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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다 쇼인 신사 입구
 요시다 쇼인 신사 입구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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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일본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에 다녀왔다. 우리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물론 일본 열도 전역이 우리와 얽히고설켜 있다. 최남단 가고시마 치란(知覽)부터 최북단 홋카이도 비바이(美唄)까지 곳곳이 그렇다. 남쪽 치란에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기지가 있다. 그 유명한 자살 특공대가 주둔한 곳이다. 광기어린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우익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 발진한 전투기는 폭탄을 탑재한 채 미국 항공모함으로 돌진했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다. 조선인 자살 특공대 11명을 기린 위령비도 구석에 있다. 수년 전 방문 당시 조선인 자살 특공대를 마주하곤 착잡했다.

북쪽 홋카이도(北海島)에서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 2000여 명이 숨졌다. 전쟁 기간 동안 15만 명이 끌려왔다고 한다. 석탄 캐고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동원됐다. 비바이(美唄) 탄광은 조선인 수 백 명이 폭사한 현장이다. 2015년 유골 115구가 고국에 돌아왔다. KBS는 '70년만의 귀향'라는 프로그램에서 귀향 과정을 알렸다. 한일 민간단체가 주도해 18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삿포로 약왕사에도 유골 816기가 안치 돼 있다. 대한불교 관음종과 일본 조종동은 매년 위령제를 지낸다. 이렇듯 일본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한 많은 흔적은 차고 넘친다.

야마구치 방문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라는 책도 동기가 됐다. 야마구치는 일본을 해석하는 단초다. 근대화와 군국주의를 추동한 특별한 곳이다. 아베 정권도 연장선상에 있다. 아베 총리 지역구가 야마구치 시모노세키다. 시모노세키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하기(萩). 인구 4만 명에 불과한 작은 어촌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일병합을 주도한 인물이 무더기로 나왔다. 하기 출신 정치인과 군인들은 번갈아 가며 조선을 유린했다.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15년 동안이다. 초대 히로부미, 2대 아라스케, 3대 마사타케 통감과 초대 마사다케, 2대 요시미치 총독, 그리고 일본 육군의 교황으로 불리는 야마가카 아리토모까지 죄다 하기 출신이다.

 
 이토 히로부미 동상
 이토 히로부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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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저자 이광훈은 "지금까지 일본 대 조선의 국가 대결 구도로 파악해 왔던 한일 근대사에 관한 상식이 와르르 무너졌다. 일본의 60분의 1에 불과한 1개 번(藩)에 조선이 당했다"고 하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쉽게 말하자면 조선은 일본에게 무너진 게 아니라 작은 어촌마을에게 깨졌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대표적 인물이다. 둘 다 천민 출신이다. 히로부미는 행정부를 장악해 근대화에 필요한 국가제도 초석을 깔았다. 반면 아리토모는 군부를 손에 넣고 군국주의 기틀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조선을 약탈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뿐 아니다. 강제 한일병합에 주도적 역할을 한 8인 역시 두 사람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야마구치(당시 조슈)는 가고시마(당시 사쓰마) 세력과 손을 잡고 막부(무사 정권)를 끝장냈다. 흔히 말하는 메이지(明治) 유신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화에 시동을 걸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다. 우리는 메이지 유신보다 100년 늦은 1960년대 후반에서야 산업화를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힘을 축적한 일본은 주변 국가를 침략했다. 전통적인 강국 중국(청나라)는 물론 러시아도 꺾었다. 이웃 조선도 집어 삼켰다. 나아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고 투항하기에 이른다. 결국 메이지 유신은 근대화라는 빛과 군국주의라는 그늘을 동시에 낳았다. 그 출발점이 야마구치 하기다.

 
 쇼인 탄생지
 쇼인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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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있다. 쇼인이 이들을 길렀다. 쇼인은 하기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란 사설학원을 열었다. 다다미 여덟 장 크기다. 이곳에서 동문수학한 이들이 막부 말기를 주도한다. 쇼인은 서른 나이에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다. 제자 아흔 명을 길렀다. 그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는 낭중지추였다. 이 시골 학숙에서 총리 다섯 명이 나왔다. 야마구치 전역으로 확대하면 아베까지 총리만 무려 11명에 이른다. 군 장성은 셀 수도 없다. 쇼인 신사를 방문한 날, 봄비가 내렸다. 경내는 참배하는 일본 학생들로 가득 찼다. 100m 남짓한 곳에 이토 히로부미 생가가 있다. 마당에는 동상도 서 있다. 우리에겐 원흉이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에 숨진 그를 대하는 감정은 미묘했다. 역사적인 은원과 관계없이 마을은 평화로웠다. 그 무심한 평온이 조심스러웠다.

일본 경제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고용시장은 45년 만에 최고다. 실업률은 2.4%(2018년 기준)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체질 개선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 기업실적은 개선되고 소비는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쇼인은 시대를 앞서 내다본 선각자다. 우리 정치권에도 그런 인물이 있을까. 언제까지 일본을 무시하고 적대감만 키울 것인가. 하기를 떠나면서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자문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임병식 기자는 전북대학교 초빙교수로 국회 부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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