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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지난해 9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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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겪으며 법원행정처가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법원행정처가 오만하게 타성에 젖어서..."


사법행정의 달인에서 사법농단의 공범으로 추락한 판사의 증언엔 후회와 부인이 가득했다.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에서 이민걸 부장판사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1999년 법무담당관을 시작으로 기획담당관, 사법등기국장, 기획조정심의관, 사법정책실장을 두루 거친 그는 법원 내에서 임종헌 전 차장과 함께 '사법행정 전문'으로 정평났던 인물이다.

엘리트 법관의 길을 평탄히 걸어온 이 부장판사는 2015년 임종헌 전 차장이 취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 이 부장판사는 누구보다 임 전 차장과 가깝게 일했고, 결국 사법농단의 공범으로 기소됐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그를 정직 6개월에 처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양승태의 손과 발' 사법농단 연루 법관 10명도 법정으로).

사법행정의 달인, 사법농단의 공범 되다

이날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이 재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외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기조였다. 대법원이 2012년 이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정한 다음 파기환송심을 거쳐 사건이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오자 외교부는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를 다방면으로 찾고 있었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위해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한 다음, 외교부 의견 제출 여부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이 부장판사는 이 이야기를 2015년 8월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임 전 차장에게 들었다. 식사 자리에서 조 차관은 외교부의 일제 강제징용 재판 의견서 얘기를 꺼내며 "준비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이때 임 전 차관은 그의 초안 검토 요청을 수락했다. 23일 이 부장판사는 "업무 협조 차원에서 얘기한 것 같긴 한데 이거 봐줄 (수 있는) 건가 했다"고 덧붙였다.

그 후 외교부 관계자가 직접 법원행정처를 방문해 의견서 초안을 건넸다. 이 부장판사는 "2부를 받아 하나는 제가 갖고 하나는 임 전 차장에게 줬다"며 "의견서를 고쳐줄 의사도 없었지만 제가 (국제법) 전문가도 아닌데 코멘트하는 게 적절치 않아 제목만 보고 폐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임 전 차장 방에 갔을 때 그가 연필을 들고 의견서를 보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내용을 크게 고친 것 같진 않다고 했다.

2016년 9월 29일 이 부장판사는 조태열 2차관 등 외교부 관계자들을 또 만났다. 그는 "외교부에서 의견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대법원 규칙도 바꿨는데 제출을 안 하고 있었다"며 "임 전 차장이 '이제는 제출하지 않으면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 중에 이 사건을 처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과정을 상세히 논의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제가 부임하기 전에 (제출 방식이) 결정된 거로 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 만남이 외교부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 전원합의체 회부'를, 법원행정처는 '해외 법관 파견을 거래'하는 자리였다고 본다. 대법원 규칙이 달라졌어도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은 필수가 아니다. 재판부도 아닌 법원행정처가 의견서 제출을 독촉할 명분도 없다. 23일 이민걸 부장판사도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의견서 제출에 관여한 건 부적절했다"며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 거래' 의혹 두고 달라진 진술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재판은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 외교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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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임종헌 전 처장이 이때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 심리를 다시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에서 판단하긴 어렵다고 봤다며 임 전 차장의 발언 자체가 "특별히 이상하진 않았다"고 했다.

23일 그의 법정 증언은 검찰 조사와 달랐다. 이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처장은 '전원합의체에 가게 되면 이 정도 절차가 있다'며 가정적으로 얘기했지,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 재판부가, 법관이 알아서 논의해 결정할 문제지 아무리 임종헌 전 차장이나 법원행정처여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관련 진술도 바꿨다. 그는 검찰 조사 때 '외교부 회동 전 일정 보고하러 갔을 때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를 언급했다'고 한 것을 '전원합의체 회부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번복했다.

- 검사 : 검찰 조사에선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는 게 아니라 전원합의체 회부를 검토하는 부분을 언급했다고 진술했다.
"제가 그렇게 진술한 건 맞다. 전원합의체 얘기는 안 한 것 같지만 했더라도 '검토' 정도로 얘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답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해야겠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것처럼 얘기한 기억은 없다."

확연히 달라진 진술에 재판장은 의아해하며 "검찰에서 한 진술과 법정 진술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맞냐"고 물었다. 이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 때 경황이 없던 측면도 있고, 별생각 없이 얘기한 것 같다"며 "임 전 차장은 전원합의체 회부를 추진할 수도 없고, 그건 외교부와 협의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오만했다, 부적절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는 법정에서 여러 차례 "오만"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후회를 드러냈다. 자신은 청와대를 방문한 적 없지만 임종헌 전 처장 등이 청와대를 간 사실도 몰랐고,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 시절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공관에서 만났다는 얘기도 "굉장히 충격이고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 개입이나 재판 거래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원합의체 회부나 판결을 어떻게 한다는 건 아무리 법원행정처가 진짜... 이 사건을 겪으며 법원행정처가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반성한다. 그러나 개인이 (특정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 (그걸) 추진하겠다 이렇게 얘기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부장판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또다시 "법원행정처가 오만하게 타성에 젖어서... 잘못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재판장께서 실체관계를 제대로 한 번 살펴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뒤 조용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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