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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한 야당 의원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국회의원이 입장을 밝히지 않는 건 종종 있는 일입니다. 밝히더라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하거나, 익명을 요구할 때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국회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편의상 게임중독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입니다. WHO B위원회는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에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에 '게임이용장애' 추가를 만장일치로 의결했습니다.

게임이용장애는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부문의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위 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로 분류되며 '6C51'이라는 코드가 부여됐습니다. 이 내용은 194개의 WHO 회원국에 2022년부터 적용됩니다.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역시 ICD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WHO의 강한 권고이자 회원들 간의 약속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이 이슈를 두고 정부 부처들은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이미 지난 4월 초 WHO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반대한다는 공식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문체부는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도입이 자칫 게임산업 전반을 약화시킬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예산 지원과도 크게 맞물려 있지요.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13조1423억 원에 이릅니다. 2018년 시장규모는 13조9904억 원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게임 산업의 수출액도 2017년 기준 59억2300만 달러, 한화로 약 6조698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2016년 대비 80.7% 증가한 수치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수출 '한류'의 일원인 셈이지요.

그러나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게임의 문화산업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임중독 증상을 보이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실존하는 이상, 이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관리해야만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체부와 복지부의 입장이 갈리는 만큼, 국회의원들도 문체위 소속 위원들과 복지부 소속 위원들의 입장이 대체로 갈리는 상황입니다.


국회 안에서는 이를 두고 토론회도 열리고, 기자회견도 진행되고 있지만 그 자리에 정작 국회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회 밖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사안에 대해 여의도가 조용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취재에 입장 밝히기를 껄끄러워 한 국회의원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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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없는 게 입장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게임중독 이슈는 보건복지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주무 상임위원회입니다. 이외에도 여성가족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서 해당 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원들과 의원실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입장이 아직 없다"였습니다.

한 여당 의원은 "이제 막 살펴보려고 한다"라며 "의원들마다 의견도 다르고, 부처마다 입장도 달라서 다양하게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상임위의 야당 의원도 "아직까지 입장을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관련 상임위 소속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지나고 다시 연락했으나 여전히 "아직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입장이 있는 경우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려했습니다.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야당 의원은 "게임업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라면서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도입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기는 부담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인의 의무는 갈등의 중재인데, 자칫 입장 표명이 갈등을 더 심화시킬까봐 걱정된다"라는 이유였습니다.

다른 야당 의원은 "게임중독 문제는 의료 문제이다"라면서 "WHO가 (보건‧의료 관련) 최고 권위기구 아닌가.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명확한 찬성 입장이 실명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건 거절했습니다.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나오지 않는 답

결국 문제는 '표'입니다. 국회의원들은 본인이 어떤 입장을 표명했을 때, 자신이 선거에서 얻을 표의 증감을 계산합니다. 손익계산서를 두드려본 뒤에, 확신이 서면 움직이는 거죠. 일반적으로 여야,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가 뚜렷한 이슈일수록 계산은 쉬워집니다. 

그런데 이번 이슈는 그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도 명확하지 않고,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입장 차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5월 1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분류·관리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이 45.1%, '놀이문화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 수 있으므로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는 응답은 36.1%로 나왔습니다. 찬성이 오차범위(±4.3%p)보다 조금 높게(9.0%p)나온 것으로 드러났지만, 일방적이진 않았습니다. '모름/무응답'도 18.8%나 나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p)

찬반의 양상도 일반적인 정치‧사회 이슈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예컨대 대개 수도권은 진보적 응답자가, PK나 TK 지역은 보수적 응답자가 많이 나오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해당 조사에서는 서울(48.6% vs. 34.8%)과 대구·경북(39.3% vs. 27.7%)에서 모두 찬성 여론이 높았습니다. 반면 경기·인천(찬성 43.2% vs. 반대 41.2%)은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50대(53.3% vs. 32.2%)와 60대 이상(47.1% vs. 22.7%)의 찬성 여론이 높고, 20대(40.9% vs. 46.5%)와 30대(39.7% vs. 45.4%)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았지만 이념에 따른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진보층(46.5% vs. 41.1%), 보수층(42.7% vs. 35.6%)으로 나눴을 때 모두 찬성 여론이 조금 높았기 때문이죠.

이념‧지역에 따라 명확하게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이슈가 아니다보니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섣불리 의견 표명이 어렵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지난 5월 29일 '게임질병코드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만난 한국게임개발자협회 관계자는 "'친게임' 의원이라고 부르는 국회의원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라면서도 "의원들이 조심스러워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누구누구라고 알려드리기는 곤란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래도 학부모 등의 표가 신경쓰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도 "학부모 표가 신경 쓰인다고 콕 찍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대 간 갈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누구 편을 들기 어려운 면도 있다"라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입장 명확히 밝히는 의원도 있지만...  

물론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성남시 분당갑)은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지만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 중 한 명입니다. NHN 게임스 대표이사 출신인 그는 업계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의 지역구는 게임회사 등 IT업체가 다수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5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느 여가활동이든 과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게임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아이들을 정신병자로 모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비례)도 대표적인 '친게임' 의원으로 꼽힙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자 바른미래당 간사이기도 합니다. 그 역시 "게임이 중독을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매체인지 더욱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라면서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간호장교 출신인 윤종필 한국당 의원(비례)은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 모두 소속된 그는 지난 5월 27일 "WHO(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환영한다"라고 공개 성명을 냈습니다.


이어 경기도 분당 서현역 사거리에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중독은 질병!"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윤종필 의원은 현재 한국당의 성남 분당 갑 당협위원장으로서 재선을 노리는 김병관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 업체들이 밀집한 곳이라 더 화제가 됐습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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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00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공개적으로 찬반 의사를 밝힌 의원은 굉장히 드뭅니다.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신중한 입장"이라는 한 야당 의원은 "질병코드 도입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하는 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내 도입까지는 검토 시간도 한참 남았을 뿐더러, 연구 결과도 아직 부족하다"면서 "추후에 나올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천천히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라는 게 그 요지였습니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해당 이슈가 찬‧반으로 나뉘고 의원들이 눈치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발전했다라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일부 시민단체나 세대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어 게임 규제 목소리가 훨씬 컸다"라면서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논의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으로 본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국회는 게임에 대한 '장려'보다는 '규제' 쪽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줬습니다.

대표적으로 2008년 7월 통과된 '셧다운제'가 있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김재경 당시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을 통해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후 2012년,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였던 이승현 선수가 이 셧다운제 때문에 국제대회 도중 게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패배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국회, 언제까지 침묵할 수 있을까

WHO의 질병코드 도입을 두고 찬반 논란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2022년부터 ICD-11이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효력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5년 단위로 개정되는 KCD에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하려면 2025년이 되어야 합니다. 2025년에 ICD-11에 따라 그대로 KCD가 개정되면 실제 국내 효력은 2026년부터 발휘됩니다.

어찌됐든 결국 해당 문제는 국회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WHO의 질병코드 도입을 한국에도 적용할 건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육성 혹은 규제할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제화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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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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