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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일 낮에, 전남교육감을 고흥에서 만나는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어찌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찾아가기로 합니다. 저 혼자서 찾아갈 수 없는 외진 바닷가 볕바라기집에서 모임이 있다고 했는데, 자동차로 태워 주시는 분이 있어서 함께 갔습니다.

처음에 10분 남짓 전남교육감이 들려주는 지난 넉 달 했던 일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런 일은 여태 누구나 했으니까요. 나흘 동안 몸살을 앓다가 이날 비로소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데, 이 아름다운 낮나절이 이렇게 아깝게 흐르는가 싶더군요.

이러다가 생각을 바꾸기로 합니다. 새로 일하겠다는 새 전남교육감이 아직 엉성한 걸음걸이라고 느낀다면, 부디 앞으로 어떤 걸음걸이를 바라는가를 동시로 써서 건네자고 말이지요.

어제 미리 쓴 동시를 옮겨적어서 건넬까 하다가, 불현듯 큰아이 궁금덩어리가 떠올랐습니다. 큰아이가 요새 무척 궁금하다고 여기는 '사랑·별·노래'가 무엇인지를 단출하게 풀어내고, 이를 아울러서 이야기를 짓자고 생각했습니다.

전남교육감 입에서 자꾸 "학교 밖"하고 "학업 중단" 같은 말이 튀어나와서 꾹 참고 기다리면서 동시를 마무리지었어요. 먼저 제 동시 수첩에 동시를 적었고, 하얗고 두툼한 종이에 동시를 옮겨적은 뒤에 손을 들어 한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전남교육감 장석웅 님
 전남교육감 장석웅 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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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님, 오늘 따가운 말은 안 하고 싶었습니다만 한 마디는 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은 집도 마을도 학교입니다. 졸업장을 주는 시설만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자꾸 '학교 밖, 학교 밖'이라면서 어린이하고 청소년을 가르려 하면, 이 말이 얼마나 언어폭력인지 아십니까? 졸업장을 바라지 않을 뿐인 아이들이 어디에서나 배우는 삶을 생각하지 않으니 언어폭력입니다.

긴 말씀을 여쭈기 어려워서 따로 글을 써 왔으니 조용한 자리에서 이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학교 밖 청소년'이 아니라 새 이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전남교육감한테 드린 글에 따로 길게 적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새 이름은 '스스로 배움이(자유배움 어린이·청소년)'입니다).

교육감님이 '학교 밖 청소년'한테 교재나 무엇무엇을 지원한다거나 또 무슨 교육지원 같은 사업을 말씀하시는데요, 저희는 두 아이, 열한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집에서 배우도록 하면서 아무 시설도 안 보냈는데, 이렇게 하면 여덟 살까지는 10만 원을 주더군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닌다고 하면 '머릿수마다 50만 원씩 유치원에 준다'고 하대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집에서 배우는 아이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받을 교육비가 10만 원하고 50만 원으로 갈릴까요?

요새 한창 불거지는 유치원 비리는 바로 이런 데서 비롯하지 않았을까요? 처음부터 모든 아이 어버이한테 똑같이 50만 원을 주면, 어버이가 알아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든, 알맞은 유치원을 골라서 그 유치원에 치러야 할 돈을 내든, 그렇게 해야 유치원 비리가 사라지겠지요?

'학교 밖 청소년'한테 무슨 교재이니 시설이용이니 지원한다면서 예산을 쓰시지 말고요, 직접 '학교 밖 어린이·청소년' 은행계좌에 50만 원씩이라도 주는 길이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피시방에서 게임만 하든, 책을 사서 읽든, 자전거를 사서 타든, 목돈으로 모아 여행을 다니든, 어린이와 청소년 스스로 결정권을 누려서 생각하고 쓰도록 하면 된다고 느낍니다. 이런 게 교육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이런 말을 마치고서 '동시'란 이름을 붙인, 이 자리에서 새로 쓴 동시를 전남교육감한테 건넸습니다. 이 동시도, 함께 건넨 책하고 글도 모쪼록 찬찬히 읽어 주시기를 빌어요.
 
동시

사랑이라면
즐겁고 밝게 속살이면서
곱게 돌볼 줄 아는
슬기로운 숨결이야

별이라면
해도 지구도 별이고
우리도 메뚜기도 별이고
마음에 씨앗으로 빛나며 별이야

노래라면
문득 터져나오는 기쁨이
웃음으로 눈물로 춤으로 꿈으로
피어나는 말이면서 가락이야

동시라면
사랑을 담은 글이지
별처럼 빛나는 글이지
노래가 되는 글이지
 
 동시 공책에 적은 글 '동시'
 동시 공책에 적은 글 "동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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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또는 시) 한 꼭지 쓰기는 어렵지 않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마음을 담아서 쓸 줄 알면 누구나 동시(또는 시)를 쓸 수 있다고 여깁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 쓰는 동시(또는 시)가 아닙니다. 문학강의를 챙겨서 듣거나, 동시인(또는 시인)한테서 강좌를 찾아 들어야 쓰는 동시(또는 시)도 아닐 테고요.

시쓰기나 동시쓰기를 놓고서, 여러 가지 솜씨를 살펴야 한다거나, 맞춤법·띄어쓰기를 알아야 한다거나, 꾸미기(수사법)를 익혀야 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이런 여러 가지 때문에 오히려 동시도 시도 쓰기가 더 어렵겠다고 느낍니다. 잘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아기한테 말을 어떻게 가르치나요? 아기는 말을 어떻게 배우나요? 아기 티를 벗고 아이가 될 무렵, 아이한테 말을 어떻게 물려주나요? 아이는 말을 어떻게 물려받나요?

어떤 어버이도 아기나 아이한테 '문장기교·수사법'을 강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버이도 아기나 아이한테 '맞춤법·띄어쓰기 틀렸다고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 나무라지 않'습니다. 아기나 아이가 말을 새록새록 익히면서 저희 뜻과 생각과 마음과 꿈과 사랑을 실컷 펼칠 수 있기를 바라지요.

동시쓰기(또는 시쓰기) 첫걸음은 바로 이 대목이라고 여겨요. 동시나 시 모두 첫째로, 사랑을 담은 글이 되도록, 둘째로, 별처럼 빛나는 글이 되도록, 셋째로, 노래가 되는 글이 되도록, 우리 마음을 오롯이 담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이 글 〈동시〉는 교육감 자리에 계신 분이 교육행정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썼고, 우리 집 열한 살 어린이가 궁금해 하는 세 가지인 사랑이랑 별이랑 노래가 저마다 무엇인가를 이야기로 들려주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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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