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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도 이길 수 없는 미세먼지

산신령이라든가, 옥황상제라든가, 옛날옛적 미신을 졸업한 지 오래다. 그런데 강원도 동해시에 살면서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은 태백산맥을 마주할 때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겹겹이 쌓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한데다가, 더 든든한 건 우월한 기후 생성자이기 때문이다. 동쪽 바다와 태백산맥의 환상적인 협동 덕분에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더군다나 미세먼지로 대한민국이 끙끙 앓을 때, 태백산맥 너머 바닷가 동네는 그나마 편히 숨 쉴 수 있다.

이러니 산신령님과 선녀님을 졸업한 서른 한 살 애 엄마도 태백산맥'님'을 보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막대한 양의 중국발 미세먼지에는 태백산맥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미세먼지에 흐려진 태백산맥을 보면, 창문을 닫아 놓아도 숨쉬기 두렵다.

미세먼지 수치가 300을 넘어서 '외출자제' 경고를 보노라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모래 폭풍이 곧 우리의 현실이 돼 버릴 듯하다. 태백산맥도 막지 못하는 미세먼지를 보면, 환경파괴는 이미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건 아닌가 두렵다.
 
 2018년 11월 29일. 미세먼지 '매우나쁨'을 기록했던 날, 태백산맥 두타산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2018년 11월 29일. 미세먼지 "매우나쁨"을 기록했던 날, 태백산맥 두타산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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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6일. 미세먼지 없을 때, 평소 태백산맥 두타산의 모습.
 2018년 12월 6일. 미세먼지 없을 때, 평소 태백산맥 두타산의 모습.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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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하나,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사회

미세먼지뿐일까. 곧 다가올 최악의 혹한 그리고 올 여름 거쳤던 최악의 혹서. 이 모든건 화석 연료를 태움으로써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화석 연료는 먼 중국 공장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내가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노트북은 화석 연료를 태운 전기가 있어야 쓸 수 있다. 또한 이 노트북을 만든 중국 공장에서도 전기를 사용했을 것이며, 배와 트럭를 타고 우리집으로 유통되는 과정까지 석유를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돈을 주고 교환하는 모든 재화(가령 난방, 옷, 장난감 등)에는 '화석연료'가 빠질 일이 거의 없다. 생활의 편리함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사치품에 길들여진 우리로 인한 기후변화는 돈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 말은 즉, 소비를 줄임으로써 화석연료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를 더디게 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가장 빠른 길은 '사지 않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대전환점에 와 있다. 맑은 공기와 울창한 우림, 신선한 식수와 안정적인 기후를 누리면서 빠른 자동차와 컴퓨터, 신용카드, 현대의 편의까지 함께 누릴 수는 없다. 이 세대는 이것 아니면 저것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기회비용이 따른다. 허섭스레기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택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선택을 잘못할 경우 다음 세대는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마크 보일,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최소한의 소비 도전, 한 달의 기록

1년 내내 방심할 수 없는 미세먼지는 물론, 쓰레기 대란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위기감을 느꼈다. 나는 작은 개인이었기에 무기력하게 에어컨이나 틀고 더위를 견뎌야 하는 걸까.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여름 한 달 동안 자연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시도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최소한의 소비'를 하기로 한 것. 그때의 도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덜 쓰는 삶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달 도전의 기록 중, 누구나 할 수 있는 네 가지를 추려 소개할까 한다.

① 가계부 쓰기

생활비 70만 원. 열정 있는 따뜻한 다짐보다 냉정한 숫자 목표를 정했다. 목표를 숫자로 잴 수 있도록 하면, 환경을 돕는 이타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잘 해보자!' 예쁜 마음에 '생활비 70만 원' 칼 같은 숫자를 마음에 새기고 한 달을 지냈다(유류비, 병원비, 교육비를 포함하지 않았다).

도전 기간, 7월 17일에서 8월 16일까지 총 70만 6천 30원을 썼다.

식비(식재료+외식+카페) 666,290원.
잡화비 39,740원.
합 706,030원.


가계부에 소비 내용을 연필로 슥슥 적어가면서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아갔다. 더운 날, 불 앞에서 밥 하기 싫다가도, 거창한 외식 말고 쌀밥에 단촐한 반찬 한두 개를 올려놓고 먹었다.

사람은 기대만큼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지 않다. 늘 옳은 선택만 할 것 같지만, 그날의 기분이나 함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날씨에 따라 달리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계부를 썼다. 냉정한 목표액 70만 원은 열정적 지름신에게서 날 멈춰세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식비와 잡화비 누적액을 직접 계산했다. 생각보다 씀씀이는 헤펐고, 너무나 너그러이 오늘 하루'쯤' 마셨던 커피들은 쌓여만 갔다. 늘 예상보다 많이 지출했다. 아차 싶어, 외식하지 않고 주방 조리대 앞에 섰다. 가계부가 있었기에, '최소한의 소비를 하자'는 작심3일을 열 번 반복할 수 있었다.
 
 가계부
 가계부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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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나눔과 물려쓰기

더 이상 안 쓰는 물건을 버리지 말고, 중고나라나 지역 맘카페에 나눔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고 내놓았다. 나도 되도록 중고 물건을 새사용했다. 이미 생산된 물건들을 물려줌으로써, 물건 단 하나라도 쓰레기가 되는 일을 막고 과잉 생산되지 않도록 했다.

사실, 귀찮아서 그냥 버리고 싶었다. 종량제 봉투나 분리수거함에 툭 던지면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이미 생산된 물건을 재사용 한다면, 재사용한만큼 덜 생산된다.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원재료, 전기, 화석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귀찮음을 무릅쓴 결과는 매우 달았다. 지역 맘카페에 나눔했던 부스터 장난감은 무농약 콩나물로 돌아왔다. 그냥 버리지 못하고 나눔했더니, 받는 분께서 감사하게도 콩나물을 한 봉지 주신 것이다. 나눔으로 따뜻한 마음과 콩나물 한 봉지를 함께 받고, 지구 환경도 살릴 수 있었다.
 
 아기 부스터 장난감은 무농약 콩나물로 돌아왔다.
 아기 부스터 장난감은 무농약 콩나물로 돌아왔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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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고쳐 쓰기

여름을 나려고 마련한 먹색 린넨 바지에 구멍이 났다. 얼마 입지 않았는데 우두둑 튿어졌다. 귀찮아서 방치하기를 한 달째. 빨래가 밀려서 더 이상 입을 바지가 없어지니, 구멍난 린넨 바지를 꺼낸다.

버릴 수는 없었다. 버리면 쓰레기만 된다. 인터넷에서 바지를 저렴하게 살 수 있지만, 아픈 지구 이야기를 폭염경보 문자를 통해 꾸준히 접하는 중이라 쉽게 버리지 못했다. 버리면 재활용되지 않고 땅에 묻힐 게 뻔했다. 땅 속에서 썩으면서 탄소가스를 배출하니, 환경에 해로웠다. 또한 새로 한 벌 더 사서 쓰게 되면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것이다.

3만 원 안으로 바지를 새로 살 수는 있다. 참 쉽다. 하지만 지구는 가상개념일 뿐인 돈을 모른다. 그저 버릴 때 자연이 아프고, 더 생산하면서 기후변화속도가 빨라진다. 역시 갖고 있는 옷을 고쳐 입는 게, 아픈 지구를 위해 귀찮아도 해야 할 일이었다. 소비를 하지 않는 게 가장 친환경적이다.

구멍난 옷을 기워 입는 게 어째서 빈곤의 상징이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바지 한 벌 살 수 있는 3만 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워 입는 사람이야말로 물건의 쓰임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을 고쳐 쓰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구멍난 린넨바지(왼쪽)를 기운 모습(오른쪽)
 구멍난 린넨바지(왼쪽)를 기운 모습(오른쪽)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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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여름 휴가는 집 근처 자연에서 보내기

건강한 기운을 내뿜는 여름 속 자연에서라면, 늘 만족했다. 계곡 물에서, 공원에서, 바다에서, 집 앞 산책로에서, 호숫가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자연에 '공짜'라는 말을 붙이기에 미안할 정도로, 값을 지불하는 그 어떤 여가 시설보다 나았다. 건강했고, 맑고, 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장 9일 동안 여름 휴가를, 매일매일 다른 코스로 즐겼다. 잘 찾아보니 갈 곳은 많았다. 산책로, 공원, 휴양림, 바닷가, 계곡, 산. 꼭 강원도 동해안이라 그런 건 아닐 거다. 누구나 터를 잡고 사는 고장에, 시민들을 위해 자연에 나무 데크 산책길 무심히 던져 놓은 곳들이 있으니 말이다.

9일 간 휴가를 8박 9일의 긴 여행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길게 보아 매일 조금씩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게 우리가 사는 곳을 '도망쳐야 할 곳'에서 '머무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주어진 자연에서 자주 쉬는 일이야말로, '쉼'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 터전을 오래오래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2018년 여름, 가족들과 집근처 휴양림에서 하루 3~4시간씩 휴가를 보냈다.
 2018년 여름, 가족들과 집근처 휴양림에서 하루 3~4시간씩 휴가를 보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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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환경 지킴이 백 명을 기다린다

미세먼지 때문에 화나고, 걱정 된다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살까 말까 망설일 때, 사지 않는 것. 덜 쓰는 일, 절약은 비교적 쉬우면서도 환경을 살리는 본질적인 일이다. 덜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점 과잉 소비에 위기감을 느낄 때, 표를 의식한 친환경법들도 하나 둘 고개를 들 것이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 흘러가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하나 둘 움직여야 한다. 그저 시대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리다보면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나를, 당신을 역사와 정의가 챙겨주지 않는다. 역사가 책임져주지 않는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는 완벽한 환경 운동가는 될 수 없지만, 누구나 어설픈 환경 지킴이는 될 수 있다. 마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손에 들었던 별장식을 내려놓기부터 해보자.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 물건을 내려놓기.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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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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