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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부모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는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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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주도 모녀 사건에서 사망한 딸아이가 3살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파서 기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3살이면 두돌 전후. 아마 월령으로 따지면 현재 20개월인 우리 딸과 비슷했을 것이다. 말이 3살이지,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다.

의도적으로 넘겼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사와 댓글을 퍼와서 결국 대략적인 내용은 알게 되었다. 개중에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 댓글인즉슨, 몇몇 기사에서 "모녀 동반자살"이라고 쓴 표현이 부적절하며, "살해 후 자살"이 맞다는 것이었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애꿎은 딸아이는 왜 죽이냐는 댓글도 있었다. 이 댓글들을 두고 '공감능력도 없는 사이코패스냐'고 분개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사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아이가 스스로 자살을 택할 수는 없다. 설사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함께 죽자는 부모의 의견에 동조했다고 한들, 미성숙한 아이의 판단을 존중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은 실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표현이 맞다.

그건 '동반자살'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터지면 늘 동정적으로 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됐다 쯧쯧' 하는 게 일반적 반응이었다.

이 바탕에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즉 부모가 무책임하게 자녀를 방치하고 떠나는 대신 일종의 '책임'을 진다는 사고가 녹아있다.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부모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윗세대만 하더라도 불행하게 사느니 차라리 부모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게 낫다는 반응 또한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는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니까.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줄 사회 제도나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가족의 일은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하니까.
 
 우리는 이미 남들이 다 하는, 해야만 해서 하는 일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실패하거나 좌절할지라도, 일단 가능한 선에서 좋아하는 일에 도전을 해보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일수록 가족에게 많은 책임을 부과한다. 가족제도를 벗어난 사람들은 보호받을 방법이 거의 전무하단 이야기이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선택지를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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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일수록 가족에게 많은 책임을 부과한다. 가족제도를 벗어난 사람들은 보호받을 방법이 거의 전무하단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인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선택지를 갖지 못한다. 가정폭력 및 학대를 비롯한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되더라도 울타리 안에서 참고 살거나, 거기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유난한 우리 사회에서 제도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것은 경제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자기 한 명만 책임지면 되는 성인이 아니라 어린 자녀까지 돌보아야 하는 한부모 가정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매우 심각할 것이다. 어린 딸아이를 추울까봐 이불로 꽁꽁 싸매고 바다로 향한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을 그대로 감고 싶어질만큼 마음이 고통스럽다.

누구를 위한 그물이냐고? 우리!

지금도 이러한 문제들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어린 자녀의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로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나마 있는 찢어지기 직전인 얇디 얇은 그물을 보강하기는 커녕, 아예 없애버리자니. 그러면서 가족의 일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니,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제도, 즉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살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불치병에 걸릴 수도 있다. 불가피한 사유로 이혼을 택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배우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즉 약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제도는 국가에서 마련하는 보험과도 같으며, 결국은 '약자'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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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로 일하다 퇴직 후 현재는 두 아이를 돌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