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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이후 가장 느리게 변하고 있는 것이 정치다. 정치 변화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회 구성 규칙을 바꾸는 일, 즉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노회찬의 삶의 자취를 밟으며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 기자 말
 
최고위 주재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진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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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심 그대로 국회'를 이룰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돼왔고, 민주당 당론이자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다. '민심 그대로 국회'의 '민심'이 '민주당 대표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논란이 일자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이해찬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정개특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선거제도 논의에 참여할 것이고, 국민의 민의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 마련에 적극 환영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촛불혁명의 요구는 무엇보다 '정치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정치개혁의 선두에 설 경우 한국 정치 일대 혁신의 주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하다못해 최근 7주 연속 하락세인 지지율도 반등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은 민주당을, 무엇보다 '정치를 바꾸라'고 요구했던 촛불정신을 배반한 세력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선거제도가 정치의 변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한국 정치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당장 눈앞의 당리당략에 매몰될 일이 아니라, 선거제도가 정치를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 확인하고 이제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정치 변화를 위해 바뀌어야 할 두 가지

촛불혁명이 정치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두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는 여당, 또 하나는 야당.

여당은 조기대선으로 바꿨으니, 남은 건 야당, 그중에서도 제1야당을 바꾸는 일이다. 노회찬 대표도 생전에 '제1야당 교체'를 쉼 없이 주장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한민국 정치가 '여당 교체 체제'를 갖추는데 30년이 넘게 걸렸었고, '제1야당 교체 체제'는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이런 '선수 교체 시스템'이 시민혁명이 발생하고 나서야 겨우 한 번씩 생겼다. 시민혁명이 항상 그런 시스템 변경을 보장한 것도 아니다. 한 번은 반혁명으로 제도가 오히려 후퇴했고 또 한 번은 미완의 혁명으로 제도 개선은 반쯤만 성공했었다.

따져보자. 1960년 4.19혁명,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7년 촛불혁명까지 세 번의 시민 혁명 사이에 정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 중 특히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뀌었나.
  
1당 독재 맞춤형 선거제도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리고 있다.
 박정희 동상. 사진은 2017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 당시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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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4.19혁명 후 1년 만에 벌어진 5.16쿠데타는 1당 독재의 정치시스템을 구축했다. 주목할 것은 선거제도도 '1당 독재 맞춤형'으로 갖춰졌다는 사실인데, 주로 비례의석이 '여당 몰아주기'에 활용됐다.

쿠데타 후 바뀐 선거제도는 얼토당토 않았다. 득표율 1등 당이 60%를 얻으면 비례의석도 60% 가져가는 구조였는데, 문제는 득표율 1등 당이 50% 미만을 얻을 경우에도 비례 의석은 최소한 50%는 무조건 주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비례의원의 절반은 일단 공화당이 먹고 시작하는 선거가 바로 이때의 선거였다.

선거제도는 유신을 거치면서 더욱 나빠졌다. 이번엔 비례의원 전체를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그 유명한 '유정회'다. 직전 선거에서 전체 의원의 1/4이었던 비례의원은 1/3로 늘었고, 이들은 원리상 비례의원의 '비례'의 성격도 '의원'의 성격도 갖추지 못한 임명직 공무원이었다. 유정회는 '뜨거운 얼음'만큼이나 서프라이즈한 존재였다.

이런 선거 제도 덕에 쿠데타 후 근 20년간 다섯 번의 총선에서 박정희의 공화당은 제1야당보다 겨우 4.4%P 앞서 득표했을 때에도 의석수는 12% 가깝게 앞섰고, 어떤 땐 득표율 차 17.9%P로 의석수 차이를 47%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1978년 신민당에게 1.1%P 뒤졌을 때조차 의석수는 35% 넘게 앞설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의석 도둑질'이라 할 만하다. 박정희는 정권을 찬탈했을 뿐 아니라 20년 가까이 국회의석도 도둑질했던 것이다. 독재는 선거제도를 바꾸었고, 그 선거제도가 독재를 유지했다.

전두환 정권이 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례의원이 부활되긴 했으나, 제1당에게 비례의석의 2/3를 무조건 주는 식으로 선거제도가 바뀌었다. 이 덕에 전두환의 당은 5공화국 동안 두 번 치러진 선거에서 각각 14%P, 6%P의 득표율 차에도 불구하고 의석수는 25.4%, 29.3% 앞섰다.

요컨대, 1987년까지 선거제도는 언제나 여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 비례의석은 여당에게 무조건 50%를, 그 후엔 전부를, 나중엔 2/3가 배정됐다. 민심을 심각하게 왜곡한 선거제도는 독재유지의 결정적 장치였다.

여당 교체는 이런 체제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양당체제 맞춤형 선거제도
 
정족수 무산으로 열리지 못한 국회 본회의 15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불참으로 파행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불참으로 파행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를 떠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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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은 많은 걸 바꿔놨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였는데, '비례의원 여당 몰아주기'는 끝이 났고, 헌정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는 지역구 선거제도가 정치체제를 결정짓는 변수로 등장했다. 1등만 뽑는 소선거구제는 자연스럽게 양당체제의 강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해졌다. 항쟁 후 3년이 지난 1990년 3당 합당으로 현재 자유한국당의 조상인 민주자유당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 정치는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격돌로 점철됐다. 모든 국회의원 선거에서 양당은 대체로 75% 이상 많게는 95% 가까이 의석을 석권했다.

그 결과 30년간, 하늘을 해와 달이 나눠 차지하듯이 정치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분했다. 늘 생겼다 없어지지만, 절대 없어지지 않는 게 양당이었다.

제3세력의 성장은 항상 선거제도의 벽에 가로 막혔다. 거대 양당은 대체로 득표율보다는 많은 의석수를 챙겼고, 진보정당은 득표율보다 적은 의석수를 가져갔다. 경제에서 대기업이 하는 짓을 양당이 했고, 진보정당은 중소기업이 당하는 일을 당했다.

결국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는 '의석 도둑질의 역사'다.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는 상식에 비춰봤을 때, 그랬을 경우에만 대의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동안 한국 정치는 대의민주주의를 배반해왔다.

이 시스템에서 제1야당 교체는 불가능했다.
  
시민 혁명 후 3년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2016년 12월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 당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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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이후 30년 동안 실질적 1당 독재 하에서 민주주의는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은 양당 체제 하에서 정치 영역에서의 민주주의 확대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일이 잘 된다면, 2017년 촛불혁명은 다당제 하에서 정치를 넘어 사회·경제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진전은 선거제도의 변화와 함께 가능했고, 또 가능할 일이다.

항쟁이 벌어지고 나면, 그 분위기가 천년만년 이어질 순 없으니, 항쟁의 정신을 제도로 만들고, 그 제도를 유지·발전시킬 대리자를 뽑는 작업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한국에선 그때마다 선거제도가 바뀌고, 그후 30년 갈 정당들의 '질서'가 자리를 잡는 과정이 동반했다. 그게 보통 3년 내에 정리되는 게 한국 정치였다. 이게 무슨 과학적인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패턴이 그랬다.

2017년 이후 3년이 되는 시점인 2020년 총선에, 앞선 두 번의 시민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다른 정당질서가 만들어질 것인가.

관전자에겐 흥미로운 게임이고, 당사자들에겐 다시없을 피 말리는 경기다. 그런데 이 경기에선 관전자 대부분, 그러니까 국민 모두가 당사자다.

만약 3차 시민혁명의 후속 작업답게, 2020년 총선이 완전히 다른 정당질서를 태동시키는 선거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선거제도를 못 바꾼다면 글쎄, 강산이 세 번 바뀌기를 더 기다려야 한다.
  
제1야당 교체 
 
 20일 오전 국회의사당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고용세습, 사립유치원 국정조사 수용’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은 지난 20일 오전 국회의사당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고용세습, 사립유치원 국정조사 수용’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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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을 바꾸자"던 노회찬 대표의 주장은 사실 30년의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노회찬 대표는 생전에 당장의 과제로 제1야당 교체를 염원했다. 여당은 바꾸었으니 제1야당도 바꿔야 한다. 제1당이 자유한국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선거제도 변경이 '공천 및 당선 여부'와 직결되는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당장 2년 후의 미래를 이번 정개특위 논의 결과가 결정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연동형비례대표제 반대 발언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다.

30년 갈 체제를 2년 미만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결정하는 구조는 매우 문제다. 하루살이에게 한 달 후의 계획을 부탁한 꼴이니 말이다.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2004년 총선에서 노회찬 대표는 TV토론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고, 불판교체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시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정치개혁특위는 12월이면 끝난다. 앞으로 한 달 남았다. 이 한 달이 노회찬의 꿈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노회찬재단(준) 설립추진
노회찬재단(가칭) 설립 실행위원회는 지난 10월 8일부터 준비위원 구성 및 시민추진위원 모집을 시작했다. 시민추진위원 참여는 노회찬재단 준비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hcroh.org)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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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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