직제개편을 외쳤습니다. 일반직, 기능직, 고용직, 일용잡급직, 경비직, 청부직(청소부), 매점직, 고용직 중에서도 공채를 거쳐 입사한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 모두 처한 조건과 권리가 달랐습니다.

다름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이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자 했습니다. 해고와 구속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모두 하나 되는 싸움을 시작했고 이내 직제를 단일화시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매점에서 빵 팔던 직원이 역장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청소하던 직원이 더 빨리 진급해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비로 있던 직원이 부역장이 되었을 때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된 매점직 직원과 30여 년을 같이 근무하고 있지만, 업무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청부직, 경비직이 정규직으로 함께 근무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분들도 저와 함께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비마다 어깨 걸고 싸움의 현장에 함께 있던 분들입니다. 평생 한 직장에 있음을 감사해했습니다. 병든 노부모 걱정, 자식들 걱정 등 30여 년 경조사를 챙기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구분하고 편 가르기를 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요?

나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나보다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불완전함을 바라보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0년 전 세상보다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나뉘어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 직장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직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시민씨도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내는 변화를 '진보'라고 했습니다. 공감에 기초한 공통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서울지하철노조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정규 전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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