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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 김정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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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년 열린 촛불 집회로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바꿨지만, 그 자리엔 다른 데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목이나 쇠파이프는 없었다. 남녀노소 할 걸 없이 모여 촛불을 켰고 집회가 끝나면 청소까지 스스로 해 세계가 놀랐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에겐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왜냐면 6월 항쟁 때도 그랬고 4·19혁명 때도 그랬고 더 멀리 비폭력 평화 시위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3·1운동 때도 그랬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지난 9일 서울 용산역에서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새해인데 먼저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얼마 전 대학 문제와 관련해 쓴 제 글이 <오마이뉴스>에 나왔는데 여러 선생님이 잘 읽었다고 인사를 하시고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되는 걸 보고 <오마이뉴스>는 정말 탄탄한 독자층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오마이뉴스>가 광장의 촛불과 같은 역할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길 기대할게요."

-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잖아요. 국민 모두에게 뜻깊은 해죠. 더구나 역사학자는 느낌이 남다를 거 같은데.
"무엇보다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학문 연구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최근 많은 3·1운동 관련 논문들이 발표되어 그동안 당연시했던 3·1운동에 관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3·1운동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요."

- 이전에는 그렇게 안 많았나요?
"지금처럼 집중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많은 근대사 연구자들이 3·1운동에 관심을 갖고 좋은 성과들을 발표하면서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을 보는 역사상에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가 돼요."

- 변화라면 어떤 걸 의미하나요?
"예를 들어 많은 분이 1919년 3월 1일에 만세 시위가 서울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계신데 사실 서울을 비롯해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이렇게 7개 도시에서 일어났어요. 서울 빼고는 모두 북한에 있는 도시고요. 3월 1일에 만세 시위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해주라는 곳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식이 있었고 개성에서는 여성들이 독립선언서를 배포했거든요. 두 곳도 북한 지방에 자리한 도시이죠. 이런 사실이 최근에 주목을 받았어요. 3.1운동에서 북한 지방에 자리한 도시들이 한 역할을 주목하게 된 거죠."

- 3·1운동은 하루로 끝난 게 아니지 않나요?
"맞아요. 3월 1일 7개 도시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어 두 달 넘게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북한 지방에서 2주 동안 활발히 일어났고요. 3월 중후반부터 중부와 남부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제일 시위가 많이 일어난 시기는 3월 말 4월 초예요."

- 북쪽에서 왜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거죠?
"처음 3·1운동을 준비한 사람들이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거든요. 민족 대표 33인 중 31인이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고 불교는 2명이에요.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3·1운동을 준비했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북한 지역이었어요."

독립 없이 평화 없다

- 독립선언서가 여러 버전이라던데.
"국내에서 3월 1일에 발표한 독립선언서가 대표적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해외에서 발표되었어요. 2·8 독립선언서는 도쿄에서 나왔고 대한독립선언서는 중국 지린성에서 나왔고 1919년 2월 25일 연해주에서 만들어진 대한 국민의회라는 임시정부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는 두 가지 버전이 남아있어요."

- 독립선언서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에 근거하여 민족의 자주와 민족 간 평등, 거기에 기반을 둔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주장했어요. 보통 자기 문제에 국한되어 생각하는데 1919년 당시 사람들은 민족을 넘어 동양과 세계 평화를 생각한 건데 이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도 독립선언서마다 동양평화와 세계평화가 많이 나오는 걸 보고 놀랐어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냐면 동양과 세계가 평화로우려면 우선 우리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즉 조선이 독립해야 동양평화도 세계평화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당시에 '독립 없이 평화 없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평화를 원하는 보편적 인류임을 강조하기도 했고요. "

- 민족이란 개념은 언제 생긴 걸까요?
"민족이란 단어는 대한제국 시기 잡지에도 등장하니 새로운 게 아닌데, 3·1운동 끝나고 사람들이 말하길, 같이 만세를 부르며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나만 독립을 원한 게 아니고, 우리 동네는 물론 모든 한국인이 독립 원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리가 민족이라는 걸 자각했다고 얘기해요. 촛불시위 때 보면 촛불 든 시민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친절하잖아요. 나와 같은 생각으로 거리에 나왔다는 동질감이 3·1운동 때도 있었던 거죠."

- 3·1운동은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알고 있어요. 그 정신이 이어진 게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3월까지 열렸던 촛불 같은데.
"촛불시위 때 이런 걸 전통이라고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3·1운동에서 사람들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 만세 시위를 했어요. 이 만세 시위가 비폭력평화 시위인 거죠. 3·1운동에서 폭력 시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폭력 시위를 계획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100주년을 맞아 오늘의 시각에서 3·1운동을 더욱 가깝게 느끼는 건 그때도 비폭력평화 시위를 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2016~2017년에 일어난 촛불 시민혁명의 뿌리로서 3·1운동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 만약 촛불시위가 없었다면 100주년을 어떻게 맞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 3·1운동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요. 임시정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임시정부는 민주 공화정을 선포하고 27년 동안 이어져 온 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방 직전에 좌우합작 정부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되고요."

- 임시정부는 실질적인 정부인가요? 상징적인 건가요?
"당시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있었어요. 임시정부와 같이 정부 형태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독립운동가들도 있었고 처음에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안창호처럼 나중에 민족유일당 형태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독립운동가들도 있었어요. 지금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독립운동에서 임시정부가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생각이 달라요. 다만 최근에 임시정부가 민주 공화국을 선포하고 27년간 지속해 온 점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 지금도 건국 논란이 있어요. 누구는 올해를 건국 100년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2048년을 건국 100년이라 하는데, 건국이 중요한가요?
"건국 논쟁에 대해서도 저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생산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2008년에 건국절 논란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역사학자들이 낸 성명서에 뭐라고 했냐면, 8월 15일을 광복절로 부른 이유는 1945년 독립기념일과 1948년 정부 수립을 동시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굳이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부르면 그중 하나만 기념하는 셈이 되니 더 이상 논란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망으로 우리는 해방을 맞아요. 그리고 3년의 미군정을 거쳤어요,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하고 지금까지 온 건데 지금 우리는 독립국가가 맞냐는 의문이 있어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5·24조치 해제 문제로 시끄러울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허락 없이 해제 못 한다고 하잖아요.
"지금 그 문제만 보면 정말 자주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이룬 성과를 볼 때 그 하나만으로 자주성을 의심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중요한 문제에서 우리가 힘을 발휘 못 하는 건 안타깝지요. "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잘 예우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근본 원인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민족반역자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흔한 말 중 하나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74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 후손에게 선대의 죄를 물을 수도 없어요. 그럼 이 문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저는 친일 청산 문제는 정서적으로는 아직일지 몰라도 과거청산 관점에서 보면 해결되었다고 봐요.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에 나라에서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친일 청산에 노력했고 시민들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돈을 모아 친일인명사전을 냈잖아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잊지 않고 정부와 시민이 함께 친일청산에 노력한 것은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과거청산 사례라고 생각해요. 물론 친일을 청산했다고 해도 비판은 계속되어야 하지만요. 지금은 친일파 얘기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잘 예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아직 발굴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복지혜택을 드려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예요. 친일 진상 규명에는 노력했지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예우하는 일은 아직 미완인 점을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번 강조하셨죠."

- 친일파 후손이 국가 고위직에 오르는 건 문제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친일 문제를 청산한다는 것은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인데 후손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건 문제라고 하는 의견도 있어요."

- 지난주 이순자씨가 전두환씨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해서 국민들이 분노했는데.
"놀랍죠. 말이 안 되는 얘기고 정말 기가 막혀요. 하지만 그런 개인의 주관적 평가가 역사에 모두 남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상식으로 한 평가가 역사에 기억되는 거잖아요."

- 오늘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191년에 있었던 3·1운동과 임시정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비폭력 평화 시위와 민주공화국 수립이라는 전통을 만든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지난 100년간 지켜왔다고 생각해요."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으로 그런 전통을 잘 지켜나가면서 행복, 평화, 번영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특히 3·1운동을 통해서 독립의 열망을 세계에 보여줬듯이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뤄 세계와 인류 평화에 큰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 그럼 남북통일도 우리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동양과 세계 평화 관점에서 봐야 하나요?
"맞아요. 제가 작년 4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갔을 때 거기서 제가 '곧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오면 남북 역사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다 박수를 쳤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낸 공동 역사 교과서를 토론할 때보다 더 큰 기대를 담고 있는 박수라 놀랐어요.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유럽인들이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한반도래요. 내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는 얘기겠죠."

- 하고 싶은 말 해주세요.
"3·1운동 100주년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한번 100년의 의미를 돌아보며 앞으로 미래 100년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를 고민하는 2019년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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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