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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날씨도 좋고, 초록은 싱그럽고, 꽃들이 화사한 계절.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신발을 신고 나가기보다는, 방구석 여행을 즐기는 게으름뱅이라고 할 수 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남들이 쓴 여행책이나 팔랑팔랑 넘기며 '이야, 멋지네!' 하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라면이나 끓여 먹는 게 내가 휴일을 보내는 방식이다.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도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하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여느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발바닥이 근질근질, 당장이라도 이 집구석을 뛰쳐나가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오, 나를 일으켜 세워 신발을 신게 만든 책은 네가 처음이야!'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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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의 저자 김민식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MBC 드라마 PD인 그는 SF 마니아 겸 번역자, 시트콤 팬 겸 PD, 드라마 애호가 겸 감독, 그리고 책벌레 겸 작가이다. 그러니까,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는 게 취미이자 직업인 사람.

<영어 책 한 권 외워봤니?>를 통해 독자들의 꺼져가던 영어 공부 열정에 씨를 지폈고, <매일 아침 써봤니?>를 펴내 누구에게나 숨어 있는 '쓰기' 본능을 일깨웠던 그가 이번에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로 인생을 즐기기 위한 궁극의 비법을 전한다.

이 책은 그가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해온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는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삶의 태도에 관한 책으로 읽혔다. 혼자 또는 함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길에서 배운 것들을 소복이 담았다. 책을 읽으며 시련에 맞서는 자세,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운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와요. '난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딘가?' 싶어지는 때 말이지요. 기차를 잘못 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해요. 엉뚱한 기차를 탄 나 때문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여행의 동반자가 되는 거지요. 기왕에 잘못 탄 기차, 느긋하게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그 기차 여행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뜻밖의 풍경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298쪽)

'여행'. 이 두 글자에 설레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누구나 마음속 한편에는 여행에 대한 꿈이 있을 것이다. 떠나고 싶지만 당장 발길을 옮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애들이 어려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떠나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이 책의 저자 김민식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짠돌이다. 그래서 걷는다. 어떤 날엔 20년이 넘은 낡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한다. 음식도 현지인들이 제일 즐겨먹는 저렴한 음식을 먹고, 최대한 저렴하게 하룻밤 쉴 수 있는 숙소를 고른다. 국내 여행을 할 때는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당일치기 여행을 즐긴다. 그게 그가 여행하는 방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는 말은 쏙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으면, 저는 관광객에겐 최고가 중요하고 여행자에겐 최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관광을 다닌다면 제한된 일정 안에 여행지를 잘 보기 위해 최고의 목적지를 선정하겠죠. 그러니 제일 높은 곳이나 제일 유명한 곳들을 찾지요. 혼자 다니는 제게 그런 목표는 없어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과정을 즐깁니다. 말로는 "걷기는 공짜에다 운동도 됩니다."라고 하지만, 실은 그냥 돈 쓰기가 싫은 짠돌이인 거예요.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제게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에요. 돈을 많이 들이면 여행을 오래 하기 힘들어요. 가능한 한 적은 경비를 들여 오래 여행하는 걸 선호합니다. (92쪽)

해외여행을 가려면 비행기 표도 사야 하고, 숙박비도 생각해야 하고 아무래도 어느 정도 경비가 들겠지만, 국내 여행이라면 그런 걱정은 덜 수 있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나 둘레길이 제법 잘 조성되어 있고, 자전거 도로도 많이 생겨서 천천히 산책하듯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이 책에는 서울과 부산의 걷기 좋은 코스와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은 코스도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 하나 골라서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도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여행은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도 십 년 가까이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여태 내가 가 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렇게 일부러 낯선 곳을 찾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때때로 들러서 잠깐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겠다. 이 도시에 나만의 아지트를 하나 둘 만들어 가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돈은 그렇다 치고,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는 휴가를 하루만 쓰고 자전거로 무려 국토 종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읽다 보면 '그렇다면 어디 한번 나도!' 하는 마음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전거를 흘끔 쳐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 종주에 5일이 걸린다면 휴가를 딱 하루만 쓰고도 국토 종주를 할 수 있어요. 주말을 두 번 활용하는 겁니다. 첫 번째 토요일에 여주역까지 가고, 일요일에는 충주까지 갑니다. 자전거는 충주터미널에 보관해두고요. 다음 주 금요일에 휴가를 내 충주터미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부산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럼 5일이면 국토 종주를 할 수 있어요. 직장인에게는 휴가도 소중한 자원이니 아껴야지요. (261쪽)

이 책의 저자는 결혼해서 아내도 있고, 자녀들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여행하면 아내와 아이들은?'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혼자서도 여행을 하지만, 아내와 단둘이 여행을 하기도 하고, 아내는 쉬게 하고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명절마다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가서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블록 놀이하듯이 가족 안에서 가능한 모든 조합을 활용해 한 번은 이렇게 둘이, 한 번은 저렇게 둘이, 가끔은 다 같이 여행을 한다.

책을 읽다가 나도 '우리 남편이 이 책을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자. 작가가 이렇게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사려 깊게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모두 여행 덕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도 나의 남편에게 혼자 여행할 시간을 주면 좋지 않을까?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출근해서 일과 사람에 치이다가, 퇴근하면 집에서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 더 혼자 있는 시간을 갖기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오늘은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이렇게 한번 말해보는 건 어떨까. "주말에 혼자 가까운 데라도 여행 가보는 거 어때? 가서 좀 쉬고 와." 그렇게 그에게도 숨 쉴 틈을 준다면 또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남편에게 "이번 주말은 내가 애들 볼 테니 어디 가서 좀 쉬고 와"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우리 부모님은 평생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시다가 이제 자식들 시집 보내 놓고 조금씩 여행을 다니신다. 다녀와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조금 수긍하기 어렵다.

"우리도 젊었을 때 뼈 빠지게 일하느라 여행 한번 못 하다가, 이제 조금씩 여기저기 다니는 거지. 그러니 너희도 지금 젊을 때 열심히 벌어서 늙어서 나처럼 여행 다니고 놀면 돼."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늙어서 기운도 빠지고, 다리도 아픈데 여기저기 다녀봐야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젊었을 때 부지런히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배워야 나중에 멋지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나의 이런 생각이 저자와 통한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세계 일주를 권할 생각이에요. 어쩌면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 올지 몰라요. 무엇보다 12년간 한국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는 세계를 누비며 인생의 즐거움을 배웠으면 해요. 여행만큼 큰 즐거움도 없거든요. 나이 60에 효도관광 간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이 스물의 배낭여행은 인생을 바꿀 수 있어요. (230쪽)

그러니 더는 미루지 말고, 어디라도 좋으니 떠나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돌아다니자. 새롭고 멋진 풍경을 눈에 가득 담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사진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은 메모도 하고, 돌아와서는 차분히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사진과 메모를 정리해 글도 한 번 써보자. 이 책이 나 같은 방구석 여행자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 것처럼, 당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방구석 여행자를 일으켜 세워 문을 박차고 힘껏 세상 속으로 나가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은 이야기다! 길고 짧은 것을 떠나서, 좋고 나쁨을 떠나서, 비싸고 싼 것을 떠나서, 성격과 취향을 떠나서, 모든 여행은 사건을 겪는 주체가 명확하고 뚜렷한 시공간적 배경이 있으며 사건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훌륭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썩히면 죄가 된다. 우리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지 못한 죄,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망각의 강으로 떠내려 보낸 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극진한 경험을 부추기지 못한 죄 말이다. – 김명철, <여행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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