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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엔 온양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고 나선, 8월의 여름휴가지가 정해졌죠. 온양! 온천의 재발견 때문은 아닙니다. 이곳 온양민속박물관 때문입니다. 여름 휴가가 며칠이 될지 모르겠지만(기껏해야 3박 4일쯤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 온통 온양에서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박물관 가까운 곳에 숙박할 곳을 정하고, 개장시간에 들어가 폐장시간에 나오는 루틴을 반복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곳 넓은 정원을 한참 거닐다가, 한 점 유물 앞에 한참이나 머무는 생활을 하는 거죠. 펜과 붓을 가지고 하나하나 그 '아이들'을 그린다면 바닷가, 유원지보다 더 행복하겠죠.

박물(博物)이란 '온갖  사물'을 말하는데, 이곳엔 민속이 그저 나열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민속? 때묻은 옷? 농기구들? 고루한 과거의 흔적들?" 이런 편견들도 단박에 깨졌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해 준 건, 김은경 관장님과의 대화 그리고 그 유물들을 오래 모아온 신탁근 고문의 직접 설명이겠죠. 아는 만큼 더 보이게 되니까요.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의 <민화:일상의 시간>전. 구정아트센터는 일본의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이 한국에 최초로 지은 건축물이다. 전시는 과거를 현재와 만나게 했다.
▲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의 <민화:일상의 시간>전. 구정아트센터는 일본의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이 한국에 최초로 지은 건축물이다. 전시는 과거를 현재와 만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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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일부러 갖고 오지 말라 했던 아버지

온양민속박물관은 1978년 온양에 세워졌습니다. 아동도서 출판사인 계몽사 창업자 고 김원대님이 긴 시간 공들여 준비해 마련한 곳이라죠. 1970년대 초중반은 한국에 또다른 방식의 '계몽'이 '새마을'을 만들던 때였습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란 노랫말서 보듯, 초가집이 일거에 사라져 슬레이트 지붕,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는 때였습니다.

신작로를 따라 새로운 농사법, 새 농기구가 들어가기 시작한 때, 집집마다 기르던 소와 돼지가 사라진 시대, 몸이 기계로 대체되는, 진짜 근대-현대로의 변천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댐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하려고, 강가 마을들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풍경도 이 땅 곳곳에서 펼쳐졌습니다. 김은경 관장은 김원대 온양민속박물관 설립자의 따님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도자기라든가, 서화라든가, 왕가나 고관대작들, 무슨 공주의 가마다 하는 그런 물건 같은 것은 일부러 모으지 않으셨어요. 골동상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있거든요. 그런 물건들은 보면 알죠. 좋아요. 달항아리 같은 것도요. 근데 보름쯤 품안에 갖고 계시다가도 돌려주셨어요. 이런 건 더 갖고오지 말라 그러셨죠. 그런 철학이 있으셨어요. 왜냐면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우리 민속에 소홀해질 거거든요. 다른 분들도 많이 모으시니까. 당시 댐 때문에 수몰되는 마을에서 가져온 게 정말 많았어요."
 
온양민속박물관 김은경 관장.  ‘큰 살림’을 맡아 처리하느라 늘 뛰다시피 관내를 다닌다. 현대예술과 만날 때 박물관의 유물이 더욱 빛난다고 믿는다.
▲ 온양민속박물관 김은경 관장.  ‘큰 살림’을 맡아 처리하느라 늘 뛰다시피 관내를 다닌다. 현대예술과 만날 때 박물관의 유물이 더욱 빛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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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활이 시작되면서는 붙박이장에 자개장이 밀려났습니다. 냉장고가 생기면서 찬장이 필요가 없게 됐죠. 옷을 사입고 버리면서 골무함이 필요가 없어지고, 수렵하던 큰 창이며, 설피같은 신발이며, 짚으로 엮은 삼태기며, 뒤주며, 구유 따위도, 여행자들의 표주박도 쓸모가 없어졌죠.

큰 절 뒤주는 정말 잘생긴 물건이었습니다만, 온양민속박물관도 그 물건을 보관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말 커서요. 수장고에 제대로 두지 못하자 그것들은 좀이 슬어 무너져 버리곤 했지요.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들을 꼼꼼히 모은 것입니다. 그 수집품들 중에 그림들, 민화들도 있었습니다.

계회도, 고지도엔 학술적 가치와 조형적 아름다움 있어

"당시엔 민화를 모으는 게 수월했어요. 한 사람이 다 가져와요. 무신도 팔면서 화조도도 함께 파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다 모았죠. 초상화도 많아요. 그게 복식을 연구하는 기본 자료가 돼요. 불화도 많고요. 그건 민속하고는 또 별개죠. 민화 하시는 분들은 책가도 하고 화조도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구요. 예쁘니까. 그런데 계회도 같은 것도 정말 예쁘고 또 재밌어요. 지도같은 그림도 저흰 많아요. 강화전도 같은 그림엔 당시 봉화 위치가 표시돼 있어요. 통영전도 같은 그림에선 통영의 그때를 알 수 있죠. 저희가 북두칠성 민화가 있는데, 그 옆에 글로 다 써놓았어요. 학술적인 가치가 있고, 조형적으로도 아름답죠."

수장고의 민화들로는 10여년 전 전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의 전시는 <민화:일상의 공간>입니다. 구정아트센터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해 오는 5월 12일까지 진행되죠. 10명의  현대작가가 각기 2명씩 조를 이루어 공간을 달리 배치해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민화의 재해석인 동시에, 기존의 민화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했죠.

"최근 약 스무 개 정도의 해외 전시관을보고 왔어요. 제일 감명 깊었던 데가 콜롬바란 곳인데, 옛유물들과 현대작가들 작품을 함께 전시했어요. 정말 1~2세기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작품들이 현대의 예술품들과 함께 어울리는 형태의 전시를 했어요. 내용과 색감과 형태별로 모두 달리 모으고, 그걸 건물의 그림자까지 생각해 가며 하더군요."
  
현대작품을 과거의 작품들과 나란히 놓는 기획을 낼 수 있는 것은 여기가 온양민속박물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박물관 창립 초기부터 유물을 모으고, 현재까지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신탁근 고문은 박물관 내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유물을 모으던 세 명 중 둘은 대학으로 갔고, 그는 이곳에 남았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의 내부 유물들을 안내하고 있는 신탁균 고문.  신탁균 고문은 박물관 건설 초기인 1970년대 초중반부터 직접 민속자료들을 모으러 전국을 다녔다. 민속에 대한 깊은 통찰은 그러한 경험과 공부에서 왔다.
▲ 온양민속박물관의 내부 유물들을 안내하고 있는 신탁균 고문.  신탁균 고문은 박물관 건설 초기인 1970년대 초중반부터 직접 민속자료들을 모으러 전국을 다녔다. 민속에 대한 깊은 통찰은 그러한 경험과 공부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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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 유승룡의 최초 건축물들에 오래된 미래 보여주는 유물들

"이 박물관을 설계를 한 사람이 김석철입니다. 김수근과 김중업의 제자. 그의 첫 작품이었어요. 두 번째로 한 게 예술의 전당이죠. 우리 박물관 전시 공간은 2,200평, 큰 겁니다. 지하수장고가 지하에 지상에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있어요. 수장고에 작품이 더 많아요. 이곳 장점은 전시계획에 의한 유물 수집이란 거예요.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남근석, 사내아이 낳게 해달라고 빌던 돌이에요. 삼신 할머니께 제사드리던 상도 있어요. 대를 이어가야 효라고 생각하던 때니까.

내 친구도 아홉 째서야 나온 아들이야. 하나 더 아들 낳으려다 딸을 낳으셨지. 그 어머니가 104살에 돌아가셨어요. 근데 나때만 해도 셋째 낳을 때, 국가가 의료보험도 안 해 줬어요. 야만인이라고…. 둘도 많다 그런 때였으니까. 돈도 많이 들여 키웠지. 우리 세대는 정관 수술도 다 했어요. 지금은 수술한 친구들 힘을 못써요."


신탁근 고문은 꽤 오랫 동안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몰랐던 나,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죠. 그곳엔 일상의 물건들이 있었고, 물건들은 삶으로 들어갈 수 통로만 같았습니다.

저는 매일 핸드폰을 만지고, 봉지를 뜯어 음식물을 먹고, 모니터를 통해 세상의 일들과 만나지만, 저는 그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릅니다. 어디서 온 음식을 먹고, 이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여기 민속박물관의 물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작동을 하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알겠는 거였습니다. 왜 그 자리에 그게 필요한지도 보였죠. 애쓰면 만들 수도 있는 것들이었고요.

사용하고 버리고, 고장나면 속절없는 물건들의 세상에 사는 이에게 그쪽 세상은 훨씬 지속가능하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누리는 삶같아도 보였죠. '오래된 미래'를 제가 보았다면, 그 미래는 그 박물관 안에 있었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자료사진 작품들.  계획에 따른 유물 수집을 해온 이곳의 전시는 한국인의 삶을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현대가 참조할 내용과 형식이 그 안에 빼곡했다.
▲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자료사진 작품들.  계획에 따른 유물 수집을 해온 이곳의 전시는 한국인의 삶을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현대가 참조할 내용과 형식이 그 안에 빼곡했다.
ⓒ 온양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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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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