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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71〉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 조선 18세기. 높이 21.1cm. 보물 제1058호. 청화백자 초화문표형 병(표형(瓢形 표주박표·모양형)은 호리병박을 말한다), 백자 청화난초문 표주박모양 병, 백자 청화 꽃무늬조롱박모양 병이라고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72〉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cm. 보물 제791호. 덕원갤러리.
 〈사진71〉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 조선 18세기. 높이 21.1cm. 보물 제1058호. 청화백자 초화문표형 병(표형(瓢形 표주박표·모양형)은 호리병박을 말한다), 백자 청화난초문 표주박모양 병, 백자 청화 꽃무늬조롱박모양 병이라고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72〉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cm. 보물 제791호. 덕원갤러리.
ⓒ 국립중앙박물관·덕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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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와 암사동 신석기인의 천문(天門) 세계관
 

〈사진72〉를 보면, 가운데에 두 겹 원이 있고, 덩굴손 같은 선이 세 가닥 나오고 있다. 그리고 테두리 세 겹 원에서 풀꽃 잎이 세 군데서 나온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풀꽃을 모란으로 보아 왔지만, 알다시피 모란은 '덩굴손'(오른쪽 위 풀꽃 잎)이 없고 잎 모양도 위 그릇 무늬와 다르다.

이 병은 조선 백자인데도 고려시대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런 모양 병을 흔히 편병(扁甁 넓적할편·병병)·납작병이라 하고, 자라를 닮아 '자라병'이라 한다. 15∼16세기 청과 조선에서 이런 모양 병이 유행했는데, 그 내력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나는 그 기원을 막새기와 수막새, 그 가운데서도 천문(天問)을 표현한 수막새 기와(〈사진79〉)와 《육서통(六書通)》(1661)의 천(天) 자(〈사진78〉)에서 찾고 싶다.

〈사진71〉은 청화백자인데, 칠보와 난초를 그렸다고 해서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이라 한다.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낸 도록 설명글을 보면 위쪽 호리병 몸통에 그린 무늬를 엽전무늬 '전보(錢寶 돈전·보배보)'라 밝혀 놓고 있다. 그러니까 일곱 가지 길상무늬 가운데 하나인 '돈' 무늬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전보가 엽전을 그린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무늬는 전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칠보(七寶)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칠보는 불교 경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나 경전마다 일곱 가지 보배를 달리 들고 있다. 또 공예에서 쓰는 칠보가 있는데, 이는 또 불교의 칠보 개념하고는 다르다. 이렇듯 우리 문양에서 칠보 개념은 아주 복잡하고 뚜렷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는 형편이다.

나는 이 무늬를 엽전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거기에서 나오는 구름과 사방 동서남북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 원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무늬는 〈사진72〉와 마찬가지로 구름이 나오는 천문(天門)이고, 천문 속에 있는 네 호(弧 활호)는 신석기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 동경에서 볼 수 있는 반타원형 구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 팔각 몸통에 그린 것은 난초인데, 이것을 난으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병에서 위 둥근 몸통 호리병은 하늘을 뜻하고, 아래 팔각 몸통은 팔방(八方) 여덟 들판 세상을 뜻한다.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

보주(寶珠)와 영기문(靈氣文)의 기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사진72〉의 설명글을 보면, 가운데 원을 '이중 원'으로 보고 거기서 덩굴무늬 '당초문'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 무늬는 단지 이중 원이 아니고, 또 단순한 덩굴무늬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암사동 신석기인이 빗살무늬토기에 새긴 '천문(天門)'에서 시작된 무늬로 볼 수 있다. 위 두 그릇에서 핵심 무늬는 원 무늬이다. 이 두 원 무늬가 품고 있는 뜻은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사진72〉의 무늬가 〈사진71〉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이 〈사진72〉를 보면 어떻게 보실까. 선생의 문양 이론에 따르면, 가운데 동그란 원은 '보주(寶珠 보배보·구슬주)', 세 가닥 덩굴손은 '영험한 기운 영기문(靈氣文)'이고, 이 보주와 영기문에서 이 세상 '만물'(이 그릇에서는 풀꽃 잎으로 표현했다)이 태어난다는 '보주·영기화생(寶珠·靈氣化生)'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보주와 영기문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 그랬을 때 〈사진71〉의 가운데 큰 천문(天門) 둘레 동서남북에 있는 작은 원(천문)의 정체와 이 천문에서 나오는 구름도 비로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빗살무늬토기의 천문(天門) 〈사진73〉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기원전 6000년∼4000년)에서 나온 새김무늬토기 조각 그림. 〈사진74〉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기원전 3000년)에서 나온 새김무늬토기. 북한 사학계는 빗살무늬라 하지 않고 ‘새김무늬’라 한다.
▲ 북한 빗살무늬토기의 천문(天門) 〈사진73〉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기원전 6000년∼4000년)에서 나온 새김무늬토기 조각 그림. 〈사진74〉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기원전 3000년)에서 나온 새김무늬토기. 북한 사학계는 빗살무늬라 하지 않고 ‘새김무늬’라 한다.
ⓒ 조선유적유물도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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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궁산, 지탑리, 능곡, 까치산패총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올라온 서울 암사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에서 '하늘 속 물'에 낸 통로(天門)를 볼 수 있는 그릇이나 조각은 156점이다. 이것은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부산 동삼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179장에서는 단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경기도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203장에서는 1점, 인천광역시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533장에서는 6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3점은 암사동 것이었다. 경기와 인천에서 나온 그릇 조각에는 암사동 것이 간간이 섞여 있다. 암사동 것은 진한 밤빛에 무늬가 섬세해 다른 것 사이에 있으면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북한의 <조선유적유물도감1>(1988)을 살펴보니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에 두 점(〈사진73〉),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에 넉 점(〈사진74〉)이 있었다. 또 경기도 시흥 능곡동 선사유적(기원전 4000년)과 인천 대연평도 까치산패총(기원전 3000년)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에서도 몇 점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75〉 기(?)의 갑골문. 〈사진76〉 기(?)의 금문. 〈사진77〉 육서통의 기(?). 중국 옛 한자를 보면 동그라미 속에 점을 찍은 글자가 자주 보인다. 이것을 보통 해(日)로 읽지만, 그렇게 읽으면 글자의 뜻을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해를 천문과 구별하기 위해 동그라미 위에 가로 선(一, 이 선은 경계(파란 하늘)를 뜻한다) 하나를 더 그려놓기도 한다. 기(?)의 전서가 천문을 x축에서 본 것이라면 용(龍)의 갑골과 금문은 천문(용의 기원)을 y축에서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천문의 형상을 알면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금문과 갑골 글자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사진75〉 기(?)의 갑골문. 〈사진76〉 기(?)의 금문. 〈사진77〉 육서통의 기(?). 중국 옛 한자를 보면 동그라미 속에 점을 찍은 글자가 자주 보인다. 이것을 보통 해(日)로 읽지만, 그렇게 읽으면 글자의 뜻을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해를 천문과 구별하기 위해 동그라미 위에 가로 선(一, 이 선은 경계(파란 하늘)를 뜻한다) 하나를 더 그려놓기도 한다. 기(?)의 전서가 천문을 x축에서 본 것이라면 용(龍)의 갑골과 금문은 천문(용의 기원)을 y축에서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천문의 형상을 알면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금문과 갑골 글자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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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신석기인의 천문과 한자 기(气)

암사동 신석기인이 '하늘 속'에 낸 통로는 구름이 나오는 하늘의 입(天口)이고(〈사진73〉 참조), 이 구멍은 동양의 기(氣) 사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기(氣)는 원래 기(气)에서 왔다. 기(气)의 갑골문(〈사진75〉)을 보면 일(一) 자 모양 선 석 줄이 층층이 있다. 새털구름을 본뜬 것이다. 새털구름은 권운(卷雲), 털구름이라 하는데 가장 높이 떠 있는 구름이다.

쌘비구름(적란운)의 꼭대기에서 떨어져 나온 구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문(〈사진76〉)에서는 삼(三)과 구별하기 위해 맨 위, 맨 아래 선을 위아래로 구부린다. 육서통(〈사진77〉)을 보면 갑골·금문과는 아주 달라지는데, 구름이 천문(天門, 天口)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사진72〉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과 〈사진79〉 고구려 수막새 기와에서 볼 수 있는 천문과 같다.
 
 〈사진78〉 중국 청나라 초 민제급이 편찬한 전각 글자 《육서통(六書通)》(1661)의 천(天) 자. 〈사진79〉 고구려 인동문 와당. 중국 길림성 집안. 지름 15.3cm. 경기도박물관. 〈사진80〉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 조선 15세기. 보물 제1456호. 높이 21.8cm. 호림박물관
 〈사진78〉 중국 청나라 초 민제급이 편찬한 전각 글자 《육서통(六書通)》(1661)의 천(天) 자. 〈사진79〉 고구려 인동문 와당. 중국 길림성 집안. 지름 15.3cm. 경기도박물관. 〈사진80〉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 조선 15세기. 보물 제1456호. 높이 21.8cm. 호림박물관
ⓒ 경기도박물관·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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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의 기원 천문

그림 글자 갑골문은 결코 쉬운 글자가 아니다. 어떤 글자의 갑골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뒤 나온 금문, 전서, 육서통을 같이 봐야 한다. 나는 주로 금문과 육서통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특히 육서통은 어떤 한자의 처음과 끝을 뚜렷하게 보여줄 때가 많다.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story)와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그 세계관은 중국과 한반도 신석기인이 상상했던 세계관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눈여겨봐야 한다.

〈사진78〉은 육서통의 천(天) 자 가운데 하나다. 가장 위 천문①은 옆(y축)에서 본 하늘과 천문이다. 이것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릇에 새겼던 하늘·천문 무늬와 같다(〈사진73, 81〉 참조).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이다(〈사진73〉. '삼각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을 참조 바람). 천문②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x축에서) 본 하늘 속 천문이다.

그 아래 구름①은 다른 구름과 모양이 좀 다른데, 이것은 운(雲)의 본 글자 운(云 구름운) 갑골문에서 온 것이다. 운(云)은 본래 '구름'을 뜻했으나 그 뜻이 없어지고 '말할 운'으로 쓰이자 나중에 그 위에 우(雨)를 더해 '구름'의 본뜻을 살린 글자가 운(雲)이다. 천문③은 〈사진77〉 육서통의 기(气)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모양은 조선의 분청자와 백자 편병, 민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고기'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사진78〉의 육서통 천(天) 자는 〈사진79〉 편병과 그 모습이 비슷하기까지 하다.

〈사진79〉 고구려 수막새 기와는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무늬를 '인동문'으로 읽지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천문(天門)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진80〉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은 한 중앙에 '태극'이 새겨져 있다. 그 둘레는 이 태극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오는 구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 태극기의 태극은 고구려까지 내려가고(물론 백제와 신라에도 있다), 다시 기(气)의 육서통까지, 거기서 다시 저 멀리 암사동 신석기인이 새긴 빗살무늬토기의 '천문(天門)'에까지 가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태극의 기원은 '파형동기'와 '파형문'을 다룰 때 아주 자세히 다룰 것이다.

허신의 <설문해자>와 기(气)

기(气)는 나중에 농경의 영향으로 그 아래에 쌀미(米)가 더해져 기(氣)가 된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기(气)를 "구름의 기운(雲气), 구름이 일어날 때 모습(象雲起之皃)"이라고만 아주 간단히 기록한다. 허신의 기(气) 자 정리 구절을 읽으면 약간 허탈하기까지 하다.

고대 중국과 한국인에게 기(气) 사상은 가장 중요한 사상이고 밑바탕이다. 그런데도 그가 기(气)를 단 몇 자로 정리한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신이 살았을 당시 기(气)는 누구에게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단 몇 자로 정리하더라도 충분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기를 '호흡'이라 했다. 신석기인들은 하늘에 보이는 '기상(氣象)'을 하늘의 '호흡'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 듯싶다. 나중에 이것은 땅(地)의 호흡 '안개(또는 아지랑이·먼지)'와 하나가 되어 '운무(雲霧)'가 되고, 고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하늘과 땅 천지(天地)의 호흡으로 보았다.

이렇게 봤을 때 천문(통로)은 신석기인의 하늘관이고, 하늘이 호흡하는 입(구멍·天口)인 셈이다. 그리고 하늘이 호흡을 할 때 그 입김(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며 구름이 나오는 것이다. 고구려신라백제 수막새 기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람개비(파형문)는 바로 이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진81〉 북한 궁산유적 빗살무늬토기 조각 그림. 〈사진82〉 육서통의 기(?). 〈사진83〉 인도 베다시대 기원전 1500∼500년. 채문토기. ‘베다’는 ‘지식의 책’이란 뜻이다.
 〈사진81〉 북한 궁산유적 빗살무늬토기 조각 그림. 〈사진82〉 육서통의 기(?). 〈사진83〉 인도 베다시대 기원전 1500∼500년. 채문토기. ‘베다’는 ‘지식의 책’이란 뜻이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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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궁산 신석기인과 고대 인도의 천문(天門)

〈사진81〉은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그린 그림이다. 궁산 신석기인들은 하늘 속 물 층을 네 층으로 새겼다. 이것은 사방 동서남북 하늘 물 층을 새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층마다 통로(천문)를 냈다. 이 하늘 속 물 층은 옆에서 본 하늘을 그릇 평면에 새긴 것이다('하늘 속 물'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을 참조 바람). 이와 달리 〈사진82〉 기(气)의 전서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본 하늘 통로를 그렸다.

보는 시점(視點)을 달리한 것인데, 〈사진81〉은 y축에서 본 하늘 속이고, 〈사진82〉는 x축에서 바라본 하늘 천문이다. 〈사진83〉은 인도 베다시대(기원전 1500∼500년) 그릇이다. 이 시기 인도는 철기시대(기원전 1200∼272)다. 이 그릇 무늬 또한 x축에서 바라본 하늘이다.

그릇 밑바닥에 한중앙 들판 천문을 그리고, 그 둘레에 반타원형 구름을 다섯 장 그려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반타원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종류는 다섯 가지〉를 참조 바람). 그런 다음 세 곳에 천문을 그리고 세 가닥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 중국 한자 육서통 기(气)와 같고, 〈사진71〉의 천문 무늬와 비슷하다.
 
 〈사진84〉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cm. 보물 제791호. 덕원갤러리. 모란이라 하지만 모란은 덩굴손이 없고 잎 모양도 달라 엄격하게 말하면 모란이라 할 수 없다. 〈사진85〉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진파리 제1호 무덤 천정 벽화.
 〈사진84〉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cm. 보물 제791호. 덕원갤러리. 모란이라 하지만 모란은 덩굴손이 없고 잎 모양도 달라 엄격하게 말하면 모란이라 할 수 없다. 〈사진85〉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진파리 제1호 무덤 천정 벽화.
ⓒ 덕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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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와 천문화생

〈사진84〉는 〈사진72〉의 뒷면 무늬 그림이다. 테두리 두 겹 원과 가운데 두 겹 원도 천문이다. 가운데 천문에서 풀꽃 잎과 줄기가 바깥쪽으로 나오고, 테두리 천문에서는 안쪽으로 나온다. 이것은 이 세상 만물이 천문(天門)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85〉는 고구려 진파리 제1호 무덤 천정 그림이다. 고구려 벽화는 무덤마다 아주 중요한 사상을 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고구려 사람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무덤으로는 성총(평남 남포시 와우도 신령리), 장천 제1호 무덤·환문총(중국 길림성 집안), 안악 제1호 무덤(황해남도 안악군 대추리), 쌍기둥 무덤(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용강리), 덕화리 제1호 무덤(평남 대동군 덕화리), 진파리 제1, 4호 무덤(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을 들 수 있다.

이곳 여덟 무덤은 이 세상 만물이 천문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 세계관이 그려져 있고, 죽어 다시 이 세상의 기원이자 자신이 태어났던 천문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사진85〉는 바로 그러한 세계관을 압축하여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가운데 동그란 천문이 있고, 그 천문에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표현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 천문을 '연꽃'으로 보고, 천문에서 태어나는 풀꽃을 '인동'으로 보지만 이것은 천문과 새 생명을 뜻하는 풀꽃으로 볼 수 있다(이 풀꽃을 인동으로 볼 근거는 없다. 인동 잎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이 풀꽃은 본질적으로는 구름이면서 새 생명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86-87〉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옛 무덤에서 나온 뚜껑 굽다리 그릇 무늬.
 〈사진86-87〉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옛 무덤에서 나온 뚜껑 굽다리 그릇 무늬.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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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과 천문화생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천문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 세계관은 삼국 가운데서도 신라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사진86, 87〉 같은 증거를 국립중앙박물관 신라관과 경주박물관에서 셀 수 없이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천문 무늬를 원권문, 점원문, 고리점무늬라 해 왔다. 또 이 무늬의 정체를 몰라 수많은 유물이 박물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다.

〈사진86, 87〉은 경주 방내리 무덤에서 나온 그릇 무늬이다. 경주 방내리는 신라의 신도시이고, 이곳 무덤군은 신라 귀족들의 공동묘지이다. 원래는 무덤이 400여 기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거의 도굴당하고 온전히 남은 것은 100여 기쯤 된다. 해방 뒤 1968년 경부고속도로를 내면서 발굴조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그릇은 수백 점에 이르는데 거의 다 〈사진86, 87〉 같은 천문 무늬를 하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이 무덤 벽에 천문(天門)을 그려 그들의 내세관을 표현했다면 신라 사람들은 무덤에 넣는 그릇과 뼈 항아리에 〈사진86, 87〉 같은 천문 무늬를 새겨 자신이 태어났던 천문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담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 천문 세계관은 신라·고려 불교의 연화화생(蓮花化生)과 조선 성리학의 세계관과도 하나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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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습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합니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입니다. 광주대학교에서 '삶과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