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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후 분노와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는 기성세대라는 죄책감에 힘들어 할 때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인터넷카페를 알게 돼 바로 활동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5년동안 세상은 유가족이라 부르는 그들이 나에겐 언니였고 난 250명의 이모였다. 당시 상담심리 석사과정을 병행하던 난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세월호 희생 학생 학부모의 심리경험'이라는 주제를 택해 논문을 썼다. 이 글은 수많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들은 그들의 말을 바탕으로 썼다. 참고로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세월호 참사 직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마음으로 안산의 엄마들이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된 카페이다. - 기자말

2014년 4월 16일 그 후 5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며 도라에몽이 되고 싶다던 초등학생 우리집 막내는 이제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고, 30대 후반이던 필자는 벌써 40대 중반으로 나아간다. 간혹 나이가 헷갈릴 때 세월호가 몇 주기인지를 헤아려 내 나이를 확인한다.

우리에게 이제는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된, 세상이 유가족이라 부르는,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5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을까?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유가족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유가족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2019.2.12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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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

2014년 4월 15일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다음 날 출근길 혹은 집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설레는 마음을 통화나 문자로 전하던 아이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살아있을 거라고, 살아서 만날 거라고, 그래서 갈아입힐 옷을 싸 갔다는 부모들이 몇 시간 후에는 아이의 시신이라도 찾길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말에는 수학여행 중에 이름표를 바꿔 달거나 옷을 갈아입는 놀이를 했을 거라고, 우리 아이는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고 한사코 자식의 죽음을 부정했다.

아이가 죽어 돌아왔는데 잘 됐다고 축하를 받는 팽목항을 미안해하며 떠난 부모들은 장례 후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내가 잘 못 살았나? 내가 팔자가 세서, 복도 없고 그래서 잘 있던 우리 애가..."
"내가 힘 있는 아빠였다면..."
"수학여행 가서 오름에 오르면 땀 흘릴까 봐 손수건을 싸줬거든. 손수건이 이별의 표시라던데..."
"아이를 잃었는데 밥 먹는 것도 속상하고, 웃으면 미안하고... 아무리 아파도 병원도 못 가. 너무 너무 미안해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고 한 게 이렇게..."


분노

한동안 자책하던 부모들의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우왕좌왕하며 약속을 안 지키고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정부,
여론몰이를 하며 거짓을 보도하는 공정성 잃은 언론, 
정치를 하는 듯 눈치 보는 변해 버린 종교계, 
세월호에 관심이 없는 이웃들. 

"내가 보고 있는 상황과 전혀 다른 것들을 보도하는 언론에 화가 나서...."
"하나님 뜻이다라고 교회가 강요해요, 교회가..."
"친구 모임에 갔는데 자꾸 일상으로 돌아오래..."


버티기

분노하던 부모들은 이내 아이들을 기억하려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으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아들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아들 옷을 입고 활동하던 아버지, 
영웅이었던 아들의 엄마답게 살자고 결심한 어머니, 
슈퍼스타를 꿈꾼 딸을 위해 연극을 하고 합창을 시작한 어머니, 
'내가 전교 1등 엄마다'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친다는 어머니. 

부모들은 또 끈질긴 정부의 방해에 오기가 생긴다며 수색과 인양의 전문가가 되어 갔다.

"'엄마 잘하고 있지?'라고 밤마다 아이 방에 가서 물어봐."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못되게 굴수록 우리는 더 강해진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못할 수도 있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우리는 끝까지 간다."


이렇게 부모들은 아이를 추억하며 절망 속에서 더 강해지기를 결심하며 버텼다.

슬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열하기도 힘든 많은 일이 있었다.

단원고 교실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명예 졸업식을 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부가 바뀌고,
세월호가 올라왔다.

이렇게 긴 시간 많은 사건 속에 부모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5년이 지나 다들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난 그대로야. 그렇다고 우릴 도와주는 분들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도 못하겠어. 미안해서. 실컷 웃고 집에 돌아가면..."
"뭐 하는 짓인가 싶지."
"자다가 일어나서 ㅇㅇ 아빠 나 등 좀... 등 좀 두드려 줘."


부모들이 자녀를 잃고 난 후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 적어도 4-5년이 걸린다는데 그렇다고 그 슬픔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도가 거세게 이는 바다를 보며 힘없는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죄책감에, 

기다리는 동안 마구 길어버린 손톱에 아이의 시신이 올라왔을 때 행여 내 새끼 다칠까 만져보지도 못하고 보낸 어머니의 안타까움에,

돈이 없어서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아들의 바람을 거절한 것이 한이 된다던 아버지의 이야기에,

본인들 표현으로는 진도체육관에서 짐승처럼 울었다고 한다.

이웃

이 슬픔과 분노 그리움으로 얼룩진 이들의 뒷모습에 이웃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시간을 조금 내어드리는 것, 내 마음을 나누는 것,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이 쏟아질 때 함께 있어주는 것, 딱 한 걸음 뒤에 저들이 돌아보면 보이는 그 자리에.

어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과 종교, 제도들이 오직 산 자만을 위한 것이여야 하겠는가?
 
 세월호 참사 5주기 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5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5주기 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5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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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열 여덟 예쁜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수학여행. 스물 셋 더 예쁜 나이의 너희 모습이 그려지는구나.

이왕 하늘 나라로 떠난 수학여행.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도, 친구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도, 너희를 구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한 원망도 다 두고 가거라.

청와대 근처 청운동에서,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굶고 쓰러지고 노숙했던 너희 부모님 모습도 보지 말고, '왜'라는 짧은 질문에 수천 수 만가지의 변명을 일삼았던 비겁한 대한민국도 보지 말고, 왜곡된 보도를 일삼았던 가여운 공영방송의 모습도 보지 말고, 이제 그만하자 하는 모자란 국민의 소리도 듣지 말고, 엄마의 오열도 아빠의 가슴 치는 소리도 듣지말고 가거라.

대신 사고 난 날 너희를 구하겠다고 목숨 걸고 나선 진도 어민들 마음,
컵라면에 쪽잠에 너희 시신이라도 가족에게 데려다주겠다던 민간 잠수부들의 마음,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눈물로 달렸던 택시 기사님들의 마음,
생업을 포기하고 너희 가족을 도왔던 자원봉사자들의 마음,
침묵시위했던 대학생 언니 형들의 마음,
서명으로 개그로 영화로 작품으로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마음,
다는 아니지만 진실을 알리려 했던 기자님들의 마음,
아무것도 못하지만 교복 입은 또 다른 너희를 보며 울컥했던 국민들의 마음,

이 마음만 가지고 가거라.

대한민국을 동정해라.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희를 잃은 대한민국을 동정해라. '안전 공원', '납골당' 이름이 주는 무게로 너희를 한 곳에 데려오지도 못하게 하는 이 대한민국을 동정해라.

그래도 너희들이 선진국이라 믿으며 안전하게 구조될 것을 기다렸던 대한민국, 진짜 선진국 만들어 볼게. 편히 웃으며 가거라. 보낸다고 생각 안 할게.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렴. 우리가 온전히 너희를 느낄 수 있도록 봄의 따스함과 싱그러움으로 여름의 열정과 푸르름으로 가을의 맑음과 풍요로움으로 겨울의 순결과 축복으로.

이렇게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렴. 어떤 모습으로라도 다시 만나자.

20140416이란 아픈 숫자보다 18이란 아름다운 숫자를 기억하며 선한 싸움을 하고 있을게. 다음에 만나면 '이모'하고 부르며 달려와 안아줘. 너희 부모님의 또 다른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테니.

5주기 4월의 어느 밤 너희의 눈물이 얼음이 된 것 같은 밤 벚꽃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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