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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하거나 세를 얻어 이사 갈 집을 조사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집이 어떤 구조인지도 살펴봐야 하고, 집 내부의 인테리어는 이상하지 않은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다양한 요소를 점검해야 한다. 집 자체뿐 아니라 집의 외부도 살펴야 한다. 집 근처에 유흥가가 있어 치안이 나쁘지는 않은지, 소음이 심한 지역이라 매물이 저렴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야 한다. 여간 힘들고 품이 드는 일이 아닌 것이다.

집을 얻을 사람은 엄청난 노력으로 집을 살펴본다. 그런데 집을 얻을 사람만큼이나 집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집의 문짝, 창틀, 집 주변의 거리와 들판, 풀숲까지도 샅샅이 살펴본다. 심지어 하수구나 배관, 환기구, 다른 건물에 가려진 은밀한 틈새까지도 찾아본다. 집뿐만 아니라 거리와 도시까지도 살펴보는 것이다. 이들은 집 구조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집도 내 집처럼 세밀하게 살핀다. 그리고 내 집처럼 들어간다.

이들은 바로 도둑들이다.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도둑들은 주택의 건축과 도시 구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틈새에서 당신의 재산을 노린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
 도둑의 도시 가이드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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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는 도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시와 주택 이야기다. 저자 제프 마노는 미술사를 전공한 언론인으로, 뉴욕타임스에 건축과 환경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도둑과 도시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헬기를 타고 도시를 조망하거나, 오래 전에 사망한 전설적인 도둑의 삶을 찾아보는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자물쇠 따는 법에 대해 배우고, 경찰들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으면서 굉장히 독특하고 고유한 주제의 책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공간에 충분히 익숙해진 상황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지, 어떤 방법을 통해서 환기를 할지, 어디서 누워서 지낼지 대강 다 알고 있다. 때문에 주택과 도시에 대해 익숙해져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건물을 물색하는 도둑의 입장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살아갈 곳, 이용할 곳으로 보였던 주택들이 도둑들에게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방이 나에게는 평범한 장소여도, 도둑들에게는 다른 건물로 침입하기 위한 중간 다리나 땅굴을 파기 위한 거점으로 보일 수 있다. 안전을 위한 대피로도 도둑에게는 침입 통로에 불과해 보일 수 있다. 아름다워 보이는 정원이 도둑에게는 타인의 시선을 피하는 엄폐물이 될 수 있다.

도시 역시 그렇다. 우리는 도시의 지반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지상의 건물을 바라보며 산다. 우리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에도 무심한 시선을 보낼 뿐이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기반암이 단단한 도시와 부드러운 흙으로 구성된 도시, 골목길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시와 자동차 사용이 일반화된 도시에서의 절도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기반암이 단단한 도시에서는 땅굴을 파는 절도 수법은 불가능하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미국 동부의 도시에서는 범죄자가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사라진다. 그러나 자동차를 통한 이동이 일반적인 미국 서부의 로스앤젤레스같은 도시에서는 은행강도들도 자동차 이용을 선호한다.

과거, 로스앤젤레스 인근 고속도로의 출구 또는 입구에 위치한 은행들은 은행강도들의 목표물이 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이동을 용이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이에 맞서는 경찰들도 헬기를 이용해서 범인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다. 책은 이렇듯 도둑과 경찰들도 건축가 못지않게 도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건축 환경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준법정신이 뛰어난 시민이라고 해도, 경찰과 침입절도범이 도시에서 벌이는 추격전에서 한두 가지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한 가지 근본 전략이란 도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도시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를 보려고 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는 그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P98
 
이 책은 주로 미국과 영국의 도둑 이야기를 모았다. 도둑들은 건물을 자기가 이용하고 싶은 대로 이용하고, 무단으로 출입한다. 게다가 출입하는 과정에서 문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출입구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창문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도 있고, 석고보드 벽을 잘라내서 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일정한 법률 규정 때문에 만들어진 건물의 구조도 그냥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쓴다. 막다른 배수관 도면을 통해 도주로를 마련하거나 잊혀지거나 묻힌 옛 수로를 활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그들은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독자들도 그들이 발견한 가능성에 놀라게 된다.

도둑들의 건물의 목적과 용도를 무시하는 행동과 이를 추적하는 경찰의 모습을 쫓아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앞으로 나아가며 진행할 수 있는 퍼즐 게임을 푸는 느낌을 받거나,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은 불법을 저지르는 절도범이라는 새로운 제3자의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의 저자가 절도범의 입장에서 범죄를 미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절도는 단순한 충동이나 절제 실패로 인해 발생하며 범죄가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다. 저자 본인도 자신과 가까운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절도를 당한 적이 있다.

책은 타인의 주거지에 침입하는 절도 행위는 피해자를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시키며 일상 생활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언급한다. 또한 침입 절도는 타인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생을 장기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는 범죄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생활공간이라는 주제만 기억하고 범행은 잊자.

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열림원(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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