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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탁한 빨래를 꺼내 드라이에 넣고는 다시 3-40분 더 건조해야 한다
 세탁한 빨래를 꺼내 드라이에 넣고는 다시 3-40분 더 건조해야 한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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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디는 우리 동네 코인 런더리 직원이다. 정식 직원이라기보다는 매니저인 스티브의 Off Duty(비번) 날에 '땜빵'을 하는 임시 직원이다. 50대 후반 정도 되는 아줌마로 말을 못 하는 장애인이다. 신디가 세탁소에 있는 날이면 고민이 된다. 내일 맡길까, 다른 세탁소로 가? 그녀의 세탁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다. 

단골손님의 고민

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 세탁소를 이용하는 나름 단골이다. 이 곳을 알게 된 건 1년 정도. 이불부터 시트, 배갯잇, 대형 타월 등 등 매번 큰 빨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힘 좋고 용량 큰 세탁기가 아쉬웠다. 그러다 발견한 Friendly Laundaromat. 처음 이 곳을 이용하기 시작했을 땐 모든 게 어리바리했다. 동전은 몇 개를 넣어야 하는지, 세제 넣는 구멍은 왜 이렇게 많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누가 봐도 초짜 같은 모양새로 끙끙대고 있으니 갓난아이를 업은 히스패닉 아줌마가 '아끼 아끼(여기 여기)'하며 파란색 구멍을 알려줬다. 하염없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 서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던지 구석 벤치를 알려준 건 팔뚝 문신이 요란한 청년,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드라이 머신 안에 있는 내 빨래 양을 눈대중해보더니 '뜨레스'라고 손가락 세 개를 펴보여주며 쿼러 갯수를 조언해줬다. 

세탁과 건조, 정리까지 세탁소는 내 두 시간 정도는 쉽게 잡아먹었다. 그러다 'Drop-Off(드롭 오프)' 서비스를 알게 됐다. 빨래를 통채로 건네 주면 세탁을 한 후 드라이를 거쳐 빨래 바구니에 고이 개어 보관까지 해 주는 서비스다. 난 갖다 주고 다시 들고만 오면 된다. 이런 신세계가~ 하며 난 이 서비스를 애용했고 덕분에 훨씬 여유 있는 시간 활용이 가능해졌다. 

드롭 오프 한 빨래는 이상하게 내가 한 것보다 더 하얗고 더 짱짱했다. 다른 동네는 직접 픽업에 배달까지 해주기도 한다지만 난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세탁소에 신디가 있는 날이면 좀 난감해진다. 

"앗, 오늘 스티브는 없나 보네...?"

빨래를 든 내가 두리번거리면 그녀는 어어어... 하며 자기에게 주면 된다고 과장된 몸짓으로 말한다. 

"아.. 어떡하지... 스티브한테 할 얘기도 있고... 그냥 내일 올게. 안녕"

이렇게 휙 나오면 어어어... 하는 그녀의 실망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하지만 매번 빨래를 두 번씩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서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선 가게 밖에서 매번 카운터 쪽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신디야 , 미안해  
 
 익숙하게 빨래를 돌리던 꼬마가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며 숙제를 하고 있다. 흔한 동네 세탁소 풍경이다.
 익숙하게 빨래를 돌리던 꼬마가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며 숙제를 하고 있다. 흔한 동네 세탁소 풍경이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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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가 쉬는 날이 매주 목요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날만 안 가면 신디와의 불편한 조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 목요일 딱 걸려 버렸다. 갑작스레 급한 빨래가 생긴 거다. 아예 처음부터 세 블록을 더 지나서 가야 하는 'Clean Laundromat'에 가보았다.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보다 두 배 비싼 값을 부른다. 

"아무리 그래도.. 바가지를 씌우면 안 되지..."

어차피 1시간 거리의 한인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빨래 바구니를 다시 차에 실었다. 아침에 맡기고  오후에 들고 오리라 여유 있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트 가는 큰 길가에 있는 초대형 빨래방에 들어가 보았다. 주차장 입구에 <매주 수요일 군인 무료>라고 써 붙여 놓은 곳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군인은 소형 머신만, 딱 한 번만> 안내문이 보인다. 여기는 앞 가게보다 훨씬 비싸면서 내일 아침에나 빨래를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이 곳도 아닌 듯. 

빨래방 찾다 아침 시간을 훌쩍 보낼 수는 없는 일. 주차장에 서서 구글 지도에 Laundry를 찍고 검색을 해봤지만 한참 떨어진 쇼핑가 쪽에 몇 군데가 보일 뿐이다. 

1시간 남짓 빨래를 싣고 동네를 돌고 있는 내가 매우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오늘만 신디네 가게를 가기로 했다. 대신 깨끗이 해달라고 당부를 할 참이었다. 띠리링. 입구에 매단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가게에 들어서는데 신디도 스티브도 안 보인다. 잠시 기다리니 구석에서 빨래를 꺼내던 청년이 뭔 일이냐고 물어본다. 

"어? 아.. 빨래 맡기려고."
"응.. 그거 내 일이야. 저기 저울에 올려놔 봐."

무게를 확인한 후 날렵하게 영수증을 끊어주는 청년에게 난 조심스레 신디의 안부를 물었다. 

"글쎄...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무심한 청년의 말에 마음속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왔다. 신디는 잘렸을까? 아니면 다른 데? 생각해보니 난 그녀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안 건 빨래를 하던 다른 손님들이 대신 말해준 거였다. 그들은 세탁소에 익숙지 않아 어리바리한 나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주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말 못 하는 신디를 대신해 내게 통역을 해주었다. 가격이 얼마고 빨래는 몇 시까지 찾으러 오라는 얘기도 신디 옆에 서 있던 아무 손님 중 하나가 해준 얘기였다. 생각해 보니 돌아서 나가는 나에게 신디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가지 말라고 소리친 이들도 그 이웃들이었다. 

"가지 마, 신디가 그 빨래를 할 수 있대!!"

말끔히 개켜진 빨래를 서랍에 넣어두며 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디야 미안해. 어디서건 좋은 사람들과 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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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시민 기자. NY Tour Guide Licencee, airbnb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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