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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관련 서적이나 드라마, 영화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 많다. 대중들이 조선시대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조선시대에는 '기록'이 많다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조선은 '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막상 조선의 사회상 전반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왕조 실록'을 넘어 '조선 역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역사작가인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심 소장은 최근 '단박에 한국사' 완결판 격인 <단박에 조선사>를 출간했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철종까지를 담은 이 책은 왕조나 구중궁궐 암투보다는 조선 민중의 사회상을 담으려 노력했다.

<단박에 조선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잠실역 근처 커피숍에서 심용환 소장을 만났다. 다음은 심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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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라는 틀걸이 해체하고 싶어"

- 지난 13일 조선사를 정리한 <단박에 조선사>를 출간하셨어요. '단박에 한국사' 시리즈 완결판 격이잖아요. 조선사는 근현대사와 달리 500년이란 긴 시간이라 방대해서 정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게 오늘날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감정적으론 편했어요. <단박에 한국사> 근·현대 편을 쓸 때는 오늘날 우리 이야기라서 정서적 고충을 감내하는 게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의외로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이라든지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생각보다 (정보) 접근성이 좋았어요."

-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쓰셨는지요?
<미스터 션사인>을 보면 노비의 아들, 백정의 자식이 화제였잖아요. 그런 문제의식에서는 저도 비슷해요. 왕이나 지배층의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 있었던 왕보다 더 고결했던 존재인 정도전,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조광조, 김육 등 국왕을 뛰어넘는 휴머니스트 이야기를 복원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경신 대기근'이나 요즘으로 말하면 '메르스' 같은 질병이 돌았던 이야기, 또 기생과 노비들의 이야기를 같이 담았어요. 조선시대를 하나의 제대로 된 사회상으로, '통합적인 복원'을 하려는 게 중요한 과제였어요."

- <단박에 조선사>에는 '왕조실록'이 아닌 '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내용이 있어요. 책을 보면 시대대로 순서가 나열되어 있던데 '왕조 실록'과 '조선의 역사'의 차이는 뭔가요?
"왕조실록으로만 따라가 보면 유능한 국왕과 무능한 국왕 구도가 성립되고, 좋은 신하와 나쁜 신하 구도가 성립되어요. 그러나 왕조실록으로 (역사를 보는)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 하면, 유능한 국왕과 유능한 신하가 있다 치더라도 백성들은 행복했을까 하는 점이에요. 제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틀걸이를 어느 정도는 해체하고 싶었던 이유가 뭐냐면, 아무리 훌륭한 국왕과 신하가 통치했다 하더라도 조선은 사대부와 양반 지주의 나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만 보는 것은 우리에겐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오늘 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이고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청와대나 강남 재벌 등 '스카이 캐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의 행복 아닌가요? 그런 부분에서는 왕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야지 않을까요?"

- 고려 공민왕 때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조선의 출발점은 위화도 회군일 거 같은데 공민왕부터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공민왕 때부터 시작한 건 두 가지인데 먼저 조선이란 나라의 탄생은 원명 교체기라는 점에서 오는 부분이 가장 커요. 원에서 명으로 안 바뀌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나올 수가 없어요. 왜냐면 실질적으로 원의 속국이고 식민지거든요.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고려가 부마국으로 나오지만 전 세계에서 출간되는 원나라 관련한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다 한반도도 몽골의 영토로 그려져 있어요. 그러나 원이라는 체제가 흔들렸고 때마침 명나라가 센 나라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세울 수 있던 거죠.

두 번째 이유는 공민왕이 실패하긴 했지만, 공민왕의 개혁 도전이 이성계나 신진 사대부에 영향을 많이 줬어요.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민왕이 중요한 거죠."

- 역성혁명이라고 해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쿠데타로 볼 수도 있잖아요. 혁명인가요. 쿠데타인가요?
"쿠데타라는 개념은 민주 공화국이라는 질서 속에서 국가가 전복되는 행위를 말하는 거고, (조선 개국은) 왕조사회에서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이라 두 개를 같이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는 박정희를 수양대군이나 이성계에 비유하거나 아니면 전두환을 이방원에 비유하기를 좋아했어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쿠데타를 바라보는 시각과 전근대 사회에서의 권력다툼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 거죠. 거기서 면죄부도 줬고요. 그런데 이건 전혀 다른 사건이라 연결 시키면 안 돼요.

권력 교체가 무슨 의미겠어요?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정도전과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있어요. 아주 부패한 소수의 귀족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문벌 사회'에서 과거 시험을 통해 합법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자영농들을 중요시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다는 측면을 보는 거예요."

"정도전과 백성을 배신한 나라"      
 
 충북 단양군의 도담삼봉에서 찍은 정도전 동상.
 충북 단양군의 도담삼봉에서 찍은 정도전 동상.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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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조선은 정도전이 설계한 건데 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했을까요?
"그건 제갈량이 왕을 안 하고 유비를 추대한 거나 똑같은 거죠. 결국 정치라는 건 덕과 인지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 정도전은 플랜과 실력은 가지고 있지만, 인지도나 무력은 약했잖아요. 그리고 둘이 되게 친하고 서로를 존중했고 이성계는 정도전을 받아들이며 엄청난 기회를 줬거든요. 우리는 이방원이나 세조를 얘기하지만 우리 시대 리더십적으로 얘기하자면 이성계가 중요해요. 그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나 조준 등 조선 건국 혁명파들에게 굉장히 큰 실권을 줘요. 전체는 본인이 관리하더라도 자신과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마음껏 좋은 세상을 만들수 있도록 한 덕장인 거예요. 본인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리더십이죠."

- 안타까운 게 후계자를 둘러싼 이방원과 정도전의 갈등인 거 같아요. 정도전이 이방원과 손잡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있어요.
"멋지게 시작한 나라긴 하지만 정도전의 이상은 시작부터 뜻대로 실현되진 않아요. 이방원은 국왕 중심의 나라를 꿈꾸잖아요. 이미 왕과 사대부가 협업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아닌 국왕 중심으로 가는 경향성이 발현되는 거죠. 물론 세종대왕 땐 잘했으나 나중에 전반적인 과정을 보면 왕과 신하는 대립하거나 한 쪽이 권력을 독점하는 식으로 싸움하는 게 조선왕조 500년이거든요. 이성계와 정도전, 혹은 세종과 신하같이 왕과 신하가 협력을 보여주는 시대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점이에요.

더 비극적인 건 과전법을 통해 자영농 국가로 바꿨잖아요. 그런데 정도전 죽고 백 년도 안 된 시점에 조선은 다시금 지주의 나라가 되잖아요. 제가 예전에 칼럼에도 썼던 글이지만 '조선은 영원히 정도전을 배신했다'고 하잖아요. 그 부분이 제일 뼈아파요. 과전법같이 '사회혁명'을 통해 시작된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유례가 없어요.

조선 후기로 가면 영·정조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그때도 소작농 비율은 계속 올라가요. 그리고 그때는 서울 사는 사람만 엄청 잘 살아요. 처음 이성계와 정도전이 꿈꿨던 그런 나라가 아닌 거예요. 멋지게 시작하고 쓸쓸히 끝나가는 나라, 결국은 백성을 배신한 나라죠. 시작에 비해 결과가 안타까워요."

-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지만, 정도전의 정책은 받아들이죠.
"이방원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는 군사정권을 지나 와서 칼질이나 음모를 멋있어 하는 데 그건 별로 좋지 못한 거잖아요. 그보다 말씀하신 거처럼 이방원의 최고 매력이 뭐냐면 이방원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같지 않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두 전직 대통령은 본인이 권력을 잡으면서 이전 통치자들이 했던 좋은 것들까지 다 부쉈잖아요. 하지만 이방원은 본인이 권력을 잡으며 정도전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 만든 제도를 하나도 안 고치고 더 발전시켜서 세종에게 넘겨주죠."

- 흔히 세종 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그 밑바탕은 태종의 숙청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세종 시대 태평성대가 가능했을 거란 주장도 있던데.
"이런 게 저에겐 불편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태종의 눈부신 업적이 뭐냐면 자기가 왕 된 다음 자기를 위해 목숨 건 공신을 다 죽였거든요. 쉽게 말해 세종 땐 권력을 꿈꾸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세종의 문화통치를 마련해 준 건 사실이죠. 그러나 토대가 좋다고 좋은 업적을 이뤄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밑바탕을 깔아준 건 사실이지만 거기서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건 세종인 거죠."

"임진왜란 때 도약 못한 게 아쉬워... 정조는 보수적 군주"
 
 <단박에 조선사> 책 표지
 <단박에 조선사> 책 표지
ⓒ 위스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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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후를 나누는 기준은 임진왜란, 책에서는 '임진 전쟁'으로 나오죠. 보통 왕조는 200~300년 주기로 교체된다고 해요. 임진 전쟁으로 조선은 망해야 했는데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게 비극이라는 의견도 있던데요.
"저도 아쉬움이 있어요. 무슨 아쉬움이냐면 중국은 명에서 청으로 바뀌며 한 번 도약했고,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에서 에도로 바뀌며 또 한 번 도약해요. 공교롭게 싸운 건 우린데 우리만 도약 못 했어요. 그리고 사회적 도약이 왜 중요하냐면 청나라나 에도 막부도 봉건 왕조긴 하지만, 바꾸면서 서양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거든요. 우리는 안 바뀌며 더 완고한 성리학 국가가 되어서 나중에 근대 문물이 유입되는 데 너무 힘들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적절한 때의 '변혁'이라는 건 필연적인 건데, 그걸 하지 못하면서 동아시아 3국 중 유달리 뒤떨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 정조를 개혁 군주로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작가님은 정조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맞아요. 노력을 안 했다는 거도 아니고 업적이 없다는 것도 아니지만 왜 과대평가가 됐냐면 예를 들어 우리가 '한강 배다리'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정약용이 한 거죠. 그러나 이미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해오던 방법이에요.

또 정조는 천주교가 제사나 유교 질서를 깨려고 할 때 천주교인들을 '진산 사건'으로 처형하기도 했어요. 연암 박지원 같은 사람이 청나라 신문물을 가져오고 청나라 정신을 수용할 적에 정조는 하나하나 비판했고요. 아주 보수적이고 정통유교를 지키려고 수호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근대를 얘기하거나 미래로 나아가려고 했던 군주로 보기는 힘들어요.

더군다나 처음 개혁을 펼치다 보니 신하들이 말 안 듣잖아요. 그러니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독단적 리더십으로 일관해요. 책에도 썼지만, 정조 최측근인 정약용이 '초계문신제도만 갔다 오면 젊은 신하들이 왕 앞에서 한 마디도 못 한다'는 말을 해요. 개혁정치라는 것을 국왕 중심으로 독단적으로 하니 신하들 역량이 감소되는 모습도 나타나요."

- 광해군에 대한 작가님 평가가 궁금해요.
"광해군은 난해한 인물이에요. 그러나 최근 평가는 비판적이에요, 왜냐면 광해군은 내정에 대해 너무 무능했어요.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사람이었고 지나치게 궁궐 공사를 많이 해서 민생에 피해를 많이 끼쳤어요. 마치 광해군은 훌륭한 군주였지만 안타깝게 쫓겨났다는 건 완전한 오해예요. 실제 광해군은 말할 수 없이 백성에게 피해를 입히고, 무능해서 전후 복구를 못 했고, 세자 때에 비해 통치를 못 한 왕이죠. 물론 중립 외교를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닌 공민왕하고도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잖아요. 조선사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임진왜란에서 우리는 성웅 이순신만 기억하잖아요. 그러나 수만 명의 사람은 노예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서 정착하거나, 동남아시아로 끌려갔어요. 국제 노예시장에서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팔려가기도 했어요. 우리가 역사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거죠.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좋죠. 그러나 임진왜란 속에 끌려간 노예들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본다면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난민 문제나 인권 문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이 책이 모든 것에 해답을 줄 수 없지만, 책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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