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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었다. 시작과 끝은 어김없이 식탁이다. 우리 회사 대표님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점심 시간엔 밥을 함께 하며, 저녁 시간엔 술을 함께 하며 그렇게 결정된다. 회사가 오래 살아남아 역사라고 칭할 만한 게 만들어진다면, 주요 길목길목마다 역사가 식탁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식탁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자 고로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의식주 중 없으면 절대적으로 안 되는 게 바로 '식'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얼 왜 어떻게 하든 인간은 먹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인간의 역사 속에 먹는 거야말로 가장 깊게 아로새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훑어본다. 아내와의 결혼 전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를 했던 식사 시간, 군입대를 몇 시간 앞두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함께 한 식사 시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와중의 점심 시간, 초·중·고 졸업식 부모님과의 점심 시간들, 기억날리는 없지만 행복했을 돌잔치 시간...

하찮을 나의 역사조차 중요할 때면 어김없이 식탁이, 요리가 함께 했다. 앞으로도 어김없이 그러하여 나의 역사적 역사는 언제나 요리와 식탁과 함께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찮지 않을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요리와 식탁이 궁금해진다. 인류의 역사적 순간과 함께 한 요리 50가지를 소개한다는 책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시트롱 마카롱 펴냄)를 들여다보면 궁금증이 한껏 풀리지 않을까 싶다. 

식탁에서 이뤄진 역사들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표지.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표지.
ⓒ 시트롱마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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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의 탄생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1718년 출생한 샌드위치 4대 백작 존 몬태규는 당대 많은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카드 게임 마니아였다. 그는 몇 시간 동안 테이블에 앉아 게임에 집중하곤 해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했는데, 그 때문에 빵 두 장 사이에 찬 고기와 치즈를 넣은 음식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같이 카드를 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샌드위치와 같은 것을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정말 싫지만, 종종 하는 게 '회의를 겸한 식사' 또는 '식사를 겸한 회의'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퍼졌다. 기존의 왕조 시대에서는 출판, 보도 등의 여론 소통 방식이 정권에 통제를 받았지만, 이젠 공개 연회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연회와 식사 모임은 여러 계에서 중요한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세계 3대 강국 러시아, 영국, 미국엔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트루먼)의 수장이 있었다. 이들은 공고한 동맹을 위해, 세계 균형을 위해, 자기 나라를 위해 만나곤 했다.

루스벨트가 주최한 만찬은 항상 기억에 남을 만한 요소가 없었던 반면, 처칠이 주최한 만찬은 개성 있는 우아함으로 기억된다. 그가 제공한 메뉴에는 회담 현지 분위기를 고려한 현지 음식들과 상대의 입맛을 고려한 상대 고향 특산물들이 있었다. 한편 스탈린의 메뉴에는 그의 안하무인 캐릭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50년대 록의 제왕이자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4년 첫 번째 미국 공연을 필두로 '브리티시 인베이젼'을 시전한 비틀즈를 초대한다. 때는 1965년, 늦은 시간 젊은 4인조는 엘비스의 집으로 가 노래를 함께 연주하고 부른다.

곧 출출해진 그들이지만 늦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지는 않은 법, 요리사가 그들에게 해준 건 베이컨으로 말아 구운 닭 간, 미트볼, 미모사 에그, 게, 햄과 콜드컷, 치즈, 과일 등이다. 그야말로 시골 역 간이식당에서나 나올 법한 메뉴였다. 

'식탁의 역사' '역사의 식탁'과 어울리는 회담들
 
옥류관 평양냉면 먹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한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 옥류관 평양냉면 먹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한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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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46년의 시간을 두고 묘하게 겹치는 두 모습이 있다. 그야말로 '식탁의 역사' 또는 '역사의 식탁'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들이다. 하나는 1972년 2월 21일 중국의 자금성 앞 톈안먼 광장의 인민대회당, 하나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프랑스에서 2016년에 나온 이 책에는 당연히 앞엣것은 소개되었지만 뒤엣것은 소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회담은 분명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로 뭉친다. 

1960년대 후반 전 세계는 여러 국가적 분쟁과 여러 신생 국가들의 대두에 따라 이데올로기보다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시대를 연다. 이에 발맞춰 동서를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중국)이 데탕트 국면으로 접어든다. 

긴밀한 물밑 작업 끝에 1972년 2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중국 측은 최고의 예우를 갖춰 맞이한다. 국빈 만찬은 가장 중요한 의식, 중국 측 요리사들은 새우 요리와 빵, 버터 등의 서양 요리에 오리 내장 볶음, 목이버섯 등의 베이징 요리를 내놓는다. 아울러 마오타이주가 나왔는데, 닉슨은 외교관의 마시지 말라는 요청을 무시하곤 주저 없이 마셔 버렸다. '미중 데탕트'의 상징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촛불 혁명 여파로 탄핵 당한 박근혜, 조기 대선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불통이었던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선다. 다행히 미국과 중국이 호의적으로 나와주었다. 

역시 긴밀한 물밑 작업 끝에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만남을 가진다. 11년 만의 길지 않은 텀의 남북정상회담이지만, 흐르는 기류는 완전히 달랐다. 역시 만찬 메뉴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되었을 터, 역사적 인물의 고향 식재료, 양 정상과 남북 교류를 상징하는 콘셉트로 구성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고향인 전남 신안 가거도의 민어 해삼 편수, 노무현 대통령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서 수확한 쌀로 지은 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에서 착안한 충남 서산 한우 숯불구이,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인 경남 남해 산 문어 냉채가 한 콘셉트였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년 시절을 보낸 부산의 달고기구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을 고려해 스위스 감자요리 뢰스티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감자전이 한 콘셉트였다. 만찬주로는 면천 두견주와 문배술을 올렸다. 

마지막으로는 대망의 미를 장식했던 남북교류의 상징 음식으로 평양 옥류관 냉명과 DMZ 산나물 비빔밥이 메뉴에 올랐다. 북한은 옥류관 냉면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평양 옥류관 수석요리사를 파견하고 옥류관의 제면기를 그대로 가져와 판문점 통일각에 설치했다. 이후 평양냉면은 공히 남북 모두에게 화제의 음식이 된 건 물론, 비둘기를 대체할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미중 데탕트의 상징이 마오타이주였다면 남북 데탕트의 상징은 평양냉면이라 하겠다. 

2018 남북정상회담은 곧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져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확고히 장식했다. 서양식을 기본으로 싱가포르 현지 중식과 한식을 두루 고려한 북미정상회담 만찬도 화제를 뿌렸다. 이렇듯 '식탁'이란, '요리'란, '음식'이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단순히 수단으로서 장식품처럼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상징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어왔던 것이다.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어김없이 그 몫을 다할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옹 고드프르와, 자비에 덱토 지음, 강현정 옮김, 시트롱마카롱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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