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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은 tv 화면도 작고 깨지기 시작한 tv
▲ 10년 넘은 tv 화면도 작고 깨지기 시작한 tv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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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구 친정엄마가 오셔서 하룻밤을 지내고 가셨다. 잘 도착하셨나 싶어 전화했더니 엄마가 예상치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영아, 엄마 다음 달에 곗돈 타는데 너희 집에 TV 한 대 바꿔라. 그 돈 보태서 좋은 걸로 사."

둘째 형님이 준 TV! 이제는 10년이 훌쩍 넘은 TV
아들 둘의 솜씨로 화면이 깨지기 시작하다

친정엄마 마음에는 우리 집 TV가 편하지 않았나 보다. 결혼한 지 12년이 되도록, 여전히 작고 화면조차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저 TV를 바꾸지 않고 사는 게 엄마 마음이 불편하셨던 게다.

스물네 살이던 큰딸이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시집보낸 게 늘 마음이 아프다던 엄마였다. 그래서 큰 딸이 조금이라도 궁핍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마치 엄마 탓으로 여기기도 하셨다. 이 TV 역시 내 돈 주고 구입한 게 아니었다. 시댁 둘째 형님이 우리들 신혼집 마련할 때 주신 TV였다.

그러고 보니 저 TV는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서 여전히 핀잔을 많이 받는 식구나 다름없다. 워낙 없이 시작한 결혼이었기에 시댁 방 한 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다음 첫 신혼집에 5년간 살다 지금 아파트로 입주했다. 15년 된 아파트에 살다 새 아파트에 입주했기에 설렘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 아파트 입주 후, 가장 먼저 인터넷 이전 설치 요청을 했다. 방문한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며 한마디를 하셨다.

"허허허.
TV가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보통 TV 정도는
새 아파트 입주하면서 하나씩은
다들 바꾸시던데. "


돌이켜 보면 정말 우리 집에 온 사람마다 다들 TV 보고 한마디씩은 했다. 명색이 새 아파트에 입주했고, 남들도 보는 TV 정도는 좀 바꾸지 그러냐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불편함이 없어 아주 만족하며 산다. 아들 둘 키우는 집안이라 좋은 가전제품의 필요성을 딱히 모르겠다. 저 TV를 보는 사이 아들 둘이나 태어났고,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괴롭힘의 훈장으로 화면도 조금씩 깨졌다. 그만큼의 우리의 세월도 함께다.

신랑 친구들의 집들이 선물, 12년 넘은 청소기

워낙 일찍 결혼한 우리 부부이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들의 결혼 생활은 호기심 대상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시댁에 살 때 집들이는 언감생심이었다. 일 년 만에 내 집 마련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고자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15년 된 아파트였기에 손 볼 곳이 아주 많았다. 그때 신랑 친구들이 직접 방문해 페인트칠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 번씩 술자리를 하면 그때를 추억 삼아 꺼내곤 한다.
 
10년 넘은 청소기 분가 할 때 신랑 친구들이 사준 청소기. 몸통과 입구가 서로 다른 녀석들의 합체가 걸작인 청소기.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청소기?
▲ 10년 넘은 청소기 분가 할 때 신랑 친구들이 사준 청소기. 몸통과 입구가 서로 다른 녀석들의 합체가 걸작인 청소기.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청소기?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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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결혼 생활은 1년이지만, 시댁 방 한 칸에서 시작한 신혼이기에 분가하던 날 이삿짐이 딱히 없었다. 방 한 칸에 있는 살림이 이삿짐 전부였다. 이사하던 날, 용달차 한 대만 불러 신랑 친구들과 함께 이삿짐을 날랐다. 그런 신랑 친구들이 결혼 일 년 만에 내 집에서 집들이하던 날 사준 청소기다.

스팀 기능도 되는 청소기라 아주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넘는 세월을 비켜 갈 수 없었다. 먼지를 흡입하는 입구 롤러가 고장이 나서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이 녀석을 보자마자 아주 오래된 제품이라며 이건 부품도 없다는 거다. 서비스 센터 직원은 웬만하면 하나 새로 사시라며 웃었다. '고장 난 거라곤 입구 부분뿐인데 ...' 내심 아까웠다. 그리고 알겠다고 돌아서려던 찰나, 그 직원이 고장 나서 못 고치고 폐기 처분하려던 청소기가 있는데 우리 집 청소기와 호환이 될 거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새것처럼 말짱해진 청소기로 재탄생했다. 입구 쪽 부분 모델은 '뉴 회전 싹싹'이지만, 청소기 몸통 모델은 '스팀 CYKING'이다. 버려질 뻔한 입구 부분이 우리 집 청소기 몸통과 합체되었다. 녀석들 모델명은 다르지만, 기능은 완벽한 조화의 걸작이다. 무엇보다 0원에 청소기가 재탄생됐다.

서비스 센터를 나설 때 우리를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비스센터 직원의 미소도 상관없었다. 그저 0원에 청소기가 말짱하게 재탄생했으니 얼마나 기쁜가?
그 후로도 아주아주 잘 쓰고 있는 청소기다. 요즘 '다**이다', '그보다 저렴한 차**이다' 하며 각기 각색의 다양한 전자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우리들의 세월만큼 함께 하는, 추억 가득한 이 청소기가 제일 좋다.

12년 넘은 밥솥, 동생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받은 경품
 
10년 넘은 밥솥 분가할  때 동생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받은 경품
▲ 10년 넘은 밥솥 분가할 때 동생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받은 경품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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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집 식구들의 든든한 한 끼 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밥솥이다. 내가 실수로 내솥을 떨어트려 손잡이가 깨져서 교체한 거 말고는 아주 잘 움직이는 밥솥이다. 이 밥솥 역시 결혼 후 일 년 만에 분가하던 시점에 동생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아온 것이었다. 동생이 언니 내 집 마련 선물로 줄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요즘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나오고 작고 가벼운 밥솥도 많이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이 밥솥에 정도 많이 간다. 힘들게 분가하던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 애정 어린 가전제품 중 하나다. 무엇보다 언니가 내 집 마련해서 분가할 때 딱 맞춰서 경품에 당첨된 게 너무 기쁘다던 동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10년 넘은 냉장고 가격도 저렴하고 고장 한번 안 난 튼튼한 냉장고
▲ 10년 넘은 냉장고 가격도 저렴하고 고장 한번 안 난 튼튼한 냉장고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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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처럼 결혼할 때 가전제품 매장에 들러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경험을 해 보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 최저가 검색 후 제일 작고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면서 발견한 냉장고.

그때 당시 레드 색상의 가전제품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오래 써도 싫증 나지 않는 화이트로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한 것 같다. 문제는 이 냉장고를 결제한 지 한 달 만에 겨우 배송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분가 후 한 달 동안은 냉장고 없이 생활했다는 이야기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샀다면 바로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했더니 배송 일자도 우리가 맞춰야만 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배송받길 잘했다 싶은 이유가 있다. 냉장고 설치 기사분이 원래 냉장고 램프 색상이 주황색이었는데 한 달 사이 백색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냉장고 없이 한 달 산 덕분에 백색 램프가 달린 최신 냉장고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고장 한번 없이 아주 잘 가동되는 우리 집 냉장고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또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위 이웃집 엄마들 보면, 새 아파트 입주하면서 이층침대며, 가구며, 가전제품을 마치 두 번째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처럼 최신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아이들도 같은 나이이니, 결혼도 다들 비슷한 시기에 했다.
 
10년 넘은 화장대 신혼 때 구입한 화장대. 세월에 벗겨지는 장수 화장대.
▲ 10년 넘은 화장대 신혼 때 구입한 화장대. 세월에 벗겨지는 장수 화장대.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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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시댁 방 한 칸에서 시작할 때 가구들이 12년째 함께 하고 있다. 화장대도 물론 침대도 말이다. 스물넷 꽃다운 내 얼굴부터 서른 다섯 살 지금의 나를 오랫동안 묵묵히 바라본 거울이다.

스물넷 새댁부터 아들 둘 키우는 아줌마가 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봐 준 화장대다. 우리보다 한 해 일찍 결혼한 선배의 충고대로 당시 화장대는 좋은 거로 구입했지만, 세월에 벗겨지고 있다. 우리 남편이 더 벗겨지지 마라며 투명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했다.

어지간하다던 눈빛이 아닌
대단하다는 마음으로
느껴지던 순간


나는 이게 삶이었고, 내 소중한 추억들이었다. 남들 보기에는 어지간하다 할지 몰라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청울림 강연에서 와이프가 쓰던 냉장고 사진을 보여주시며 지금도 쓰고 계신다는 글에 무릎을 쳤다. 또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의 김유라 저자도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던 밥솥이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글에 나도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남들이 나를 어지간하다 바라볼 때,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심 나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 삶의 훈장과 다름없는 가전제품들, 앞으로 우리들의 역사도 다시 새롭게 쓰려고 한다. 내가 대단히 여기는 그들처럼 말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욕심많은워킹맘: http://blog.naver.com/keeuyo) 및 카카오 브런치(https://brunch.co.kr/@keeuyo)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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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회계팀 과장, 부업은 글쓰기입니다.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특기로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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