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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 말

승기의 별명은 '악마'였다. 아직 17살이었지만 키는 180cm를 훌쩍 넘겼다. 몸은 다부졌고 운동도 잘했다. 힘도 워낙 세서 누구에게도 밀려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싸움도 잘했다. 초·중학교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싸움을 했고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악마란 별명은 단지 싸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승기는 이유도 없이 친구들을 괴롭혔다. 때리고, 심부름시키고, 돈을 빼앗았다. 친구들에게 승기는 진짜 악마였다.

어느 날 승기는 신발을 신고 교실에 들어가다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은 그를 나무랐다. 등교 첫날부터 가기 싫었는데, 굳이 다니고 싶지 않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승기는 선생님에게 욕을 퍼부은 뒤 곧바로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다음날 승기는 늦잠을 잤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지 아버지도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때까지 누워있던 승기를 본 아버지는 무작정 발길질을 했다. 승기는 맞자마자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밀쳐버렸고, 아버지는 벽에 부딪힌 후 넘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 승기를 때리려고 했다.

집도 학교도 붙잡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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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기는 학교를 떠났듯 집도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딱 하나, 집에 혼자 남은 누나가 걱정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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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는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더 이상 아버지는 힘으로 승기를 이길 수 없었다. 본인도 알고 승기도 알았지만, 손찌검은 멈추지 않았다. 승기는 학교를 떠났듯 집도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딱 하나, 집에 혼자 남은 누나가 걱정이었다. 세 살 많은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엄마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승기에게 누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존재였다.

집을 나온 승기는 다른 친구나 선배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셨고, 돈이 필요하면 깡패짓을 했다. 학교, 집, 어느 것 하나 승기를 구속할 수 없었다. '그날'도 승기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죽여버릴 거야!"


전화를 받은 승기가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허겁지겁 달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나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연신 발로 차고 있었다.

승기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그를 쓰러뜨린 뒤 한두대 주먹질을 했다. 누나가 승기의 손을 잡았지만 분을 참기 힘들었다. 그 틈을 타 부엌으로 달려간 아버지가 식칼을 들고 나타났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은 승기의 귀를 절반가량 베고 지나갔다. 승기는 곧장 칼을 뺏어 집어던진 다음 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50대의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승기에게 맞았다. 친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런 승기도 아버지를 때린 것은 처음이었다. 식칼이 날아다니고, 동생은 목과 어깨가 피범벅이 되고... 겁에 질린 누나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승기는 우선 응급실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저 녀석은 자식도 아니야"라며 당장 구속시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아버지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검찰은 또 승기가 누나의 폭행 피해를 목격한 직후였고,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귀를 다친 점 등을 고려해 소년보호처분을 내렸다.

판사는 단호했다. 승기는 과거 두 차례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승기야, 이미 두 번이나 보호처분을 받았잖아. 그때마다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을 테고 그래서 판사님들이 소년원에 보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버지를 때려서 여기에 왔어.

변호사님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니 누나가 맞는 모습을 보고 흥분했고, 더군다나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귀를 베였는데... 그렇다고 네가 아버지를 때리면 되니? 내가 볼 때 승기는 이번에도 낮은 처분을 하면 또 비행을 저지르고 다시 나를 만날 것 같아."


엄벌과 선처 사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번에는 힘들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적중했다.

"보호소년을 ○○○의 감호에 위탁한다."

아동복지시설이나 기타 청소년기관에 감호를 위탁하는 6호 처분이었다. 승기는 6호 기관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해야 했다. 소년원보다는 훨씬 자유롭지만, 보호소년들에게는 6호 시설 생활도 쉽지 않다. 더욱이 소년원처럼 탈주방지시설이 없어 이곳에서는 보호소년이 도망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 경우 이들에게는 6개월 간 소년원에 수용되는 9호 처분이 내려지는 게 관례다.

'승기가 6호 시설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도망치면 소년원으로 보내질 텐데... 도대체 칼 휘두르는 아버지를 때렸다고 6호 처분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승기의 앞날이 걱정됐다. 그에게 6호 처분을 내린 판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승기에게 낮은 처분이 내려졌다면? 오히려 판사가 옳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가정폭력이 청소년 비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하교하면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다음날 아침 다시 교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가는 청소년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 가능할까? 눈만 뜨면 손찌검하는 부모를 피해 집을 나온, 가출이 아닌 탈출한 청소년에게 '길거리 생활을 하더라도 법질서는 꼭 지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러나 '불우한 성장환경'만으로 죄를 용서해야 할까.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다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 청소년에게는 이 점까지 적절히 고려한 처분이 내려져야 할 뿐이다. 승기 역시 마찬가지다. 6호 처분을 받지 않고 곧장 사회로 돌아갔다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았으리라. 무조건 낮은 처분만 바라는 것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될 수 있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과거의 나는 커피숍에 가면 자연스럽게 젊은 청춘 남녀들을 바라보았다. 알콩달콩한 연인들을 보노라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일까?
 승기는 정말 악마였을까, 아니면 나쁜 게 아니라 아픈 청소년이었을까. 나는, 우리 사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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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승기에게도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딸을 때리고, 아들에게 칼을 휘두른 아버지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간 승기는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아버지는 달랐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거듭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변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고등학생만 돼도 아르바이트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주는데, 우리 집 딸년은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놔도 용돈 한 푼 주지 않아 교육 차원에서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놈이 덤벼들기에 홧김에 칼은 든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손잡이로 꿀밤을 때리려다 실수로 귀가 스친 것이지 아들에게 정말로 칼을 휘두르려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승기는 정말 악마였을까, 아니면 나쁜 게 아니라 아픈 청소년이었을까. 나는, 우리 사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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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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