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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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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풍경들이 있다.

풍경 하나.

"지역산업을 뒷받침할 도로·철도 등 인프라를 확충해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을 마련하겠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9일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프로젝트'로 더 잘 알려진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총 23개의 사업에 24조10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풍경 둘.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3일 전인 1월 26일, 독일에서는 2038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 완전 폐기 방침이 마련됐다. 이에 따르면, 당장 3년 후인 2022년까지 현재 84곳의 화력발전소 중 1/4을 감축해야 한다. 독일은 현재 2015년 기준으로 전체 전기의 44%가량을 화력발전소로 생산한다. 한국과 비슷하다.

풍경 셋.

"할아버지, 눈사람이 뭐예요?"

1월 18일, 독일에서는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3만 명의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했다. 그때 나온 문구다. 요구사항은?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날에는 벨기에에서 1만2000명의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했고,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10대 청소년들이었다(Graeme Wearden, Damian Carrington, "Teenage activist takes School Strikes 4 Climate Action to Davos.",  The Guardian, 2019.1.24.)
 
 2019년 1월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마지막날. '기후변화에 대한 학교 동맹휴업'에 참가한 10대 학생들의 모습.
 2019년 1월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마지막날. "기후변화에 대한 학교 동맹휴업"에 참가한 10대 학생들의 모습.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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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떤 사회로 나아가고 있나

문재인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하면서 '국가 재정 낭비' '총선을 앞둔 퍼주기' 등 여러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타당하다. 울산 산재전문 공공병원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인프라 사업이 있긴 하나, 대부분은 교통, 물류망 및 도로⋅철도 인프라 확충 등 대규모 토건 사업이다.

지금까지 추진된 예타 면제 사업비에 이번에 발표된 사업비를 합하면 이명박 정부 때의 예타 면제 사업비와 얼추 비슷하니 더 그럴 만하다.

예타 면제가 문제인 것은 국가 재정이 낭비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이 좀 더 미래지향적이며 환경친화적인 상상력 속에서 제시되지 않은 게 또한 문제다.

정부가 기후변화를 막고 대한민국 전체를 생태사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할 때에 대규모 토건 사업이라는 퇴행적 방식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사회 변화의 방향은 갈피를 못 잡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독일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방침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탈핵에 이어 탈석탄까지 독일의 '일관된 노력'은 그야말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촛불항쟁이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세계를 선도했다. 그러나 촛불정부는 한국당(전신 새누리당 포함) 대통령의 토건 사업을 따라가고 있다. 무척 속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은 기후변화 대응 그 자체도 매우 미흡하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면서 내놓은 계획의 함량 미달은 여러 곳에서 지적됐다. 거기다가 석탄화력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고, 이번엔 예타 면제까지 더해졌다.

기본소득과 기후행동을 결합하자
 
 기후변화는 이미 인류가 당면한 문제다. 그것도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는 이미 인류가 당면한 문제다. 그것도 생존을 위협하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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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벨기에, 스위스에서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에 나온 10대 학생들은 자신들이 살 미래를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길 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행동'은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반면, 한국에서 기후변화는 시민들의 관심이 가장 덜한 분야다. 이럴 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절대 다수 시민이 '기후행동'에 나설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유럽처럼 동맹휴업과 시위라는 방식의 기후행동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의 실천이 사회변화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구상이 있어야 한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은 기본소득과 기후행동의 결합이다. 보통 기후행동이 사회운동 수준의 활동을 말하는 데 비해 여기서 의미하는 '기후행동'은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생활 속의 소소한 실천들이다. 하지만 기본소득과 결합하면 거대한 사회운동적 효과를 내지 말란 법은 없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실험인 기본소득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시도되고 있으나 확실한 위력을 선보이지는 못하고 있는 (생활 속의 에너지 절약 실천으로서의) 기후행동이 서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연재글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었다(관련 기사 : 배우 하정우의 공상? 현실로 만들어보자). '녹색참여소득'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친환경 이동'은 온실가스를 줄일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도 없앤다. 교통체증도 해결된다. 기본소득지급으로 소득이 늘어날 뿐 아니라 시민의 건강도 좋아진다. 앞으로 하나하나 짚어볼 예정이다.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가정에서 전기·가스·수도 등을 기준 이내로 사용할 경우 기본소득을 주는 건 어떨까. 친환경 제품 구매, 로컬푸드 이용, 플라스틱 미사용 제품 구매 등과 연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뚱맞은 소리 아니냐고? 이미 유사한 서비스가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행동을 소득과 연결시킨다? 이미 유사한 서비스가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행동을 소득과 연결시킨다? 이미 유사한 서비스가 있다.
ⓒ 그린카드누리집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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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연결만 안 됐을 뿐이지 이미 유사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생활에너지를 아끼거나 녹색소비를 하면 '에코머니 포인트'를 주는 제도가 있다.

[탄소포인트제] "가정에서 생활에너지(전기, 수도, 도시가스) 절약 시 환경부 및 각 지자체에서 최대 7~10만 점까지 에코머니 포인트로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녹색소비] "유통매장 및 제조사의 친환경 제품을 에코머니 제휴카드로 결제 시 최대 5%까지 에코머니 포인트로 적립해 드립니다."


그린카드 서비스 제공 사이트에서 따온 내용이다. 요컨대 '녹색참여소득' 구상은 에코머니 포인트를 일정 수준 쌓으면 기본소득을 주자는 것이다.

에코머니 포인트와 녹색참여소득이 다른 점은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생활양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종이배와 어선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모두 물에 뜨지만, 고기를 잡으려면, 종이배가 아니라 어선에 올라타야 한다.

그린카드는 시행된 지 수 년이 지났고 이미 1000만 장 넘게 발급됐다. 그러나 사용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에코머니 적립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것이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거나, 스님처럼 고행하며 살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소비의 패턴과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시민의 친환경적 생활을 촉진할 강력한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윤주도 기후대응이 아니라 소득주도 기후대응
 
 환경단체 등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산업계는 국제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환경단체 등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산업계는 국제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 Pix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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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은 행방이 묘연하고, 예타 면제 발표로 토건세력만 배불리게 생겼다.

이런 사회라면 불평등 완화는 점차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토건사업의 확대는 토건세력 간의 불평등은 완화 할지 몰라도, 지역불균형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도 완화하지 못한다는 것이 지난 역사의 교훈이다.

동시에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생태전환에 역행하는 사회분위기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도무지 의미 있게 진행되기 힘들다.

사회는 보다 정의로워져야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이윤추구행위나, 기후대응을 이윤추구행위가 주도하도록 하는 것 모두 성찰의 대상이다. '이윤주도 기후대응'이 아니라 '소득주도 기후대응'이 필요하다.

녹색참여소득의 도입은 시민을 기후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동시에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할 기후변화 대응,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고 빠른 속도로 내달려야 한다는 것인데, 서커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지금 인류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 기본소득과 기후대응의 결합과 같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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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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