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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농장  하루 네 번씩 새끼염소에게 우유 먹이는 세 가족
▲ 소망농장  하루 네 번씩 새끼염소에게 우유 먹이는 세 가족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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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바 이런 쓰바 빨리!" 옥순씨가 상도씨에게 아침부터 큰 소리로 뭔가 말을 하는데 저만치 상도씨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눈만 껌벅거릴 뿐이다. 뭔가 사인이 잘 안 맞은 모양이다.

최상도(66세)씨와 이옥순(61세)씨 부부는 2016년 남원시 송동면에 귀농해 올해로 3년째 흑염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이들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귀농 전까지 서울에서 카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었다. 2013년도부터 귀농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여주, 이천 등 경기도 일대로 매주 현장 견학을 다녔다.

환경은 열악했고 귀농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왜 굳이 귀농을 하려고 하는가'였다. '도시에서 이만큼 고생했으면 엄청 부자가 됐을 거다'라며 고생한 만큼의 소득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했다. 한결같이 말리는 사람만 있을 뿐 아무도 격려해주지 않았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는데 굳이 귀농을 하려는 남편을 설득했지만 '나는 늙으면 경비밖에 할 게 없는데 그 일만은 죽어도 못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남편은 생업에 전념을 하고 옥순씨 혼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염소들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는 염소들
▲ 염소들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는 염소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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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중 귀농 귀촌 교육센터에서 전북 지역 교육이 있어 몇 차례 참석을 하고 남원까지 내려와서 교육을 받았다. 타 지역에 비해 남원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친근감이나 편안함이 귀농지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원으로 귀농 지역을 정하고 작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견학을 다니며 그나마 쉬워 보였던 토마토 농사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는 염소 농장을 하고 말 거야.' 남편의 결심은 확고했다. 남편은 친구가 염소 농장을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에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염소 농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친구가 염소 농장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해도 이왕이면 남원에서 염소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직접 일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귀농박람회를 찾아 염소 농장주를 소개받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별다른 연락이 없자 부부는 배낭을 메고 명함의 주소만 보고 남원의 염소 농장으로 향했다. 2016년 4월 1일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편의 나이가 이미 64세였기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남편이 농장 앞에서 머뭇거리는데 등 떠밀어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찾아간 날이 하필이면 농장에 공사를 하는 날인 거예요. 일을 마치고 나온 남편을 보는데 온몸이 페인트 투성이에 엉망이 돼서 나오더라고요. 첫날은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남원에 있는 구룡폭포 주차장 앞에 차를 대놓고 라면 끓여먹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하루 더 일손을 돕고 이튿날 서울에 올라가서 배낭에 옷가지하고 코펠만 챙겨서 다시 남원으로 내려왔어요."

다행스럽게도 당시 귀농 귀촌 센터장으로부터 숙소를 제공받아 얼마간 지내며 농장 부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일을 가르쳐주던 농장 주인은 7시 반에 출근하는데 우리는 6시 반이면 출근을 했어요. 남편 때문에 농장주도 하는 수없이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대요. 그래도 남편이 일을 워낙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라서 고용된 임부들보다도 더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상도씨는 주변 사람들이 '최 사장처럼 일하면 며칠 못하고 나가떨어진다'고 만류할 만큼 묵묵히 열심히 일했다. 2016년 7월 지금의 농장으로 귀농을 했다. 소망 농장으로 이름을 정하고 축사 600평과 복숭아밭 600평으로 총 1200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일을 가르쳐주던 농장주와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돈독하게 지내고 있다.   

 
규만씨 갓 출산한 어미염소와 새끼염소 우리를 살피고 있다.
▲ 규만씨 갓 출산한 어미염소와 새끼염소 우리를 살피고 있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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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했던 부부의 아들 규만씨도 올 6월부터 부모님 곁에서 일을 돕고 있다. 세 가족이 각자의 주된 업무는 있지만 항상 같이 일을 한다. 옥순씨는 약하게 태어난 새끼 염소와 갓 출산을 한 어미 염소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상도는씨 축사 수리 밑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가령 어미 염소들이 출산을 하면 온전히 새끼만 돌볼 수 있도록 별도의 우리를 만들어 주는데 바닥에 열선을 깔아 보온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준다. 상황에 맞게 염소 우리를 넓히기도 좁히기도 한다. 규만씨는 주로 힘쓰는 일은 도맡아 한다. 간혹 우리 밖으로 탈출한 새끼 염소를 잡느라 셋이서 함께 진땀을 빼기도 한다.

염소농장을 하면서 전에 없이 짜증을 부리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는 러시아 말 같은 걸 거의 안 했는데 요즘은 러시아 말을 잘해요. '쓰바쓰바' 이런 거요. 하하하. 서로 일은 많고 바빠 죽겠는데 사인이 맞지 않아서 신경이 곤두서면 '나 러시아 말 나갑니다'하고 경고를 해요."

옥순씨 말에 상도씨도 규만씨도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옥순씨가 주로 아픈 염소들이나 출산한 어미 염소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혼자서는 버거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출산한 염소가 아플 때는 젖을 직접 짜줘야 하는데 혼자서는 어렵거든요. 그런 경우 한 사람이 잡아주고 또 한 사람은 젖을 짜줘야 하는데 한 시가 급하니까 와서 좀 도와달라고 도움 요청을 하지요."  

상도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일 자체를 즐기면서 하기 때문에 일이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요. 다만 당장 힘든 건 금전적인 게 가장 힘들죠. 판로만 확보가 된다면 문제가 없는데 판로가 불안정하니까 그게 가장 염려스럽죠. 염소고기 수요가 늘면서 염소고기 수입이 덩달아 늘다 보니 가격이 들쑥날쑥하면서 팔리고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업자들은 어떻게든 가격을 깎을 생각만 한다. 정부에서 가격을 잡아보겠다고 내놓은 대안이 첫째는 염소 암컷을 도축하면 마리당 10만 원의 지원비를 줘서 염소 출산을 줄여 개체 수를 줄이자는 방안이고, 둘째는 염소농가 폐업을 신청하면 한 마리당 15만 9천 원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염소농가를 줄이겠다는 방안이다. 잠깐의 이익을 위해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장 일이 힘들기는 해도 일하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새끼들이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서 가족 수가 늘어나는 일이다. 염소는 젖이 두 개인데 두 마리만 낳으면 다행이지만 세 마리 많게는 네 마리까지 낳는 경우가 있다. 힘이 센 두 마리를 제외하고 힘에서 밀리는 나머지 새끼들은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고스란히 상도씨와 옥순씨의 몫이다. 염소를 오래 키운 사람들에게 염소가 두 마리 이상 태어날 경우 어떻게 하는지 조언을 구했지만 대부분 약하게 태어난 염소들은 포기를 한단다.

"살아 있는 애들을 포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시계 알람을 맞추고 우유를 먹여가며 돌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병을 물려가며 세 마리가 태어나든 네 마리가 태어나든 다 키워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전라 남북도에서 저희 집이 염소를 잘 키운다고 소문이 났더라고요. 이런 재미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하는 거 같네요."

 
옥순씨와 새끼염소 약한 염소들은 방안에서 우유를 먹여가며 별도로 돌보고 있다.
▲ 옥순씨와 새끼염소 약한 염소들은 방안에서 우유를 먹여가며 별도로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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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길 약하게 태어난 염소들은 방 안에서 따로 돌보기도 하는데 지금도 방안에는 아픈 새끼 염소 한 마리가 옥순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정말 약한 애들은 젖병 빨 힘도 없어서 못 먹어요. 그러면 손가락으로 입을 벌리게 해서 한 방울씩 짜서 먹이면 그걸 목구멍으로 겨우 삼켜서 기운 차리고, 젖병 빨기 시작하면 그 애는 살아나는 거예요. 그렇게 키운 염소들은 커서도 나를 엄마로 알고 와서 애교도 부리고 따라다니고 그래요."

 
새끼염소 볕이 따뜻한 낮이면 축사 주변으로 옮겨 다니며 햇볕을 쬐고 있는 새끼염소들
▲ 새끼염소 볕이 따뜻한 낮이면 축사 주변으로 옮겨 다니며 햇볕을 쬐고 있는 새끼염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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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 먹일 시간이면 세 사람이 온 축사를 뛰어다니며 새끼 염소들을 붙잡아야 한다. 겁이 많던 옥순씨는 축사 울타리를 훌훌 넘어 다니며 새끼들을 잡아 빠짐없이 우유를 먹인다. 지금은 10마리 가량 우유를 먹이고 있는데 그렇게 2개월 가량 우유를 먹이다 보면 스스로 건초를 먹기 시작한다.    

염소는 수컷이 보통 생후 1년이 지나면 팔려나가게 되고 암컷은 2번의 출산 많게는 3번의 출산을 하면 농장을 떠난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특히나 방에서 키워 내보낸 염소들은 더 애틋하기 마련이다.  

염소는 발정기가 되면 평소보다 울음소리를 많이 내기 때문에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는 사육이 어렵다.  염소들은 동절기가 되면 털갈이를 하면서 두터운 털이 자라기 때문에 별도의 축사 정비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새끼를 낳는 어미 염소들은 출산 후 몸 상태가 약해지기 때문에 보온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염소농장을 권하고 싶어요.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보다 애교가 더 많아요." 

150마리로 시작한 염소농장은 현재는 500마리가 넘는다. 개체 기록부를 작성하며 관리를 하면 좋겠지만 밥 먹을 때마다 수를 세어 봐도 매번 다르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농장을 운영하기엔 대략 염소 400마리 미만이면 적당하다고 한다. 농장 일이란 게 도무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무한 노동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는 염소들을 돌보며 보람도 크지만 웃는 날이 많아 오늘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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